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26일 '탱크데이' 이벤트 논란과 관련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회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 사과문을 발표한 것은 회장 취임 후 처음이다./사진=뉴스1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6일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과 관련해 직접 사과했다. 그는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내부 시스템 점검과 사회적 책임 강화를 언급했다. 신세계그룹도 자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5·18 민주화운동을 의도적으로 폄훼하려 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그룹 차원의 관리 부실과 역사적 감수성 부족에 대해선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기업이 사회적 논란이나 공분을 일으켰다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마케팅 실수로만 넘기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5·18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이자 현대사의 비극이다. 이를 연상시키는 표현이 상업적 이벤트 문구로 사용됐다는 사실 만으로도 많은 시민에게 상처와 불쾌감을 안겼다. 세월호 참사 시점의 '사이렌 머그' 논란까지 다시 소환된 것도 마찬가지다. 이제 기업은 "의도가 없었다"라는 말만으로 넘어갈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적 감수성과 사회적 공감 능력 역시 기업 경영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다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시민의 비판과 소비자 불매는 자연스러운 시장의 반응이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직접 특정 기업을 압박하거나 사회적 공격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논란 이후 공공기관의 배제 움직임이나 행정적 압박, 수사 확대 요구가 이어지는 흐름은 과잉 대응 논란을 부를 수 있다.


법적 판단은 절차에 따라 이뤄지면 된다. 중요한 것은 냉정한 사실 판단이지 감정적 응징 경쟁이 아니다. 대통령까지 나서 '저질 장사치'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모습은 국가가 특정 기업에 사회적 낙인을 찍는 장면으로 비칠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감정적 개입은 신중해야 한다. 반대로 '투표장에 스벅 커피잔 들고 가기' 등 이번 사태를 선거와 연결짓는 일부 야당의 태도 역시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베' 폐쇄론 역시 비슷한 고민을 안긴다. 공동체의 아픔과 희생을 조롱하고 놀이로 소비하는 문화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이트 하나를 닫는다고 혐오와 조롱의 문화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유사 성향의 공간은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며 반복적으로 재생산될 가능성이 크다. 과도한 혐오와 조롱은 특정 사이트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극단화가 낳은 병리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기업 제재나 커뮤니티 폐쇄는 당장의 분노를 달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근본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은 결국 시민사회의 상식과 공론장의 자정 능력에서 나온다. 시민들이 스스로 혐오와 조롱을 부끄러운 문화로 규정하고, 역사와 재난의 희생을 소비와 놀이의 대상으로 삼는 행태를 외면할 때 극단은 비로소 주변부로 밀려난다. 정치의 과잉 대응보다 더 강한 힘은 시민의 '성숙한 상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