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MC 해머는 그 규칙을 끝까지 지킨 사람이었다. 1990년 'U Can't Touch This'로 세계를 흔들고 이듬해에만 3300만달러를 벌어들인 그는, 고향의 '호미' 200여 명을 직원으로 들이고 매달 50만달러를 지급했다.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6년 그는 거액의 빚을 안고 파산했다. NBA 전설 앨런 아이버슨은 한때 50명에 이르는 식솔을 거두다 2억달러 가까운 돈을 날렸다. 학자들은 성공한 한 사람에게 공동체가 청구서를 내미는 문화에 블랙 택스(black tax)라는 이름을 붙였다.
문제는 그 밑에 깔린 생각이다. '국민배당금'이든 '공공재'든, 두 말이 딛고 선 전제는 같다. 기업이 거둔 이익의 일부는 애초에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다. 두 사람은 그 몫을 '초과이윤'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 산업을 지배하는 것은 초과이윤이 아니라 '초과위험'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호황과 불황이 극단을 오가는 세계다. 기업은 수십조원을 먼저 투자하고, 그 결실은 몇 해가 지나서야 거둔다.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불과 3년 전인 2023년만 해도 SK하이닉스는 7조원이 넘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15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냈다. 지금의 이익은 그 위험을 견디고 살아남은 자에게 주어진 보상이다.
경제학은 이 점을 일찍이 정리해뒀다. 훗날 시카고학파의 뿌리가 된 프랭크 나이트는 1921년 펴낸 '위험과 불확실성, 그리고 이윤'에서 오랜 수수께끼를 풀었다. 기업이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배경에는 '불확실성'이 있다는 것이다. 몇 해 뒤의 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그 위험은 끝내 누군가 떠안아야 한다. 이윤은 그 짐을 짊어진 자에게 돌아가는 보상이다. 조지프 슘페터도 같은 결론에 닿았다. 이윤이란 남보다 먼저 새 길을 연 혁신가의 차지이며, 경쟁자가 뒤따르는 순간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메모리 기업이 받은 것이 정확히 이것이다. 그러니 이를 '정상을 넘어선 초과'라 부르는 건 번지수가 틀렸다. 이윤은 본래 들쭉날쭉한 불확실성의 대가일 뿐, 따로 잘라낼 '초과분'은 없다.
그렇다면 남은 몫은 누구의 것인가. 위험을 짊어진 투자자와 그 성과를 만들어낸 임직원의 것이다. 그것을 나누든 다시 투자하든 그들이 정할 일이다. 지난달 삼성전자가 내놓은 5년간 5조원의 사회 환원 계획도 회사가 스스로 택한 것이다. 같은 환원이라도 기업이 정해 내놓는 것과 국가가 '모두의 몫'이라며 떼어 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정부의 몫은 따로 있다. 호황은 이미 법인세라는 이름으로 나라 곳간을 채운다. 정부가 들여다볼 것은 그렇게 늘어난 '초과세수'를 어떻게 쓰느냐이지, 기업의 이익을 전 국민이 나눠 갖는 일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취임 1주년 회견에서 초과세수와 초과이윤은 "완전히 다르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메모리의 왕좌는 세습되는 자리가 아니었다. 1980년대 D램을 호령하던 일본은 90년대 들어 한국에 그 자리를 내주었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엘피다는 2012년 무너져 미국 마이크론의 품에 안겼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막대한 보조금을 뿌리며 우리의 뒤를 바짝 쫓는다. 미국은 칩스법으로 5년간 527억달러를 자국 반도체에 쏟아붓는다.
해머는 돈이 영원히 넘쳐날 줄 알고 호미들에게 퍼주다 파산했고, 스웨덴은 존재하지 않는 '초과이윤'을 나눠 가지려다 나라의 간판 기업을 해외로 내몰았다. 둘 다 허상을 좇은 대가였다. 위험은 지지 않으면서 있지도 않은 몫을 나누려 들면 정작 있던 과실도, 그것을 만들 사람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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