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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나이는 휴양지 선호도와 비례한다? 그건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의 섣부른 판단이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는 한가하지만 바쁘고, 할 게 많지만 의무는 없다. 모든 것을 누릴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이곳에선 선택만 하면 된다. 어쨌든 코타키나발루에서 당신은 자유다.
◆자유의 모든 것, 캘리베이
코타키나발루 시내에서 4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작은 동네에 닿는다. 땅의 생김새가 용꼬리처럼 삐죽 나와 있어서 한자로는 '용미만'인데, 보통 땅 주인의 이름을 따서 ‘캘리베이’라고 부른다.
여긴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다. 이곳으로 가기 위해선 강을 건너야 한다. 반대편이 눈앞에 뻔히 보이는 작은 물길이다. 초가처럼 생긴 통통배가 여행자를 맞으러 나오고 맹글로브 나무로 둘러싸인 강물을 건넌다. 강을 건너며 어르신이 통발을 툭툭 강물 속으로 던져 넣는다. 미끼를 담았는데 뭔가 잡을 게 있나 보다.
이곳을 정확히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유원지? 해양시설? 바닷가? 마을? 마을 같지만 주민이 없고, 시설이라기엔 대단한 시설이 없고, 바닷가지만 강가다. 위락시설? 글쎄…. 이래서 그냥 캘리베이로 낙점. 그렇다면 ‘무어라 정의하기 애매한’ 이곳에서 뭘 하나. 하나씩 꼽아보면 할 게 많은데,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취향대로 할 만큼 쉬거나 즐기면 된다.
식당 앞 그늘 집은 ‘바틱’(Batik)을 그리는 곳이다. 하얀 천에는 파라핀으로 밑그림이 그려져 있고 물감과 붓이 준비돼 있다. 바틱은 말레이시아 전통 나염 기법이다. 세계 최고의 천연식물염료를 사용해 색이 선명하고 삶아도 물이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간단한 밑그림에 나름의 예술적 재능(?)을 발휘해 색을 쓱쓱 칠해 두면, 햇빛과 바람을 받아 한두 시간 후 잘 마른 손수건 한장을 가질 수 있다.
이것만큼 좋은 기념품이 없다. 다만 재능이 없으면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한쪽에는 과녁이 줄을 서 있다. ‘블로우파이프’(blowpipe) 체험인데 예능 프로그램에서 봤던 ‘독침’이다. 물론 독 없는 독침이다. 아마도 말레이시아 원주민들이 사냥을 위해 사용하던 무기인가보다.
바닷가 모래는 한없이 보드랍다. 산호섬의 발을 찌르는 모래가 아쉬웠다면 이곳은 맨발로 뛰어다녀도 문제가 없다. 나무 파라솔은 그야말로 천연이다. 나무 밑동을 테이블 삼아 칵테일 한잔을 놓고 늘어져 있기에 딱 좋다. 여행사 포스터에서나 봐 왔던 그런 그림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웨이크보드나 서핑 장비를 빌려 파도타기를 해 봐도 좋다. 무엇보다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굵은 그물로 엮어진 해먹이다. 이벤트용 총천연색 해먹이 아니라서 더 자연스럽고 예쁘다. 해먹에 몸을 태우고 흔들흔들 하다 보면 어느덧 오수에 빠져든다. 망중한. 시계추 흔들리듯 시간이 빨리도 간다. 점심에는 이곳 식당에서 준비한 말레이시아 음식을 맛본다. 바다에선 햇빛만 맞아도 지방이 타는지 하는 일 없이 밥맛은 꿀맛이다.
강에서도 할 게 많다. 맹글로브 나무가 둘러싸여 있고 연못인가, 호수인가 하겠지만 이곳은 분명 흐르는 강이다. 물이 탁해 보이는 것은 맹글로브 나무의 호흡 때문이다. 뿌리로 호흡을 하는 이 나무는 뿌리가 물 위로 드러나 있고, 여기에서 산소가 뿜어져 나온다. 산소도 일종의 가스인지라 물을 뿌옇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물은 탁해 보여도 산소 많은 깨끗한 물이니 안심하고 뛰어들어도 된다.
파도 많은 바다에서 수영이 어려웠다면 여기선 둥둥 떠 있어도 어디로 휩쓸려 갈 일 없다. 카약이나 바나나보트를 타도 좋다. 이곳 캘리베이에 들어온 이상 모든 장비와 놀이는 무료다. 그러니까 아끼지 말고 즐기는 게 미덕이다.
아침에 던져 둔 통발은 어찌 됐을까. 오후가 되어 통발을 하나씩 건져 올리니 그 안에 게가 있다. 한국에서 홍게와 대게는 봤어도 에메랄드 빛 화려한 민물 게는 처음이다. 이런 무늬는 손톱만한 작은 게도 마찬가지다. 강가 작은 갯벌에선 수많은 게 구멍과 마치 장난감 게들이 모터를 달고 흙 속을 드나드는 것 같은 신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반딧불이의 추억
코타키나발루의 가장 낭만적인 코스는 여기이다. 연인이나 신혼부부에게 딱 하나만 추천하자면 역시 이걸 추천할 것이다. 흔히 ‘반딧불투어’라고 하는 여행코스는 한마디로 반딧불을 보러 가는 여행이다. 한낮이 지날 무렵 시내에서 차를 타고 정글로 떠난다.
코타키나발루에서 차로 2시간쯤 가야 하기 때문에 반딧불만 보고 오기는 이동시간이 조금 아까울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상품이 정글탐험을 포함하고 있다. 반딧불을 보는 곳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클리아스 강가고, 최근에는 나나문 강으로도 많은 여행자들이 모이고 있다.
이곳에도 맹글로브 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우기에는 무지개를 볼 확률도 높다. 특유의 하얗고 풍성한 뭉게구름이 떠 있는 청명한 하늘과 숲의 싱그러움, 강물에 비치는 숲의 반영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강가에 도착하면 간단한 티타임을 갖는다. 영국인들이 전한 ‘에프터눈티’ 문화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자동차 여행으로 지친 몸도 쉴 겸 달달한 말레이시아 식 커피 한잔과 스낵으로 오후의 여행을 준비한다.
보트를 타고 맹글로브 나무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다니다 보면 원숭이와 도마뱀 같은 야생동물을 발견한다. 특히 긴코원숭이는 보르네오에서만 서식하는 희귀종이라고 하니 볼 수 있다면 행운이다.
큰 배를 타면 배 위에서 저녁도 먹고, 석양도 보고, 반딧불도 보는데, 작은 배라면 배에서 내려 저녁 먹을 곳으로 이동한다. 물론 밥만 먹지는 않는다. 해넘이가 아름다운 바닷가로 간다. 한편 큰 배를 탄 사람들은 식사를 하며 강의 일몰을 감상한다.
드디어 쇼타임. 주인공은 항상 마지막 등장이다. 긴코원숭이와 아름다운 해넘이에게 미안하지만 지금까지는 하이라이트를 위한 킬링타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이 어둠에 휩싸여 더 이상 볼 것 없는 밤이 오면 그들이 불빛을 내기 시작한다.
몇 시간 전 초록을 뽐내던 맹글로브 숲은 수만개의 크리스마스 전등을 켜 놓은 듯 작고 하얀 빛을 반짝인다. 이때 누군가 손전등 불빛을 손으로 가렸다 떼기를 반복한다. 신기하게도 나무에서 빛나던 반딧불이가 손전등을 향해 날아온다. 반딪불이 떼 지어 오면서 나무로부터 약한 궤적을 만든다. 이걸 어디서 봤더라. 그렇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어느 영화사의 시그널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 컴퓨터 그래픽으로나 가능할 줄 알았던 그 환상의 그림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굳이 과학적 설명을 하자면 그들에게 빛은 구애의 신호라고 한다. 사람이 빛을 만들면 이들은 그 빛을 경쟁자로 인식해 더 강렬한 빛을 낸다고 한다. 이 순간 그런 원리를 따지고 묻기엔 순간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다.
사람들은 서로의 어깨에, 머리에, 손에 반딧불이를 올려주며 이 ‘하루살이 같은 벌레’를 즐긴다. 벌레라면 소리부터 지르는 여자들도 그들을 마다하지 않는다. 평생 이렇게 벌레를 사랑스럽게 바라본 적이 있던가. 이야말로 매직이다. 뱃머리에 앉은 연인은 천연 불빛 아래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속삭이고, 친구들은 반딧불이 ‘불’ 장난에 여념이 없다. 아이들은 반딧불이 한 마리를 숙소로 가져갈까 놔줄까 갈등이다.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이다. 보통 사람의 카메라에는 잡히지도 않는다. 온전히 가슴 속에, 기억 속에 간직해야 할 여행의 추억이다. 언젠가 기억도 희미해지겠지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순수하게 감탄하고 행복했던 경험은 인생의 풍요로운 자양분이 될 것이다.
확실히 자연은 자연스럽게 즐길 때 가치가 있다. 이 하나를 보기 위해 몇 시간을 달려오고, 기다렸다. 사람이 편하자고 그들을 우리가 있는 곳으로 불러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기억은 더 강렬하고 아름답게 남을 것이다.
☞ 한국에서 코타키나발루 가기
한국에서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뿐 아니라 진에어, 이스타젯 등 저가 항공도 직항 운항을 하고 있다.
☞ 캘리베이, 반딧불이 투어 예약하기
캘리베이나 반딧불이 투어는 현지투어를 이용해 보다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다녀올 수 있다. 현지투어를 즐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 국내 여행사에서 제안하는 옵션 상품 이용하기: 사이트를 통해 직접 구매하거나 현지 가이드를 통해 계약할 수 있다.
2. 하나프리(자유여행 예약): http://www.hanafree.com
3. 현지에서 여행상품 이용: 숙박하는 호텔에 문의하거나 여행자들이 몰리는 센터포인트 쇼핑센터, 제셀튼포인트에 가면 여행사 사무실이나 부스가 많이 있다. 이곳에서 원하는 투어 상품을 예약할 수 있다.
< 숙소 >
Nexus Resort: 가격 대비 위치와 시설이 좋아 한국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리조트이다. 아름다운 해변에 규모에 비해 코지한 느낌이 있고 골프장, 스파, 마사지 등 리조트로써 시설을 잘 갖추고 있다.
http://www.nexusresort.com / 문의전화: (60 88) 480 888
Le Meridien Hotel: 코타키나발루 시내 한가운데, 워터프론트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야시장, 필리피노 마켓 등 시장과도 가깝고 쇼핑센터와 유명한 퍼브, 식당에 가기도 좋다. 자유여행자들에게 유리한 호텔이다.
http://www.lemeridienkotakinabalu.com / 문의전화: (60 88) 32 2222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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