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가 야경./ 사진=뉴시스


▶기사 게재 순서
① 증권사 이자장사 너무하네… 빚투 확산에 비대면 신용거래융자 9.9%
② 증권사에 '봉' 된 개미들… 불어난 개인투자자 앞세워 이자장사
초대형IB 이자장사 혈안… 멀어지는 한국형 골드만삭스의 꿈



국내 증권사들의 고금리 신용거래융자 '이자 장사' 논란이 거센 가운데 2017년 도입한 초대형 IB(투자은행)제도가 취지와 무색하게 관련 실적이 매우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도 도입 당시 금융당국은 혁신기업 육성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발행어음 사업을 허용했으나 증권사들의 혁신기업 투자는 미미한 실정이다. 이자 장사에 취한 증권사들이 발행어음으로 마련한 자금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신용거래융자에 쏟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이자 영업에만 열중한다는 지적이다.


발행어음 제도 도입 취지 '무색'

머니S가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증권사 발행어음 조달 및 투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9월 말 기준 발행어음 사업 인가를 받은 4개 증권사(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KB증권·미래에셋증권)가 발행어음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28조5012억원이다.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 단기금융 상품으로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초대형 증권사가 취급한다. 금융위원회는 증권사들의 혁신기업 투자 제고를 위한 재원 마련 수단으로 2017년 발행어음업무 인가안을 의결했다.


올 3월 말 기준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 IB 요건을 갖춘 증권사는 발행어음 사업 인가를 받은 4곳을 포함해 ▲삼성증권(6조926억원) ▲하나증권(5조9271억원) ▲메리츠증권(5조6361억원) ▲신한투자증권(5조2755억원) ▲키움증권(4조2277억원) 등 모두 9개사다.

몸집이 커진 증권사는 6년 만에 두 배 증가했으나 혁신기업에 대한 투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형IB 4개사가 조달한 자금 가운데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으로 유입된 자금은 3017억원으로 1.05% 수준에 불과하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증권사들은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질적인 성과는 부족했다"며 "IB 본연의 역할인 모험자본 공급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초대형 IB 투자는 대기업으로 향했다. 3월 말 기준 KB증권의 대기업 투자는 3조4907억원이며 한국투자증권(2조1641억원)과 미래에셋증권(2조1601억원)이 뒤를 이었다. NH투자증권은 3073억원으로 가장 적었다. 중견기업 투자도 활발해 ▲한국투자증권 3조5424억원 ▲NH투자증권 2조6323억원 ▲KB증권 4303억원 ▲미래에셋증권 3028억원 등으로 집계됐다.

증권사 중 가장 먼저 사업을 시작한 한국투자증권(2017년 11월 인가)의 대기업 및 중견기업 합산 투자액은 2018년 말 기준 1조8725억원에서 지난해 9월 5조7065로 3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NH투자증권(2018년 5월)의 투자 규모는 1조2479억원에서 2조9396억원으로 2.5배 가량 늘었다. KB증권(2019년 5월) 역시 1조1799억원에서 3조9210억원으로 232% 확대됐다. 2021년 말 발행어음 사업 인가를 받은 미래에셋증권의 대기업과 중견기업 투자는 3111억원에서 2022년 9월 말 기준 2조4629억원으로 8배 가량 늘렸다.

리스크가 적은 대기업과 중견기업 투자에 초대형 IB 4개사의 자금조달 규모는 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이들 증권사의 발행어음을 통한 자금 조달 규모는 32조8310억원으로 지난해 9월 말(28조5012억원) 대비 15.19% 늘었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벤처캐피탈 등과 달리 짧은 업력과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투자 노하우 등을 감안할 때 혁신기업을 적극 발굴해 투자하는 건 현실적으로 제약이 있다"며 "전문 인력 확충과 투자 소스 다양화 등을 통해 혁신기업 투자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 개편 필요성 확대

금융당국에서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키운다며 야심차게 도입한 증권사 초대형IB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손쉬운 이자 장사가 아닌 모험자본 공급 역할을 확대할 수 있게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에선 증권사의 모험자본 공급을 유도하기 위해 벤처투자 규모에 연동한 발행어음 총량 규제 등을 거론하고 있다.

현재 증권사들은 자기자본의 200%까지 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정치권이 그리는 발행어음 총량 규제는 증권사의 자기자본 기준이 아닌 혁신기업의 투자 규모다. 가령 A스타트업에 10억원을 투자한 대형IB에는 0.1%, 20억원인 경우 0.2% 발행어음 규모를 늘려주는 방법이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초대형 IB들에 발행어음 사업을 허용한 것은 혁신기업에 대한 투자 활성화, 기업금융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취지"라며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업금융 규모에 비례해 어음 발행 한도를 조정하는 등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초대형IB가 투자하는 모험자본의 개념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통상 기업이 많은 이익을 추구할 때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모험자본이라고 하지만 자본시장법에서 보다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

스타트업 투자 시기별로 모험자본 시리즈A, 시리즈B, 시리즈C(가칭) 등이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초대형 IB의 혁신기업 투자를 장려하려면 시기·목적별로 모험자본의 좌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모험자본의 투자시기가 세분화되면 혁신기업을 육성하고 글로별 경쟁력을 강화하는 사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