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이재명 대통령(가운데)이 반도체 투자계획을 밝힌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있다./ 사진 = 뉴스1


윤석열 정부에선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벌어졌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오래 남는 불편한 기억들이 있다. 2023년 12월 윤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대동하고 부산 국제시장을 찾아 연출한 '먹방' 장면이 그중 하나다.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총동원해 2030년 엑스포 유치전을 벌였다가 사우디아라비아에 패배한 직후였다. 월드컵 32강 진입에 실패한 한국 대표팀처럼 부산 시민에게 고개 숙이고 미안한 내색을 해야 할 때 윤 대통령은 총수들을 뒤에 '병풍' 세운 채 전통시장에서 웃으며 떡볶이, 오뎅 먹는 사진을 찍었다.


이 장면을 보고 회식 날 부하 직원들을 노래방에 억지로 끌고 가 혼자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직장상사를 떠올린 이들이 적지 않았다. 기업인들에게 참석 여부를 '선택'할 자유가 주어졌다면, 새해 사업계획을 세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연말에 이렇게 한가하고, 계면쩍은 면피성 행사에 자발적으로 갔겠냐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때 많은 이들이 느낀 불편한 감정은 유난히 '반기업 정서'가 강한 한국인의 내면에서 뭔가가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였던 것 같다. 그 신호는 시간이 흐를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성년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호감 지수'는 100점 만점에 60.1점으로, 2003년 첫 조사 이후 처음 60점을 넘겼다. 일부 몰지각한 비호감 기업인에 대한 평가가 섞인 걸 고려하면 대표기업에 대한 호감도는 이보다 훨씬 높고, 대다수 정치인·정당에 대한 호감보다 웃돌 것이다.


코스피 폭등을 견인해온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놀라운 퍼포먼스도 이런 평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대표스타인 엔비디아 젠슨 황과 우리 대표 기업 총수들이 치킨집 회동을 하고, '깐부'를 맺는 장면도 호감도에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 삼성전자 주식에 투자한 개미 투자자만 460만 명, SK하이닉스는 120만 명이다. 코스피 시총 절반을 넘는 두 기업의 움직임은 1440만 개미 투자자의 하루하루 희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변화를 제일 늦게 이해하는 이들이 586, 686 정치인들일 것이다. 6·3 지방선거에서 여당에 불리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는 스타벅스 '5·18 탱크데이 이벤트 사태'의 진행 과정을 보면 그렇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폄훼할 의도가 있었다 해도 기업 총수가 사과하고 대표를 교체하고 책임 있는 실무자를 처벌하면 될 일이지, 특정 기업을 겨냥해 정부 여당이 불매 운동을 벌이는 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이들이 소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달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행사를 주재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왼편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오른편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앉았다. 이들이 800조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계획 등을 발표한 행사의 클라이맥스에서 이 대통령은 단상에 올라 두 회장에게 감사의 90도 '폴더인사'를 했다. 역대 어떤 대통령도 보여준 적 없고, 윤 정부 '먹방 퍼포먼스'와는 완전히 상반된 기업인에 대한 깍듯한 예우였다.

그런데 나무랄 데 없는 이 장면을 보며 석연찮은 감정을 느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수도권에 이은 '제2 반도체 클러스터'를 낙후한 광주·전남 지역에 세우자는 데 반대하지 않지만, 입지 결정 과정에서 기업들이 모든 조건을 일일이 따져보고 '자발적'으로 투자에 나선 것인지는 믿음이 가지 않았던 거다. "호남에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게 좋게 말하면 유도, 좀 심하게 얘기하면 유인(한 것)" "억압, 강요는 하지 않았다"는 행사 다음 날 이 대통령의 설명을 듣고 "역시나…"하며 발언한 의도와 정반대의 확신을 굳힌 이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공정성, 자율성에 높은 가치를 두는 2030 세대의 눈에 이런 과정이 마냥 긍정적으로 비치긴 어렵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아직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한 투자 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반면 이 대통령은 호남과 용인 클러스터의 '동시 추진'을 못 박았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번 정부 임기 내 완공을 목표로 도전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미묘한 엇갈림을 보면서 정부의 강한 의지보다, 기업인들이 느낄 수 있는 곤혹스러움과 난감함에 더 깊이 감정이입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대도약 프로젝트'를 통해 정부가 목표하는 바가 무엇이든 간에, 국민의 이런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면 기대한 효과를 거두긴 쉽지 않을 것이다.
박중현 동행미디어 시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