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포용금융 재설계에 나선다. 그동안 새도약기금, 신용사면, 정책서민금융 공급 확대가 금융소외계층을 우선 구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금융배제가 반복되는 구조 자체를 손보겠다는 구상이다. '포용금융 전략 추진단'을 띄워 신용평가, 서민금융기관 역할, 건전성 감독, 채권추심 시장까지 금융시스템 전반을 다시 설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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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금융 2.0 첫 구조개혁…추심시장 룰 칼댄다━
금융당국이 추진단 가동과 함께 꺼낸 첫 구조개혁 카드는 매입채권추심업 허가제 전환이다. 포용금융 전략 추진단이 신용평가와 금융기관 역할 등 금융배제의 '앞단'을 손보는 체계라면, 매입채권추심업 개편은 연체 이후 채권 매각과 추심으로 이어지는 '뒷단'의 질서를 다시 짜는 작업이다. 한 번 연체한 채무자가 장기·과잉 추심에 묶여 경제활동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악순환을 끊겠다는 계획이다.매입채권추심업은 금융회사나 대부업자로부터 연체채권을 사들여 채무자에게 직접 추심하는 업종이다. 금융회사가 부실채권을 매각해 건전성을 높이고 유동성을 확보하도록 하는 대출제도의 후단 기능을 맡아왔다. 그러나 채무자의 회생·재기보다 채권 회수에 무게가 쏠리면서 장기·과잉 추심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현행 매입채권추심업은 등록제로 운영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부실채권 정리 과정에서 등장했고, 2009년 대부업법 개정을 통해 제도화됐다. 이후 자기자본 요건 상향 등 규율이 강화됐지만 금융위는 등록제가 최근의 사회·경제적 요구에 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규제 차익이다. 원채권 금융회사의 위탁을 받아 추심하는 신용정보회사, 즉 채권추심업은 허가제로 운영된다. 반면 매입채권추심업은 채권을 직접 사들인 뒤 채권자로서 계좌압류 등 법적 조치까지 할 수 있음에도 등록제로 운영돼 진입과 영위에 사실상 제약이 없다. 금융위는 이 같은 '유사 기능, 다른 규제'가 채무자 보호에 취약한 구조를 만들었다고 봤다.
영세업체 난립도 장기·과잉 추심을 부르는 구조적 요인이다. 2025년 말 금융위 등록 매입채권추심업자는 911개사다. 이 가운데 매입 연체채권을 보유한 업체는 498개사, 이 중 연체채권을 100건 이상 보유한 업자는 177개사다. 상위 30개사의 보유잔액 비중은 전체의 86%에 달한다. 민감한 연체정보를 대량으로 취급하지만 영세성으로 인해 전산설비·보안 투자가 미비해 해킹에 구조적으로 취약한 점도 우려된다.
금융위는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해 매입채권추심업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한다. 허가요건에는 ▲금융회사의 50% 이상 출자 ▲자본금 30억원 ▲타당하고 건전한 사업계획 ▲대주주 요건 ▲전문성 등이 포함된다.
업무 규율도 강화한다. 매입채권추심업자는 법령에서 정한 업무 외에는 겸영이나 부수업무 영위가 제한되는 포지티브 방식으로 전환된다. 이해상충 방지를 위해 금전대부업과 대부중개업 겸영은 금지된다. 채권추심법, 개인채무자보호법뿐 아니라 채권추심 및 대출채권 매각 가이드라인도 내규와 업무 과정에 반영하도록 유도한다.
기존 업체에는 법 시행일부터 3년의 유예기간을 준다. 유예기간 중 허가를 취득하지 못한 업체는 보유 연체채권을 등록 만료 시점부터 6개월 안에 소각하거나 다른 금융회사·매입채권추심업체에 매각해야 한다. 금융위는 업계 의견수렴을 거쳐 8월 대부업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연내 국회 통과를 목표로 입법을 추진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채권추심 시장 개편의 방향을 '채권 회수'에서 '채무자 보호와 재기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체에서 소각까지 채무의 전 주기에 걸쳐 '채무자 보호 및 신속한 재기 지원'이라는 포용금융의 원칙이 관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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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평가부터 감독체계까지…금융배제 원인 전면 점검━
매입채권추심업 개편만으로는 금융배제의 굴레를 온전히 끊어내기 어렵다. 이에 금융당국은 '포용금융 전략 추진단' 내 감독총괄·정책서민·금융산업·신용인프라 등 4개 분과를 가동해 금융배제를 낳는 근본적인 구조적 원인을 진단하고 금융 시스템 전반을 포용적으로 재설계하는 작업에 착수한다.먼저 감독총괄분과는 금융회사 내부에 포용금융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다룬다. 금융회사 내 포용금융 최고책임자(CIFO) 지정, 임직원 면책, 지배구조 정립 등 금융시스템 전반의 규범과 철학을 살핀다.
정책서민분과는 정책서민금융 체계 전반을 점검한다. 정책자금 공급 확대뿐 아니라 금융·고용·복지 복합지원 모델과 포용금융 종합평가체계 구축 등이 주요 의제가 된다. 금융산업분과는 인터넷은행과 상호금융 등 서민금융기관의 역할 강화와 건전성 규제 전반을 논의한다.
신용인프라분과는 신용평가 체계 개선을 맡는다. 신용평가가 과거 연체 이력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상환능력과 상환 의지를 반영할 수 있도록 연체정보 활용 기준과 비금융정보 활용 체계를 함께 정비한다. 한 번의 연체 이력이나 금융거래 부족이 장기간 금융접근성 제약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완화하기 위한 작업이다.
운영 방식도 기존과 다르게 가져간다. 금융위는 추진단을 정부와 유관기관뿐 아니라 학계, 시민단체, 재야 전문가, 현장 실무자까지 폭넓게 참여하는 구조로 만들 계획이다.
과제 발굴 단계부터 현장성과 문제의식을 가진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켜 정부 스스로 기존 금융시스템의 관성에 안주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고, 근본적이고 전향적인 해법 마련에 주력하겠단 구상이다.
논의 과정도 공개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매 회의 종료 후 논의 쟁점, 제기된 이견, 다음 회의 주제 등을 공개해 정책 논의의 투명성을 높일 예정이다. 오는 6월 현장 대토론회 방식으로 추진단을 본격 가동하고 이후 분과별 수시 회의를 거쳐 결론이 도출되는 과제부터 순차적으로 발표한다.
이억원 위원장은 "포용적 금융으로의 대전환은 단기간에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다"라며 "포용적 금융은 금융이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금융, 사람을 살리는 금융으로 거듭나기 위한 구조적 변화의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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