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가 국민주권의 원리를 통해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을 뜻한다면, '공화국'은 국가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공화국은 공익과 공동선을 추구할 때 번영하고, 사익과 분파적 이익이 앞설 때 쇠락한다.
그러나 공동선은 저절로 형성되지 않는다. 구성원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공동선에 대한 합의에 실패한 국가는 분파 갈등 속에서 무너졌다. 반대로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는 권력자가 공동선을 독점하고 폭력으로 강요함으로써 파멸했다. 공동선은 분열 속에서는 길을 잃고, 독점 속에서는 폭력으로 변질된다. 그러므로 민주공화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토론을 통해 공동의 목표를 찾아가는 합리적인 '말의 정치'이다.
마키아벨리에게도 '말의 정치'는 공동선을 형성하고 당파적 증오를 해소하는 공화국의 핵심 조건이었다. 고대 로마의 민회에서 시민들은 자유롭게 법률을 제안하고, 찬반토론을 통해 공동선에 부합하는 법을 의결했다. 합리적인 의견 교환이 좋은 법의 형성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고소·고발 제도를 공화국의 자유를 보호하는 장치로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증거와 논리에 근거한 고소·고발은 소문과 거짓에 의존하는 중상모략을 제어한다. 이는 시민들 사이의 당파적 증오를 사적 보복이 아니라 공적 제도 안에서 해소하게 한다.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중상은 증오를 낳고, 증오는 분열을 낳으며, 분열은 당파를 만들고, 당파는 결국 공화국을 파멸로 이끈다. 따라서 증거와 논리에 기반한 '말의 정치'는 공화국을 유지하는 필수 조건이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사』에서 고대 로마의 '말의 정치'와 피렌체의 '힘의 정치'를 대비한다. 두 나라는 모두 귀족과 민의 첨예한 갈등을 경험했다. 그러나 로마는 그 갈등을 공적 논쟁과 제도적 절차를 통해 해결한 반면, 피렌체는 무력과 폭력에 의존했다. 그 결과 로마에서는 좋은 법이 만들어졌지만, 피렌체에서는 시민들의 망명과 죽음이 반복되었다. 갈등은 어느 공화국에서나 불가피하다. 문제는 그 갈등을 말과 법의 절차로 다스리느냐, 아니면 폭력과 힘으로 해결하려 하느냐에 있다. 그 차이가 공화국의 운명을 가른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돌아보면, 민주공화국을 이롭게 하는 합리적인 '말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여야 간 토론은 설득과 논증보다 고성과 일방적 주장으로 점철되는 경우가 많다. 공동선을 찾기 위한 노력보다 상대를 제압하려는 언어가 앞선다. 곧 있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도 후보자들 사이의 진지하고 합리적인 토론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말의 정치'가 사라지면 그 자리는 선전과 선동이 차지한다. 토론은 사라지고 구호만 남는다. 구호는 상대를 비난하고, 자기편의 검증되지 않은 주장만을 강요한다. 결국 '말의 정치'가 사라진 곳에는 '힘의 정치'가 등장한다. 그리고 '힘의 정치'는 공동선을 만들기보다 증오와 분열을 증폭시킨다.
민주공화국의 정치는 주권자인 시민들의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나은 말이다. 합리적인 토론은 부드러운 음성 속에서 펼쳐지는 치밀한 논리의 대결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런 토론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토론자와 청중 모두에게 깨달음을 준다. 공동선은 바로 그 깨달음과 합의의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힘의 정치'가 아니라 '말의 정치'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더 많은 고성과 구호가 아니라, 더 깊은 논리와 더 품격 있는 토론을 요구하고 있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