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025년 10월23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인공지능안전연구소를 방문해 '딥페이크 탐지, AI에이전트 안전성 평가 시연'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3선·경기 용인시정)이 지난 3일 이후 현재까지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모욕적 이미지가 온라인에 유포된 것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은 때문이다. 가해 혐의자는 같은 민주당 당원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격권을 침해하는 정치폭력에 대한 처벌 강화 뿐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여야의 초당적 공동선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선 소속 정당을 불문하고 관련 범죄 연루자의 복당을 영구히 막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원칙을 도입하고 여야가 '인격권 보호 선언 채택' 등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지난 8일 이 의원의 얼굴로 모욕적 이미지를 만든 것으로 의심되는 피의자의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해 PC와 스마트폰, 하드디스크 등 디지털 기기를 확보했다. 현재 해당 기기에 대한 포렌식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압수수색이 단행된 날 민주당은 피의자를 당에서 제명했다.


"무관용 원칙 적용해야"
인격권을 침해하는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범죄 발생 현황과 기소/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범죄'(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제14조의3) 발생 건수는 처벌 조항 시행 첫해인 2020년 31건에서 2024년 550건으로 급증했다. 2021년 259건으로 뛴 뒤 2022년 170건과 2023년 168건으로 주춤하다 2024년 들어 3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그러나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대법원 전산자료에 따르면 허위영상물 처벌조항 시행일인 2020년 6월25일부터 2024년 6월30일까지 4년간 1심 판결은 87건에 그쳤다. 이 가운데 실형은 24건으로 나타났고 ▲집행유예 34건 ▲벌금형 14건 ▲선고유예 2건 ▲무죄 2건 ▲이송·결정 등 11건이었다. 정치인을 겨냥한 모욕적 게시물뿐 아니라 인신공격성 혐오 표현 등의 유통이 온라인 공간에서 급증하고 있지만 '풍자'와 '표현의 자유' 등으로 포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범죄의 기저에는 상대를 악마화하는 '증오의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정 계파 등 정치적 반대파를 깍아내리기 위해 디지털 기술 등을 무기로 사용하는 행태가 일상화됐다는 진단이다. '우리 편이면 괜찮다'는 침묵이 2차 가해를 키우는 가운데 익명성을 담보로 조회수와 자극을 좇는 온라인 문화까지 결합했다는 것이다.

송영길 민주당 전 대표(6선·인천 연수갑)는 이날 '동행미디어 시대'(이하 시대)와의 통화에서 "정치인은 비판받을 수 있지만 상대를 성적 대상으로 만들고 인격을 파괴하는 순간 표현의 자유가 아닌 범죄"라면서 "딥페이크 범죄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는 무관용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인뿐 아니라 유명인 등이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만큼 인격권 보호를 위한 여야의 초당적 선언이 필요하다"며 "상대를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증오의 정치를 넘어서는 정치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다극세계와 한국의 대응전략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상임위에 발 묶인 '딥페이크 피해 방지법'
차지호 민주당 의원(초선·경기 오산시)은 지난 2월 '딥페이크 피해 방지 및 삭제 의무에 관한 법률안'(딥페이크 피해 방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특정인의 얼굴과 성적 이미지를 합성한 디지털 위조물은 복제와 확산 속도가 매우 빨라 피해자의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그러나 법안은 아직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차 의원이 마련한 '딥페이크 4법' 패키지는 ▲성인 피해자 48시간·미성년 피해자 24시간 이내 삭제 의무화와 위반 시 매출 1% 과징금 부과(딥페이크 피해 방지법) ▲'성적 욕망·수치심 유발 목적' 요건 삭제와 입증 책임 현실화(성폭력처벌특례법 개정안) ▲성적 디지털 위조물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명시(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 ▲해외 플랫폼의 삭제 불이행 시 제재와 반복 위반 시 기술적 차단 조치 의무화(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을 포함한다.

차 의원은 이날 시대에 "정치권도 진영을 떠나 국민의 인격권을 보호한다는 원칙 아래 초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피해는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만큼 처벌뿐 아니라 신속한 삭제와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적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AI(인공지능)를 활용한 딥페이크 등 인격권 침해를 근절하기 위한 딥페이크 4법. / 그래픽=동행미디어 시대
전문가들은 딥페이크 등 인격권 침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려면 그 범위와 대상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진응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시대와의 통화에서 "딥페이크 등 인격권 침해에 대한 범위가 너무 넓다"며 "해외는 인격권을 침해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데 우리는 성적 수치심 등으로 명시되다 보니 경찰이나 검찰, 법원이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딥페이크 성범죄정보의 제작·유통을 형사처벌하는 국가들은 범죄 목적과 신체 부위·행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해 수범자의 법적 예측성을 확보하고 있다"며 "인신구속적인 형사처벌 규정을 두려면 명확한 범죄행위가 특정돼야 하는 만큼 현행 공직선거법과 성폭력처벌특례법상 딥페이크 범죄의 위법성 요건 개정을 합리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일각에선 과잉입법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최경진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가천대 법학과 교수)은 "특정인의 인격을 훼손할 목적으로 딥페이크를 제작·유포하는 경우는 아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예전보다 제작이 쉬워지고 확산 속도도 빨라 인격 훼손의 정도가 심해질 수 있는 만큼 가중처벌을 위한 추가 입법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AI로 영상을 만들어낸다고 해서 모두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며 "AI를 활용한 영상 제작·배포의 긍정적 활용 가능성이 저해되지 않도록 취지는 유지하면서도 처벌 범위와 내용 등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