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폭염에 지친 프랑스 파리의 시민들이 백화점에서 에어컨을 구입하기 위하여 장사진을 치면서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TV에서 보고 충격을 받았다. 몇 년 전에 방문했던 파리의 상대적으로 쾌적했던 여름과 루브르 박물관으로 상징되는 문화도시 파리의 이미지가 무더위로 인하여 바뀌는 것 같아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장마철이 예전보다 늦게 시작되었지만 장마가 지난 후 전국엔 이미 폭염주의보가 여러번 발령되었다. 올해가 얼마나 더울까 하는 예상이 일기예보의 주된 내용이지만 한가지 예측이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린다. 올해의 여름이 지난해의 여름보다 더욱 더울 것이지만 내년 여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시원하리라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에어컨 보급이 적은 것은 에어컨을 위한 실외기 설치에 주민의 동의와 관련 관청의 허가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환경과 건축물 미관을 중요시하는 프랑스의 사회적·문화적 수준이 이를 가능하게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앞으로 이와 같은 원칙이 지켜지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에어컨이 보급되기 전까지의 여름의 주된 냉방수단은 부채와 선풍기였다. 부채와 선풍기의 공통점은 개인의 시원함이 타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어컨이 여름 냉방의 주된 수단으로 자리 잡은 요즘은 개개인의 시원함이 타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외기가 설치된 건물 외벽을 지나다 보면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의 열기가 느껴진다. 대형 건물에서 내뿜는 실외기의 열기는 주변을 더욱 뜨겁게 달군다. 실외기를 통해서 배출되는 열기가 그대로 에어컨 설치 여유가 없는 쪽방촌을 더 뜨겁게 달구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북반구 국가(Global North)와 그렇지 못한 남반구 국가(Global South)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에너지와 전기 시설이 풍부한 부유한 나라에서 내뿜는 열기를 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국가에서 그대로 흡수·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후 위기를 둘러싼 갈등은 같은 시대를 사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계층·국가와 부족한 계층·국가에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자원이 무한대가 아니라 한정된 것임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오늘 시원하기 위해서 쓰고 있는 자원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후대 세대들의 자원을 당겨쓰고 있는 것과 같다.
점점 더워지는 지구를 식히기 위해서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고, 이것이 지구를 더욱 뜨겁게 만드는 것은 결국 현재 시원하기 위해서 미래에 더욱 더워지는 모순을 낳게 된다. 이는 결국 미래 세대가 사용해야 할 자원을 미리 사용하는 문제가 된다. 10여 년 전쯤에 직장 동료라는 개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직장이 가지고 있던 삭막하고 치열한 경쟁 관계를 동료들 간의 유대와 연대로 재해석한 직장 동료란 개념은 오아시스 같은 청량감과 신선함을 선사했다.
기후 위기가 심화하는 현 상황에서 과거 직장동료와 비교되는 '생태 동료'란 개념을 생각해 보았다. 이는 동시대와 미래 세대에 걸쳐서 지구상에서 살고 있거나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살아있는 생물의 기본적 권리와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미래에 살아가야 할 생물까지 확대하자는 것이다. 기후위기란 결국 인간이 계속 성장·발전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생물 자원을 포함한 모든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나아가 현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미래 세대가 사용해야 할 자원까지 당겨서 사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생태 동료란 인간의 과소비가 가져온 재앙을 지구를 살아가는 모든 생물에 대한 동료 의식으로 극복하고, 이를 미래 세대의 인간 후손을 포함한 모든 생물에게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미 인간은 모든 인간이 소비하고도 남는 충분한 생산을 하고 있으나, 성장을 위해 계속해서 미래 세대의 자원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맞이할 미래는 과연 어떤 것일까? 지구가 계속 더워져서 더욱 많은 미래 세대의 에너지를 당겨서 사용해야 하는 상황은 지구 자원의 유한성을 생각하면 더 이상 지속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인류의 해묵은 난제를 해결하고 있는 인공지능(A)이 기후 문제에도 특단의 해결책을 내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AI의 기반이 되는 반도체나 데이터 센터가 막대한 양의 전기와 물을 사용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AI가 발전함에 따라 그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것이 기후 위기 문제의 해결을 AI에만 의존할 수 없는 이유이다. 현재의 찌는 듯한 더위가 미래의 시점에서 볼 때는 가장 시원한 시기가 되어 버리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선 모든 살아있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생물들의 권리와 가치를 고려하고, 그들을 같은 생태계를 공유하는 동료로 인정하는 인식과 자세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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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장혁 삼일회계법인 AI트러스트위원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행정안전부 전자정부국장,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디지털 행정 전문가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특임교수를 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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