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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짓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다. 존재는 언어로서 드러나며 그 언어 안에서 거주한다는 뜻이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언어로 인식하고 기억하며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언어로 지어지는 ‘이름’은 일단 한번 만들어지면 관념처럼 우리 의식에 자리 잡는다.
예를 들어 콩이 원료인 두유에는 우유가 한방울도 들어가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두유의 진짜 이름은 ‘콩즙’이다. 그런데 콩즙에 ‘soymilk’, 즉 ‘두유’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시장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만일 두유가 ‘두유’가 아닌 ‘콩즙’이라 불렸다면 지금 같은 포지션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이것이 바로 언어가 지닌 ‘프레임’이다.
기능이 아닌 브랜드로 차별화되는 시대에 이름은 브랜드의 첫인상이자 운명을 가르는 기준이다. ‘이름은 글자를 읽고 쓸 줄 알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수많은 경쟁자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이름을 짓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실제로 히트 브랜드 이름에는 고도로 계산된 네이밍 법칙이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생소한 이름이 기억에 남으려면 무성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유리하다. 무성음은 거칠게 들리지만 거친 느낌이 없으면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2011년 출시 이후 타 먹는 원두커피 시장에서 독보적인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동서식품 브랜드 ‘카누’는, ‘커피’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단어 ‘카페’에서 비롯됐다.
다양한 조합 중에서도 커피의 강한 맛을 표현하는 ‘카’에 유성음인 ‘누’가 따라붙어 부드러운 맛을 어감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또 브랜드명을 영문으로 표현할 때는 알파벳 ‘C’와 ‘K’중 더욱 강렬한 느낌을 주는 K를 선택해 ‘KANU’가 되었다.
카누, 티오피, 오피러스, 서울스퀘어, 자연은, 누리로, 홈앤쇼핑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수많은 히트 브랜드의 이름을 지어온 ‘브랜드 버벌리스트’ 민은정. 대한민국 최고 네이밍 전문가로 꼽히는 그가 25년간 경험을 토대로 섬세하고 정교한 네이밍 법칙, 그리고 브랜드 언어에 대한 접근법을 들려준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저자가 25년간 직접 진행한 다양한 브랜딩 프로젝트 사례를 진솔하고 생생하게 들려준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카누’의 사례 외에도 익숙한 영어 단어로 전혀 다른 느낌을 부여한 커피 브랜드 ‘티.오.피’, 산업화를 상징하는 건물에서 시민의 공간이 된 ‘서울스퀘어’, ‘자연은 토마토’·‘자연은 알로에’ 등 열린 결말 덕분에 매력적이라 평가받아온 주스 브랜드 ‘자연은’, 금융업 특유의 ‘엄근진’을 버리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변모한 신한·국민·하나은행의 모바일 금융 플랫폼 브랜드 등 현재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브랜딩 사례가 풍부하게 펼쳐진다.
누구나 자신의 브랜드가 오래도록 사랑받길 원한다. 시간이 흘러도 시대가 바뀌어도 살아남는 브랜드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소중한 인사이트를 선사하길 바란다.
민은정 지음 | 리더스북 펴냄 | 1만6000원
☞ 본 기사는 <머니S> 제585호(2019년 3월26일~4월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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