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논란의 변화…돈 넘어 신뢰의 충돌
초호황 역설…이해관계 사회로 진입한 한국
추격국가의 한계…속도 빠르지만 숙의 부족
취약한 공론장…선진국의 힘은 합의 시스템

삼성전자 성과급 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율이 85%를 넘겼다. 합의안 통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반도체·비반도체 부문 간 형평성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사진=뉴스1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 직전 가까스로 성과급 합의에 도달했지만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반도체와 비반도체 사업부 사이의 형평성 논란은 법적 분쟁으로 번졌고, 주주들 역시 성과급 재원과 배분 구조에 의문을 제기한다. 업종과 업황을 막론한 'N% 성과급' 요구가 확산하는 가운데 협력업체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몫을 요구하고 있다. 산업·고용·소득 전반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불만은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과거 한국 사회의 갈등은 대체로 생존 문제였다. 압축성장기의 공식은 단순했다. 더 많이 투자하고, 더 빨리 생산하고, 더 크게 성장하는 것이 최우선 가치였다. 갈등이 발생해도 "일단 앞으로 가자"는 논리가 우선했다. 한국은 외환위기와 팬데믹 같은 충격 속에서도 빠르게 회복하며 위기에 강한 나라라는 성공 경험을 축적해왔다. 압축성장의 시대에는 숙의보다 속도가, 조정보다 추진력이 더 큰 미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가 마주한 갈등은 이전과 성격이 다르다. 과거엔 일정 수준의 타협이 갈등 봉합으로 이어졌지만 이제는 하나의 합의가 또 다른 형평성 논란과 이해 충돌로 번진다. 이번 성과급 논란의 핵심 역시 액수 자체보다 "성과를 누가 만들었고,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며, 그 과실을 누구에게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질문에 있었다. 기업은 경영 성과와 투자 책임을 강조하고, 노동자는 기여와 보상을 내세우며, 주주는 수익의 정당한 배분을 요구한다. 파이는 커졌지만 나누는 기준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초호황은 오히려 갈등의 도화선이 된다.

이런 변화는 한국이 본격적인 이해관계 사회로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뒤쫓아야 할 선진국이 분명했던 시대에는 속도가 곧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일정 수준의 성장 이후에는 양상이 달라진다. 무엇을 얼마나 더 만들 것인가보다 그것을 어떻게 나누고 조정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누군가의 이익이 다른 누군가의 부담이 되는 사회에서는 성장 자체보다 갈등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빠른 성장에 비해 이해관계 조정 시스템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다. 국민연금 개혁은 필요성을 알면서도 세대 간 부담을 어떻게 나눌지를 놓고 번번이 멈춰 섰다. 의료 개혁 역시 방향성에 대한 일정한 공감에도 불구하고 정부·의료계·국민 사이의 숙의 구조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갈등이 생기면 시간을 들여 조정하기보다 곧장 정치적 공방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았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에 의존해온 측면도 있다.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마저 이해관계 충돌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갈등을 흡수할 수 있는 두터운 '사회적 중간지대'다. 선진국의 힘은 갈등이 적어서가 아니라 갈등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조정하고 완충하는 장치를 갖추고 있다는 데 있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는 노동자 대표가 기업 감독이사회에 참여해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한다. 네덜란드는 1980년대 '바세나르 협약'을 통해 임금 인상 억제와 고용 확대를 맞바꾸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냈다. 미국 역시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도 다양한 중간 기구들이 공론장을 떠받치고 있다. 싱크탱크와 대학, 시민사회, 전문가 집단 등이 대표적이다. 핵심은 갈등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거리의 충돌 이전에 오래 대화하고 조정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중간지대의 핵심 역할은 서로 다른 집단이 최소한의 공통 현실을 공유하게 만드는 데 있다. 노동과 기업, 세대와 지역, 정부와 시민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공유하지 못하면 사회는 결국 감정과 동원의 경쟁으로 흘러간다. 숙의 민주주의의 핵심은 상대를 이기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인정한 상태에서도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칙과 신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문제는 이런 중간지대에 대한 신뢰가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론장을 구성해야 할 언론과 시민사회, 전문가 집단마저 진영화 속에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갈등을 중재해야 할 기관들까지 스스로 갈등의 당사자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면 사회의 타협 능력은 급격히 약해진다. 모든 문제는 곧바로 진영 대결로 번지고, 상대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이 된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건강한 중간지대와 공론장을 회복하는 일은 그 어떤 것보다 시급한 과제다.

압축성장의 시대에는 속도가 국가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초호황과 양극화가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조정하고 공존시킬 수 있는지가 새로운 경쟁력이 된다. 이제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결정이 아니라 갈등을 제도 안에서 조정할 수 있는 성숙한 합의 시스템이다. 이번 삼성 성과급 논란은 한국 사회가 왜 이런 조정 능력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