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플레이션 여파로 유료방송 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LG헬로비전이 셋톱박스 월 임대료를 상향하는 조치를 취했다. /사진=LG헬로비전 공식 홈페이지 캡쳐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위축에 따른 '칩플레이션'(반도체+인플레이션) 여파가 유료방송 업계의 비용 부담으로 직결되고 있다. 인공지능(AI) 고성능 서버 수요 폭증으로 범용 메모리 공급이 축소되면서 유료방송사들은 셋톱박스 원가 상승과 가입자 감소라는 이중고를 겪는 중이다.
20일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고성능 AI 반도체 생산 집중으로 디램(DRAM) 및 낸드(NAND) 플래시 가격이 급등하면서 스마트폰·라우터·셋톱박스 등 가전 제조에 소요되는 메모리 비용이 지난 1년 새 600% 이상 상승했다. 셋톱박스는 방송이나 인터넷 신호를 받아 TV 화면에 변환·출력해 주는 필수 인프라지만 최근 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원가 상승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유료방송 업계를 중심으로 셋톱박스 임대료 인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LG헬로비전은 다음 달 1일부터 강원·나라·영서·호남방송 등 일부 지역의 신규 가입자를 대상으로 셋톱박스 상한가격을 기존 월 5500원에서 7700원으로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LG헬로비전 관계자는 "메모리 가격 상승에 따른 원자재 비용 보전 차원"이라며 "해당 지역 약관 가격을 타 지역과 맞추기 위한 조치로 향후 추가 인상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주요 방송사는 기기 사양에 따라 임대료를 차등화해 운영 중이다. 지난해 출시한 SK브로드밴드 AI 스피커형 셋톱박스 임대료는 3년 약정 기준 월 6600원, 지난 2월 출시한 AI 5 셋톱박스는 7700원 수준이다. 기종별로는 Smart 3·mini가 4400원, AI Sound Max·4 vision은 8800원의 요금을 책정하고 있다.

셋톱박스 가격 상승은 수익성에도 부담이다. IPTV 및 인터넷 가입자 확보 과정에서 상향된 셋톱박스 구매 비용과 망 사용료 등이 선반영된 까닭이다.

KT스카이라이프 관계자는 "연초 대비 칩셋 원가가 수백 퍼센트 이상 인상돼 구매 비용 부담이 지속되고 있다"며 "현재 임대료 인상 조치를 검토하고 있지는 않으나 원가 상승세가 장기화될 경우 요금 반영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SK브로드밴드의 'AI 5 셋톱박스'와 '기가 와이파이 7'. /사진=SK브로드밴드
원가 압박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확산으로 인한 '코드커팅'(가입자 이탈)과 맞물려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이에 유료방송사들은 사업 다각화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SK그룹의 데이터센터(IDC) 사업을 전담하며 수익원을 다변화하고 있다. AWS와 협력해 울산에 건설 중인 100MW 규모 AI 데이터센터는 총 투자액 7조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다. SK브로드밴드가 구축과 운영을 맡았으며 현재 관련 사업부를 별도 법인으로 분사해 약 3조원 규모의 외부 투자 유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LG헬로비전은 내실 경영 강화와 함께 'AX(인공지능 전환) 혁신'에 주력하고 있다. 수익성 중심의 사업 구조 전환을 목적으로 최고경영자(CEO) 산하 사업총괄 조직을 신설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해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KT스카이라이프는 위성 서비스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인터넷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 구축에 속도를 낸다. 인터넷 기반 방송 서비스인 IPTV 상품 '아이핏TV'를 통해 안정적인 가입자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유료방송 업계 관계자는 "가입자 정체 상황에서 셋톱박스 부품 원가 상승은 사업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는 이중고"라며 "정부 차원에서 유료방송 사업자의 규제 완화 및 재정적·정책적 지원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시장 침체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