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 정상회의 등 유럽 순방 일정을 마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샴페인은 잔에 따르는 순간 가장 화려하다. 기포는 눈부시게 솟아오르지만 오래 머물지 않는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자 오래 정치권을 지켜본 한 지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대선 도전에 실패한 어느 정치인의 부인이 위로 자리에서 샴페인 잔을 바라보다 "꼭 지지율 같네"라고 했다는 것이다. 권력도 그렇다. 가장 높이 치솟는 순간이 가장 불안정하다.
지지율은 오르내리는 것이 정치의 숙명이다. 그러나 한 번 꺾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좀처럼 되돌아오지 않는다. 어느 정권이든 취임과 동시에 레임덕이 시작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년 동안 대선 득표율을 크게 웃도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행정부와 국회를 장악했고 사법개혁의 주도권도 확보했다. 지방 권력까지 더해지면 '단군 이래 가장 강한 대통령'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반도체 초호황까지 겹치면서 "운이 좋은 대통령"이라는 말도 따라다녔다.


그런데 지방선거 이후 공기는 사뭇 달라졌다. 집권 1년을 갓 넘긴 대통령에게 여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권력은 짧다"고 맞섰다. '90도 폴더 인사'를 두고도 온갖 해석이 쏟아졌다. 왕조 시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린'을 건드리는 듯한 일이 예사로워졌다.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많은 사람은 이를 유튜브 정치나 팬덤 정치의 영향으로 설명한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상이다. 본질은 권력이 작동하는 회로가 바뀌었다는 데 있다. 과거 정당은 여론을 걸러내고 다듬는 필터였다. 대통령이 당을 이끌고, 당은 의원을 움직였으며, 의원은 지지층을 설득했다.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흘렀다. 지금은 순서가 뒤집혔다. 플랫폼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형성된 강성 지지층의 정서가 당을 움직이고, 당의 기류가 다시 대통령을 압박한다. 권력은 아래에서 위로 역류한다. 대통령이 당을 통제하지 못하는 시대가 아니라, 당조차 지지층을 통제하지 못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문제는 비전도 질서도 없는 지지층의 분열이다. 최근 여권에서 벌어진 '적통' 논란과 '파묘' 공방, 멸칭 경쟁은 그 단면이다. 누구는 'ABC론'이니 '코어층'이니 하며 카테고리를 나누고 "증축을 하랬더니 재건축을 한다"며 그럴듯한 프레임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당권 투쟁이다. 정치적 언어만 복잡해졌을 뿐 팬덤 동원이라는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이 대통령 역시 이런 정치 환경의 수혜자이자 산물이다. 변방 정치인이던 그는 손가락혁명군과 개딸로 이어지는 팬덤의 힘을 발판으로 중앙 정치의 중심에 섰다. 정청래 대표 역시 같은 정치 문법을 구사하고 있다. 어쩌면 더 능숙한 방식으로 당 조직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호남 반도체를 둘러싸고 전당대회를 의식한 결정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정치 지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그런 해석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현실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 점에서 대통령이 당내 권력투쟁의 한 축이 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이겨도 상처가 남고, 지면 치명적이다.

지금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권력이 아니라 '정치적 권위'다. 이 대통령은 "나는 선거 전후로 변한 것이 없는데 국정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달라져야 한다. 직전 총리는 그를 '괴력의 슈퍼맨', '악덕 상사'라고 표현했다. 누구보다 부지런한 대통령이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 할수록 오히려 권위는 소모된다. 국무회의 생중계나 SNS를 통한 잦은 의견제시도 마찬가지다. 만기친람이 권위의 원천이 되진 못한다. 대통령이 전면에 설수록 국정은 대통령 개인에게 더 의존하게 될 뿐이다.

이 대통령은 중도 보수를 아우르는 '구조적 다수'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권력을 더 행사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권위는 자신에게 불리한 문제를 피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공소 취소 문제도 그런 차원에서 봐야 한다. 그것이 여권 내부 권력투쟁의 고리가 되고 국정 운영의 부담으로 남아 있는 한 대통령은 스스로 정치적 공간을 좁히게 된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매듭짓는 것, 그것이 국가 지도자의 권위다.

긴 시간의 흐름으로 보면 권력이야말로 샴페인 거품과 닮았다. 대통령의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권력의 회로가 바뀐 시대, 이제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권력의 시간이 아니라 '권위의 시간'이다.
정용관 동행미디어 시대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