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이 화두다.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 한다며 물질적인 풍요만 쫓던 시절을 달려오면서 정작 행복은 더 멀어졌다. 이에 한숨 돌린 많은 사람이 자신을 돌아보고 먼 지평선 너머 하늘로 시선을 돌린다. 이럴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메조소프라노 장은씨(38·방송인·동아방송예술대 외래교수)를 처음 만난 건 2014년 여름 각계 저명인사 1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다. 금융인·정치인·배우·장성 등 저마다 화려한 면면이 소개되던 중 그의 차례가 오자 아름다운 소프라노가 시작됐다.
“L’amour est un oiseau rebelle Que nul ne peut apprivoiser(라무흐 에 따 노와죠 흐베르 끄 뉠 느 쁘 따쁘히보와제흐)” -오페라 <카르멘>의 하바네라 중-
레스토랑 안을 울리던 자신감 넘치는 노래와 춤은 참석자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함께 ‘진정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지난 11일 낮 3시 서울 성수동의 카페에서 4년 만에 다시 만난 그는 “지금이 나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라며 “내가 사랑하는 노래와 요가, 동물의 공통점은 몸과 마음을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 머물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진제공=메조소프라노 장 은 ◆음악인이 되기 위해 치열했던 시간
“뮤지컬배우를 꿈꾸던 제자들이 졸업 후 많이 하는 질문이 있어요. 교수님처럼 멋지게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거죠. 저 같은 예술인의 삶이 누군가에겐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자유로운 인생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꼭 해주고픈 말이 있어요. 최소 10년 이상 자기 분야에서 치열하게 노력해 지금의 나를 이뤘다는 거예요.”
그는 연세대 성악과를 졸업한 뒤 독일 유학길에 올라 만하임국립음대와 드레스덴국립음대에서 7년 동안 성악을 공부했다. 2011년 귀국 후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공연과 강연, 방송활동에 여념없다.
학생을 가르치며 영감도 얻는다는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미래의 직업과 상관없이 용감하게 ‘지금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사실이 감명깊었다.
“20대는 인생에서 한번뿐이라며 지금 하고 싶은 일에 주저없이 매달리는 용기가 대단해보여요. 욜로(You Only Live Once)라는 사회현상도 생겨났는데 다만 저는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적·경제적 위치까지 오르려면 자기 분야에서의 꾸준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동물보호활동이 가져온 생각의 변화
그에게 성악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올해로 4년째 수련 중인 요가와 명상, 버려진 동물이었던 반려견 슈슈, 또 다른 유기견 가족을 돌보는 일도 있다.
그는 지난해 8월 ‘송도 세계문화관광축제’에서 가진 공연을 계기로 경인방송 iFM ‘장은의 뮤직 아뜰리에’를 매주 주말 진행한다. 직접 음악을 고르고 대본을 쓰는 등 방송일에 도전한 것은 ‘내 인생의 로또’라고 할 정도로 그의 생에 전환점이 됐다.
당시 우연히 마주친 방송국 근처 버려진 강아지 가족들은 지금까지 갖지 못했던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최근 새끼 5마리가 한꺼번에 태어나 10마리를 넘게 된 강아지 가족은 막연한 돌봄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 기준을 만들게 한 신호탄이었다.
그는 “반모피운동, 학대사육 금지, 동물보호 등은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SNS에 ‘버려진 강아지 가족의 주인이 돼주세요’라는 글을 여러차례 올렸음에도 단 한번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거리의 유기동물은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불행하지만 사실 그는 동물들에게서 사랑과 자유를 느낀다고 했다.
/사진제공=메조소프라노 장 은 ◆타인 아닌 나를 존중하는 것이 삶의 본질
“노래하는 순간이 늘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저도 가끔은 노래하기 싫은 때가 있어요. 그런데 한사람의 관객이라도 제 노래를 들으며 눈을 마주치고 반응하는 것이 힘의 원천이 돼요. 그 순간만은 몸도 마음도 자연스럽게 지금의 나에게 집중하게 되는데 요가와 동물도 그런 점에서 비슷해요.”
그의 말에 따르면 요가는 고도의 집중력 없이는 긴 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할 수 없으므로 잡념을 떨치게 된다. 동물들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맛있는 먹이, 지금의 행복한 감정에만 집중한다. 동물의 삶은 인위적 노력 없이도 요가의 경지에 다가선다.
“우리 인간은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하잖아요.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기사는 어떻게 나올까, 인터뷰는 언제 끝날까 등등을 생각하듯이요. 하지만 요가와 명상, 동물은 오로지 현재의 자신에게 집중하는 순수함이 있지요.”
독일 유학시절 친구의 일화도 들려줬다. 그의 독일친구는 종교의 자유마저 없는 사회주의국가 중국인들에게서 뜻밖의 자유분방함을 배운 반면 한국 여행에서는 자신과 타인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상처받기 두려워 진심을 감추는 모순적인 삶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쿨한 척하는 말과 행동이 세련된 것으로 포장되는 시대를 사는 우리가 진정 중요한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때”라고 말했다. 진정한 행복을 위해 피해서는 안되는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