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을 마친 후 여명구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사업 담당) 피플팀장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전란(錢亂)이다. 성과급을 둘러싼 대기업 노조의 투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SK하이닉스에서 시작된 '영업이익 N%' 성과급 논란은 반도체를 넘어 자동차·통신·조선·플랫폼 기업 등 국가 주요 대기업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삼성전자도 최근 일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기존 성과급에 더해 '사업성과'를 반영한 특별경영성과급 10.5%를 추가 지급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노조는 영업이익 일부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 연동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사측이 인건비 부담 확대와 투자 재원 감소, 경영 자율성 축소를 이유로 거부해 사업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을 택했다. 반도체 부문에 속해 있으면 적자 사업부 직원에게도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해 '성과 있는 곳에 보상한다'는 원칙은 빛을 잃었지만 급여 수준에 따라 'n분의 1' 형태로 나눠주는 성과급 체계는 공고해졌다. 보상 기준은 개인의 '기여' 대신 '소속'이다.

탁월한 성과를 올린 개인에게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가 아니라 경기 사이클상 호황기를 맞은 사업 부문에 속해 있어야 성과급을 받는 구조다. 노사 모두 파국을 막기 위한 결단이었지만, 이 타협이 삼성이 자랑해온 '초격차'(경쟁자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 기술·조직·시스템의 우위)를 지속할 동력을 갉아먹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상한선 없는 특별경영성과급' 도입은 분명 파격적이다. 일반 임직원에게는 연봉의 수 배에 달하는 막대한 보상이 주어질 수 있어 동기부여 효과가 작지 않다. 하지만 분배 방식이 '개인 연봉 비례'라는 점은 핵심 인재들에게 딜레마를 안긴다. 차세대 공정이나 혁신적 청사진을 제시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린 소수의 'S급 인재' 입장에서는 자신의 기여가 'n분의 1'로 희석되는 현실이 불공정하게 느껴질 수 있다. 연봉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이유로 불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속에 쌓이는 박탈감도 작지 않을 것이다.

TSMC를 글로벌 파운드리 기업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반도체 엔지니어 량멍쑹은 2009년 17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 대학교수의 길을 택했다. 삼성전자는 2011년 량멍쑹을 시스템LSI사업부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력 향상에 크게 기여한 그는 짧은 재직 기간에도 파운드리 사업의 기틀을 놓아 '삼성 파운드리의 갓파더'로 불렸다. 지금은 중국 SMIC로 자리를 옮겨 첨단 공정기술 개발을 이끌고 있다. 그의 행보로 대만, 한국, 중국 반도체 산업 지형이 바뀌었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은 2002년 사장단 워크숍에서 "21세기에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 명의 직원을 살린다"고 역설했다. 이른바 '천재경영론'이다. 이후 삼성은 S급 인재 확보에 전사적 역량을 쏟았고, 한국 기업 전반에 인재 경영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S급 인재를 붙들어 두어야 할 보상 체계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 대기업 특유의 연봉 비례 성과급 구조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만족시키기 어렵다. 변화의 출발점은 현금 중심 보상에서 주식 연계 보상으로의 전환일 것이다. 보상 기준을 단기 실적이 아닌 기업가치 상승분과 연동해야 인재와 회사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장기적인 헌신을 끌어낼 수 있다.

직원 평가의 정밀한 등급화와 투명한 기준 공개도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모호함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결국 핵심 인재의 이탈로 이어진다. 소속 부서가 아닌 '개인의 기여도'를 철저히 객관화하고 회사의 명운을 바꾼 인재에게는 상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보상을 안길 수 있어야 한다. 기여가 아닌 소속을 기준으로 보상하는 기업에 남을 S급 인재는 없다. 그들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초격차도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