반도체로 생긴 막대한 이익을 다루는 문제가 초미의 사회적 과제로 등장했다. 현 세대에서 써버릴 것인지, 미래를 위한 사회적 투자로 활용할 것인지의 문제다. 사진은 지난달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로봇이 반도체를조립하는 모습. /로이터=뉴스1

한국 경제가 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다. 갈고 닦은 제조업 기술 및 노하우에 미·중 경쟁이라는 지정학적 기회가 시너지를 내면서 비약의 날개를 달았다. 반도체 부문에서 거둔 거액의 성과는 그 일부다. 문제는 그 과실을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노동조합은 상당 부분이 노동자 몫이라며 성과급을 요구하고, 일부 정치인은 국가공동체의 지원을 내세우며 민간기업의 성과를 모두가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경제'에선 듣기 힘든 주장이다.
이렇게 엄청난 이득을 거둔 적이 없기에 나눔에 대한 요구에는 도무지 겁이 없어 보인다. 지난 세기에 유럽의 역사를 살펴보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바로 '네덜란드병'과 '노르웨이 국부펀드'라는 대조적인 '횡재 다루기' 드라마다. 갑자기 발견된 에너지 자원으로 횡재를 하기는 두 나라 모두 마찬가지였다.

네덜란드는 1959년 북부 흐로닝언 해안지대에서 대규모 천연가스전이 발견되면서 자원수출국이 됐다. 문제는 가스로 누린 호황은 짧았고, 그 부작용은 길었다는 점이다. 자원 수출로 외화가 다량 유입되자 물가와 임금이 오르면서 인플레이션이 찾아왔다. 자국 통화 가치가 높아지면서 수입 물가는 떨어졌지만 수출 경쟁력은 추락했다. 고환율과 고물가는 제조업 기반을 뒤흔들었다. 이는 1970년대 장기 침체로 이어졌다. 미디어와 경제학에서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이나 '자원의 저주'로 부르는 현상이다.


벼랑 끝에서 네덜란드는 뼈를 깎는 혁신을 결단했다. 정부와 노사는 1983년 노사정 대타협인 '바세나르 협약'을 이뤄냈다. 노동조합은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기업은 고용 유지와 유연근무 확대를 약속하며, 정부는 세금 인하와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게 골자다. 대타협의 결과 노동비용의 과도한 증가를 진정시켰고 수출과 경제성장률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으며 고용도 회복됐다.

이와 함께 네덜란드 정부는 가스 산업에 국가 경제가 쏠리지 않도록 정책적으로 연구·개발(R&D)을 강화해 다양한 첨단 산업과 제조업을 육성했다. 현재 네덜란드는 반도체 장비, 스마트 농업, 물류·운송, 화학 및 에너지, 순환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스마트 농장을 바탕으로 농산물 수출에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첨단기술 분야에선 반도체 생산을 위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는 세계 1위 기업 ASML이 유명하다. 이 장비는 반도체 생산에서 7nm 이하의 초미세 공정을 구현하는 데 필수적이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들이 확보를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다. 네덜란드병을 가져온 유럽 최대 규모의 흐로닝언 가스전은 잦은 지진 때문에 2024년 10월 영구 폐쇄했다. 자원 부국보다 인재 부국, 횡재보다 지속이 가능한 미래 개척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사례다.

노르웨이는 네덜란드보다 늦은 1969년 12월 필립스 페트롤륨(Phillips Petroleum)사가 북해에서 에코피스크(Ekofisk) 유전을 발견하면서 주요 산유국이 됐다. 노르웨이는 네덜란드와 달리 석유와 가스라는 천연자원에서 나온 재원을 재정에 직접 투입하지 않고, 대신 공동체와 후손의 미래에 투자했다. 오일 머니를 차곡차곡 쌓아 국부펀드를 조성하고 장기 자산 운용으로 거대한 국부를 일궜다. 1990년 설립된 '정부 연금기금 글로벌(GPFG)'이라는 이름의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다. 자산이 2조 1170억 달러나 된다. 한국의 올해 예상 국내총생산(GDP)인 1조9310억 달러보다 많다. 노르웨이는 이 기금을 해외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나눠서 투자하고 있다.


국부펀드의 목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국내 경제를 인플레이션과 과한 통화가치 상승으로부터 보호한다. 둘째, 투자 수익의 일부를 의료·교육 등 현재의 복지와 사회 안정을 위해 지출한다. 셋째, 오일 머니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더라도 미래 세대에게 교육을 비롯한 공동체 복지를 지속해서 제공할 수 있도록 국부를 보존하는 것이다. 횡재를 당대가 아닌 후대에까지 나눠 쓸 수 있도록 투자한 셈이다. 오일머니의 국부펀드 편입은 '네덜란드병'이 노르웨이에서 벌어지지 않은 비결로 꼽을 수 있다.

국부펀드는 1953년 쿠웨이트에서 시작해 현재 1조72억 달러의 자금을 운용하는 쿠웨이트 투자청(KIA)이 효시다. 주로 외화보유액이나 재정 흑자, 자원 판매수익 등 공공자산을 바탕으로 국가가 미래 세대를 위해 조성하고 운영하는 기금이다. 아랍에미리트(UAE)·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인도네시아 같은 자원 부국은 한결같이 이를 운용한다. 중국처럼 외환보유고가 많은 나라나 싱가포르같이 부존자원이 없는 나라도 국가적 한계를 전략적 투자를 통해 극복하기 위해 이를 운용한다.

이처럼 네덜란드나 노르웨이에 새옹지마 같은 횡재를 안겨줬던 에너지 산업은 모두 국영기업이었다. 한국의 횡재는 모두 민간기업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유럽 두 국가의 횡재가 에너지 자원이었다면 한국의 횡재는 기술과 교육·훈련이 축적된 제조업에서 나온다는 데서 서로 다르다. 네덜란드병을 벤치마킹해 '자원의 저주'를 미리 막을 수 있었던 노르웨이는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필사적인 노력과 대타협으로 네덜란드병을 스스로 극복한 네덜란드도 우리 가슴에 울림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언제든지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다. 현재 반도체 초호황으로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지만 경제가 경기를 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지금 얻은 이익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미래 경제 안보가 걸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초호황에 환호만 하지 말고 미래 안전을 위한 보험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국부펀드 투자는 그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아울러 민간 기업의 이익이나 초과 세수의 활용 문제에선 새로운 사회적 숙의와 대타협이 필요하다. 결코 단기적인 시각이나 정치적인 유불리로 다룰 일이 아니다. 그 수입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한국 시장경제의 미래 정체성도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