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방산·조선업이 유례없는 수출 호황을 맞이한 가운데 이 같은 성장세를 산업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래 기술 개발과 전문 인력 양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장기 경쟁력 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사진=뉴시스


국내 방위산업·조선업이 유례없는 수출 호황을 맞이한 가운데 산업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의 '슈퍼사이클'은 전쟁 특수와 미·중 갈등에 따른 수혜 영향이 커 대외 환경 변화에 흔들리지 않을 사업 기반을 구축해야 장기 성장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미래 기술 개발과 전문 인력 양성 관련 투자 확대가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K방산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빠른 납기와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수출에 성공했다. 지난 3월 말 기준 국내 방산 4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KAI·LIG D&A)의 수주잔액은 사상 처음으로 120조원대를 넘었다. 3~4년 치 일감이 확보됐지만 정부가 목표하는 방산 4대 강국 도약을 위해선 단순 무기 수출 이상의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현재 유럽 방산 시장은 EU(유럽연합)의 '바이 유러피안(유럽산 무기 구매)' 정책에 따라 역외 방산 기업들에 대한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 수출 경쟁 역시 단일 무기 체계를 넘어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 운용·정비 등을 묶은 '패키지 경쟁'으로 재편되고 있다. KF-21, 천궁-II 등 독자 개발 무기체계의 수출 파이프라인 구축과 함께 차세대 성장동력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 배경이다.


첨단 무기 분야 생산 역량 강화도 서둘러야 한다. 드론과 로봇이 미래 전장의 핵심 무기로 떠 오르고 있지만 국내 대량 생산 기반은 사실상 전무하고 중국산 부품 의존도 높다. 민간 방산 스타트업의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춰 기술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석·박사급 연구 인력을 적극 육성해 미래 먹거리 대응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폴란드로 편중된 수출 구조의 다변화도 절실하다. 특정 국가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외교·정치 변수 발생 시 계약 파기 등 리스크 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 2023년 폴란드 정권 교체 당시 이전 정부가 한국과 체결한 수십조원대 방산 계약의 재검토 가능성이 거론돼 긴장감이 높아졌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성과는 K방산이 기존에 쌓아온 경쟁력을 바탕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한 결과"라며 "군비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일본과 유럽, 미국까지 방산 수출 확대에 적극 나서는 '메이저리그'가 형성되고 있어 안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단순한 골든타임이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골든 아워'에 가깝다"며 "호황기의 끝을 2030년으로 보고 이후를 대비한 전략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했다.
조선업 역시 미중 갈등과 중동 전쟁 장기화로 인한 신규 수주를 빠르게 쌓고 있지만 이 같은 현상이 완화될 경우 중국의 공세가 거세질 수 있단는 전망이 나온다. 독자 기술 개발과 생산성 향상, 산업 생태계 개선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전경. /사진=HD현대


조선업 역시 미국이 지난해 중국산 선박에 톤당 최대 50달러의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면서 글로벌 선사들의 발주가 한국으로 옮겨왔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이 재편돼 LNG운반선과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발주도 늘고 있다.

미·중 갈등이 완화되면 세계 조선 시장 점유율 1위인 중국의 수주 공세는 다시 거세질 전망이다. 국내 조선업계는 LNG운반선과 암모니아선 등 고부가 선종에서 기술 우위를 확보하고 있지만 중국의 추격 속도가 만만치 않다. 독자 기술 개발과 생산성 향상, 산업 생태계 강화를 통해 초격차 지위를 확보해야 할 때다.


대표적으로 LNG 화물창 기술 국산화는 무엇보다 시급하다. 영하 163도의 액화 LNG를 안정적으로 운송하기 위해선 외부 충격에도 내부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정교한 설계 기술이 요구된다. 해당 기술은 프랑스 GTT사가 독점하고 있어 국내 조선사들은 LNG선 1척을 수주할 때마다 선가의 약 5%를 로열티로 지급해야 한다. 지난 4월 말 기준 LNG선 선가가 약 3600억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척당 약 180억원에 달한다.

미국·동남아시아 거점의 생산성 관리는 3~4년 뒤 실적을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의 도크 가동률은 모두 100%를 넘어선 포화 상태에 있다. 신규 물량이 계속 쌓이고 있어 해외 조선소의 생산성을 끌어올려 수주 대응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산업 생태계 개선도 필요하다. 조선업 호황에도 현장에선 고질적인 인력난과 외국인 노동자 의존 구조가 이어지면서 납기 지연과 품질 저하 우려가 크다. 내국인 숙련공 양성을 위한 지원 확대가 시급한 가운데 고난도 용접이 가능한 로봇 도입 등 첨단 기술 투자도 병행해 생산성과 품질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중국의 기술력이 빠르게 올라와 국내 조선사들은 친환경 선박과 자율운항 기술 개발을 확대해 상대적인 기술 차별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국제 협력 사업 등을 통한 새로운 시장 개척도 대응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