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중 한사람인 김흥수 화백. 6월9일은 그가 사망한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김 화백은 지난해 6월9일 새벽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유족은 “새벽에 잠깐 일어나서 물을 마시고 얼마 뒤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웠지만 그래도 편안하게 가셨다”고 별세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그보다 1년6개월 전인 2012년 11월19일에는 그의 부인인 장수현 ‘김흥수미술관’ 관장이 평창동 자택에서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부인이 남편보다 먼저 사망한 것은 보편적이지만 부인의 나이는 남편보다 43살이나 연하였다. 옛날이라면 딸을 넘어 손녀뻘 나이다.

30세 신부가 73세인 신랑과 결혼할 때 많은 사람들은 둘이 함께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지 의아해했다. 그러나 1992년 결혼 후 두 사람은 금실 좋은 잉꼬부부로 20년을 해로하다 93세인 남편보다 60세인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장수현씨는 덕성여대 미대 재학 중 김 화백과 사제지간으로 만나 8년여간 함께 산 뒤 결혼식을 치른 것이므로 3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한 셈이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주례를 맡아 “만년청년과 절세가인의 결합은 의욕과 사랑으로 또 하나의 예술을 창조했다”고 덕담했다.

장수현씨는 결혼 후 단순히 아내로서만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술적 동반자 역할도 했다. 남편으로부터 “세상을 보는 법과 미술을 보는 법을 배운다”며 남편의 경륜에 존경을 표하며 살았다.

남편의 전시회를 부인인 장씨가 기획할 때 “나이가 들어 몸이 말을 안 들어도 뭐든지 완벽하게 하려는 남편을 보며 정신력의 위대함을 배웠다”며 “남편의 카리스마를 살려주면서 나이에 맞는 창작욕을 불태울 수 있도록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내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여성동아 2004년 6월호).

◆조형주의 ‘하모니즘’ 창시

북한산이 보이는 평창동에 ‘김흥수미술관’을 세워 부인인 장씨가 관장을 맡아 작품 상설전을 열었으며 그곳에서 김화백은 미술을 공부하는 아이들을 직접 지도하는 ‘영재 미술교실’을 매주 운영했다.

김 화백은 아내가 자신을 돕느라 개인전을 한번도 열지 못한 것을 남편으로서 안쓰럽게 여겼다. 이에 아내가 작고한 후 유작 30여점을 선보이는 기회로, 장 관장 1주기 추모전인 ‘고 장수현, 김흥수 예술의 영원한 동반자’를 열었다.


 

고 김흥수 화백. /사진=뉴시스 박주성 기자

김흥수 화백은 1977년 구상과 추상을 하나의 화면에 담는 조형주의인 일명 ‘하모니즘’을 창시해 화단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여성의 누드와 기하학적인 도형을 하나의 화면에 대비시킨 추상화는 이질적인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화풍이었다.

구상과 추상의 화면을 병치한 조형주의를 통해 창의적인 예술성을 만들어낸 그의 작품들은 1990년 프랑스 파리 뤽상부르미술관, 1993년 러시아 모스크바 푸슈킨미술관, 생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박물관 등에 전시돼 호평을 받았다. 프랑스 파리 살롱 도톤상(1982년), 문화훈장 옥관장(1996년), 대한민국 금관 문화훈장(1999년)도 수상했다.

그는 하모니즘을 창시하기까지 1944년 일본 도쿄미술학교 졸업, 1952년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장 및 서울대 미술대학 강사 역임, 1955년 프랑스 파리 유학, 1961년 귀국 후 국전 심사위원 역임, 성신여자대학교 교수(1965~1969), 미국 펜실베니아미술학교 교수(1968~1980)를 지냈고 여러 미술전에서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특히 한국, 일본, 프랑스, 미국 등에서 조형주의 하모니즘을 개척한 인물로 알려졌다. 그가 ‘한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이유다.

◆90대에도 불태운 예술혼

김 화백은 ‘조형주의 예술의 선언’에서 “음과 양이 하나로 어울려 완전을 이루듯 사실적인 것과 추상적인 두 작품 세계가 하나의 작품으로서 융화된 조화를 이룰 때 조형의 영역을 넘는 오묘한 조형의 예술세계를 전개하게 된다. 이것은 궤변이 아니다. 진실이다. 극에 이른 추상의 우연의 요소들이 사실 표현의 필연성과 조화를 이룰 때 그것은 더욱 넓고 깊은 예술의 창조성을 지니게 된다”고 말했다.

김 화백은 눈을 감기 전까지 “지금에야 머리가 맑아졌고 미술을 알 것 같은데 90대 노인이 돼버려서 생각대로 못하는 게 화가 난다”며 예술혼을 불태웠다.

척추질환 후유증으로 수술받고 한때 힘든 적도 있었으나 회복 후 노년에도 창작의욕을 불태울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는 어릴 때부터 열렬하게 화가가 되고 싶어 했다. 그는 화가가 되는 걸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미술학교를 보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소리친 뒤 뛰쳐나와 일본으로 건너간 후 도쿄미술학교에 수석 입학했다. 어릴 때부터 미술을 향한 강렬했던 열정은 타고난 것이었기에 노년기까지 인생을 관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그의 생활습관을 보면 고희를 훨씬 넘기고도 의욕적으로 작품활동을 한 비결을 알 수 있다. 바로 걷기다. 걸어서 발바닥이 자극을 받으면 호르몬 분비에 변화가 생기고 뇌에 자극이 간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 중에는 걷기를 즐기는 이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최고경영자(CEO) 중에도 걸어서 출퇴근하며 경영에 관한 구상과 함께 건강을 지키는 경우도 있다. 올바르게 걸으면 근육의 98%를 사용하면서 산소의 섭취량이 늘고 노화속도도 준다고 한다. 걷기운동을 하면 정력이 좋아지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김 화백이 43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아내와 행복한 부부관계를 유지한 비결도 걷기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또 장수하려면 손을 많이 사용해 뇌를 활성화시키라는 말이 있는데 90대가 될 때까지 붓을 손에서 놓지 않은 것도 장수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