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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영화인 ‘미나리’는 낯선 미국 땅 아칸소로 떠나온 한 미국 가족의 삶을 그렸다. 한국의 정서와 미국의 삶이 결합된 이야기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그 결과 ‘미나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끊임없이 호평을 이끌어낸 ‘미나리’의 흥행 요인은 곳곳에 우리들의 삶이 녹아 있어서가 아닐까. 그 시대를 살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에서 미나리가 가진 힘을 들여다봤다.
"우리는 쓸모 있는 사람이 돼야 해"
“맛이 없거든, 알도 낳지 못하고..”
병아리 감별 공장에서 어린 수컷을 골라 폐기 상자에 담는 일을 하는 아버지는 작업장에 따라온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어 한마디 덧붙인다. “그러니까 꼭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
병아리 감별 공장에서는 부화한지 30시간도 안된 어린 병아리들이 ‘쓸모’라는 기준에 따라 각각 다른 운명에 처한다. 이때 수평아리는 알도 낳지 못하고 맛이 없는데다 사료만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폐기 처분된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아버지는 대도시에 살면서 뻔하게 소비되는 삶을 택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복이 있어도 나의 힘으로 뭔가를 이루겠다는 ‘작은 성취’를 실천한다.
영화 ‘미나리’는 삶을 응시한다. 담백하게 그려진 제이콥(스티븐 연)과 모니카(한예리)의 분노·슬픔으로 관철된 삶은 서글프고 버겁다. 이민자로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이자 자식을 위해 헌신한 부모님의 이야기, 나아가 시련과 극복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떠올리게 한다.
아메리칸드림과 ‘남청여바’
1970~1980년대에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한국인의 집단 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였다. 신광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특히 1980년대에는 유학과 이민이 좀 더 자유로워졌다. 군사정권은 대외적인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올림픽을 유치했고 개방적인 유학과 이민정책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1976년 미국 텍사스주로 이민을 떠나 어느덧 60대에 접어든 최종현씨는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이민을 갔다. 막상 도착하고 보니 말 한마디 알아듣지 못하고 말도 못할뿐더러 문화적 이질감 때문에 앞길이 막막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국인 이민자의 삶에 대해 ‘남청여바’(남자는 청소 여자는 바느질·봉제)를 언급하며 “당시 한국인 이민자라면 필수코스였다”고 설명했다.
낯선 타국에서 뿌리 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안고 2014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던 김윤아씨(34)는 딸기농장에서 일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는 세컨드비자를 취득하기 위해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일했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한국인 청년 워홀러들이 워낙 많다보니 현장에서는 한국어 지시가 영어보다 많았다”며 “딸기 트레이 개수만큼 돈을 벌기 때문에 모두들 하나라도 더 채우기 위해 열심히 딸기를 땄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모두 ‘미나리’를 보는 내내 경험한 현실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 같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미나리가 내포하는 보편성
외국으로 떠난 사람들만 이민자가 아니다. 모국이라고 해도 정착하지 못해 떠돌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취업에 애쓰는 청년들이나 집 한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모두 정착을 꿈꾼다.
직장인 김빛나씨(29)는 “자기만의 길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았다. 회사 생활이라는 게 병아리 감별 공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며 “이직이나 자아실현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다수의 영화평론을 썼던 조현철 군산대학교 교양·교직과 교수는 “미나리는 일상적이면서도 척박한 환경에서 뚫고 나가고 성장하는 사람들의 이미지와 겹친다”고 짚었다.
조 교수는 “영화 ‘미나리’에서 제시되는 소서사의 내용들이 모두 어려웠던 시절 평범한 사람들이 겪어냈을 법한 우리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들 자기 문제로 느끼고 자기 마음을 투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어느 시대를 살던 비우호적인 환경 속에서 뭔가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며 “이런 ‘보편성’이 영화 흥행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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