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가 이르면 내년 1월 출범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사진=장동규 기자
2020년에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뜨거웠다. 지난해 패스트트랙 법안 중 하나인 공수처법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으면서 올해 7월 출범되는 듯 했지만 준비 과정 속 수많은 잡음들이 생기면서 2020년에도 공수처는 출범되지 못했다.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비리 수사가 지금껏 공정하게 진행됐는가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서 제기된 공수처는 검찰의 기소독점권으로 인한 기소편애주의‧제식구 감싸기 등 각종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돼왔다. 과연 내년에는 공수처 출범을 볼 수 있을까.

'1996년' 첫 논의… "다리가 있으면 다리로 건너자"

공수처 필요성에 대한 첫 논의는 1996년에 시작됐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부패방지법 제정을 위한 입법운동 과정에서 부패수사를 전담하는 독립기관으로 공수처 도입을 처음으로 주장했다. 당시 정식 명칭은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였다. 같은해 12월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의원이 7명이 공수처를 포함한 부패방지법안을 발의함으로써 국회의 문턱을 넘는 듯 했으나 끝내 무산됐다.


이후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일명 중수부를 폐지하고 공직비리수사처를 설치를 추진하며 공수처 설립이 급물살을 타는 듯 했으나 당시 검찰의 반발로 무산됐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통한 대통령과 친‧인척 및 고위공직자에 대한 부패감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당선된 후 노무현 대통령은 특별검사제도(특검)와 공수처를 비교하며 "다리(공수처)가 있으면 다리로 건너면 된다. 왜 굳이 나룻배(특검)를 띄워야 하는가"라며 공수처 설치를 주장했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비유는 국회의 합의를 거친 후 임명절차를 밟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특검보다 상시적으로 설치돼 있는 공수처를 통해 고위공직자들의 비리를 감시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공수처 추진은 검찰의 반발로 또 무산됐다.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은 "검찰의 권한 약화를 노린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부의 추진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노 대통령이 서거 후 출간된 자서전에는 "검경 수사권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고 적혔다.


이후 18대 국회에서도 양승조안, 박영선안, 이정희안 등 공수처 법안들이 잇따라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됐다. 2012년 대선에서 '공수처 설치'를 주장한 문재인 후보를 꺾고 '특별감찰관'을 공약으로 내세운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서 공수처 논의는 다시 잦아들었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유승민

·안철수 "공수처 설치하자"
지난 21대 대선에서 당시 홍준표(오른쪽부터) 후보를 제외한 안철수, 심상정, 문재인, 유승민 후보는 공수처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사진은 당시 진행된 JTBC 2017 대통령후보 초청토론회. /사진=뉴스1
하지만 20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되고 100억원대의 수임료를 수수한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넥슨과의 비리 의혹에 휩싸인 진경준 전 검사장, 우병우 등의 사건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등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비리가 잇따라 터지면서 공수처 설치 논의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확정된 후 실시된 21대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를 제외한 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 유승민 후보 심상정 후보는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공수처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유 후보는 2017년 3월28일 바른정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무엇보다 정치인과 공무원의 부패를 뿌리부터 뽑아내는 강력한 반부패 제도를 도입하겠다"며 "수사와 기소 권한을 가지는 공수처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수락 연설에서 공수처 언급을 직접적으로 밝힌 것은 그만큼 공수처 설립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는 의지표현으로 해석됐다.


안 후보는 공수처 설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유죄 판결을 받은 고위공직자에 대한 특별사면도 제한하겠다고 공수처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두 후보는 대선에서 패배를 한 이후 공수처를 악법으로 규정하고 돌연 입장을 선회하는 등 과거 입장과 상반된 행보를 보였다.

'2019년' 공수처법 패스트트랙 통과… 野 "문재인 정권 하수로 전락할 것"

지난해 4월25일 패스트트랙 법안을 접수하려는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접수를 막으려는 자유한국당 의원, 당직자들이 국회 의안과 앞에서 몸싸움을 벌였다. /사진=뉴시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 찬성 여론도 날로 높아지면서 공수처 법안 통과에 대한 속도도 함께 불 붙었다.  2019년 1월 리얼미터가 공수처 설치에 대한 국민의 생각을 물은 결과 찬성 76.9%으로 반대 15.6%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당시 모름은 7.5%였다.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여·야 4당은 지난해 4월 선거법개정안‧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을 포함한 공수처 설치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합의했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공수처는 문재인 정권의 하수로 전락할 것"이라며 삭발식과 장외투쟁까지 불사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 같은 자유한국당의 반발에 불구하고 여야 4당은 패스트트랙을 2019년 4월29일 통과시켰다.

2019년 12월30일 패스트트랙에 올라온 공수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늦어도 올해 7월15일 출범이 가시화되는 듯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공수처장 추천위원 선정 무한정시간 끌기'와 선정 이후에도 추천위원들이 연일 비토권을 행사하며 공수처장 최종후보 2인 압축에 어려움을 겪었다. 공수처장이 선출되기 위해서는 7인 추천위원 중 6명이 찬성해야하므로 야당 측 2인의 추천위원들이 비토권을 행사할 경우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야당 측 추천위원들은 이 점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비토권을 행사하며 '공수처 출범 발목잡기' 전략에 나섰다. 당시 당연직 위원 자격으로 추천위원회에 참여했던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은 국민의힘을 향해 "저도 개인적으로 공수처를 반대했던 사람이지만 이왕 법으로 만들어졌으면 위헌 결정이 날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진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며 "야당 추천위원(국민의힘 측) 한 분의 눈에 보이는 어설픈 지연에 분노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12월10일 공수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박수로 환영했다. /사진=뉴스1
야당의 반대로 공수처 출범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민주당을 포함한 범여권 정당들은 공수처법 개정안 카드를 꺼내들었다. 공수처장 2인 압축을 위한 의결정족수를 7명 중 6명에서 3분의2 찬성(5명)으로 조항을 바꿔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한 내용이 개정안의 핵심골자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의 헌정 파괴, 법치주의 파괴, 독재가 도를 더해가고 있다"며 필사적으로 반대했지만 지난 12월10일 재석의원 287명 가운데 찬성 187명, 반대 99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탄력이 붙은 공수처장 추천위는 지난 28일 6차 회의를 열고 최종 후보 2인을 추천했다. 최종 후보 2인은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 이건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다. 두 사람은 모두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했다.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두 후보 중 한명을 선출하고 국회는 선출된 후보자를 대상으로 청문회를 실시하게 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공수처장이 임명될 경우 이르면 내년 1월 공수처가 공식 출범될 전망이다. 

2021년 공수처 출범 가시화

… 수사대상 7000명·정쟁도구 수단 우려도
공수처가 출범하면 고위급 공직자의 범죄를 전담해서 수사‧기소하는 단일 권력기관이 탄생하게 된다.

공수처의 수사대상은 ▲대통령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및 헌법재판관 ▲대통령비서, 국가안보실 등 3급 이상 공무원 ▲국회의원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 등 전체 규모가 7000여명에 이른다. 다른 고위직 공무원에 대한 기소권한은 갖고 있지 않지만 검찰총장, 검사, 판·검사 등에 한해서는 제한적 기소권을 갖는다.

공수처 출범 초기에는 검사 비위 혐의에 대한 수사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고검에 배당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권남용 혐의 수사를 공수처가 맡을 될 경우 윤 총장이 공수처 수사대상 1호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여당이 공수처장 후보에 대한 야당의 비토권을 없애고 공수처 검사의 자격요건을 대폭 완화한 것도 공수처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의심하는 이들에겐 정치적 공격거리가 될 수 있어 공수처 출범 이후에도 정치권에서는 공수처를 정쟁의 도구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수사대상 7000여명 중 판사가 3000여명이라는 점 때문에 공수처가 판사 사찰 기구로 전락해 사법권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도 존재하는 만큼 공수처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 넘어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