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이 헌법적 잣대로 행정부를 견제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추진한 상호 관세 조치에는 위법 판단을 내렸고, 연방준비제도 이사에 대한 일방적 해임 시도를 막아 중앙은행의 독립성도 지켜냈다. 선거일 이후 도착한 우편투표를 유효표로 인정하며 선거 제도를 바꾸려는 대통령의 압박에도 제동을 걸었다. 이 같은 일련의 판결은 권력은 누구도 헌법 위에 설 수 없으며, 모든 권력은 견제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더 주목할 점은 이런 판단이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현재 미국 대법원은 보수 성향 대법관 6명, 진보 성향 3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보수 성향 대법관들 가운데 일부는 주요 사건에서 행정부를 견제하는 데 동참했다. 정치적 성향이나 임명권자보다 헌법 원칙과 사법부의 독립을 우선한 것이다.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올해 초 여당은 이른바 '사법 3법'을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추진해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판결이 나올 때마다 정치권은 진영 논리로 재판 결과를 재단하며 재판부를 압박하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다수 의석을 앞세운 입법권의 과도한 행사가 삼권분립의 기본 원칙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물론 사법부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국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권력과 진영에도 흔들리지 않는 독립성과 공정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선거로만 구현되는 게 아니다. 다수 의석도, 대통령의 권한도, 사법부의 권위도 모두 헌법이 정한 한계 안에서만 정당성을 갖는다. 입법부가 다수의 힘만 앞세우고, 행정부가 권한 확대에 몰두하며, 사법부가 독립성과 신뢰를 잃는다면 삼권분립은 형식만 남게 된다. 강한 권력일수록 더 강한 견제를 받아야 하고, 강한 기관일수록 더 큰 절제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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