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반도체·방산·조선 등 주력 산업의 초호황으로 걷힌 초과세수를 어떻게 써야 할까. 정부가 이 무거운 과제에 직면했다.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선 일시적 세수호황을 장기적 산업 경쟁력 확보에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초호황기 정부의 역할로 ▲초과세수의 산업 재투자 ▲R&D(연구·개발) 지원 확대 ▲R&D 인력 육성 ▲판로 다변화 지원 ▲노사 갈등 조정 등 5가지를 제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2월29일 청와대로 첫 출근하며 김용범 정책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첫째, 반도체 등 호황 기업에서 들어온 초과세수로 기금을 만들어 관련 R&D 등 해당 산업 생태계에 재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에 따라 1억5000만달러 이상 정부 보조금을 받은 기업에 '초과이익공유'(Upside Sharing) 조항을 적용한다. 사전 합의된 기준 수익률을 넘어서면 영업이익의 일부를 연방정부에 돌려주는 조항이다. 이 자금은 국가반도체기술센터 운영과 대학 R&D 인력 양성 예산으로 재투자된다.

대만은 1987년 TSMC 설립 당시 국가발전기금을 통해 자본금의 48%를 출자한 뒤 현재도 6%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TSMC의 배당 등으로 환수된 이익은 뱅가드국제반도체(VIS) 육성과 반도체 설계, 첨단소재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엔젤 투자에 투입된다. 독일은 국영재건은행(KfW)을 통해 기업에 우대 조건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기업 성장 후 상환되는 자금을 강소기업 육성에 활용하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통화에서 "반도체 초호황은 일시적 AI(인공지능) 수요 급증 때문"이라며 "단기적 성과에 안주해선 안 되고 다음 세대 제품이나 R&D에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미래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금 조성도 대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13일 엑스(X·옛 트위터)에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AI 국민배당금 제안과 관련해 "김 실장이 한 말은 AI 부문 초과이윤으로 발생하는 국가의 초과세수를 국민배당하는 방안 검토"라며 옹호했다. 앞서 김 실장은 11일 밤 페이스북을 통해 반도체 초호황에 따른 역대급 초과세수를 'AI 국민배당금' 형태로 국민에게 환원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2월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둘째, 기업 R&D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R&D 세액공제 확대와 장기 기초연구 지원체계 구축이 대표적이다.

현재 R&D 세액공제율은 가장 공제율이 높은 반도체·AI·배터리·백신 국가전략기술 분야의 대기업 기준으로 30~40%다. 중소기업은 50%, 중견기업은 40~50%다. 기업들이 호황기 초과이익을 R&D에 적극 투자해 장기적인 기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공제율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서울대 명예교수)은 "반도체 초호황을 이끈 핵심 인력들과 같은 석·박사급 연구 인력을 대학에서 꾸준히 키워내려면 긴 호흡의 R&D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차세대 소자 등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선 10년을 내다봐야 하는 만큼 초과세수를 활용해 장기 기초연구를 지원할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2025년 10월31일 경북 경주시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 참석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의 회장으로 부터 SK하이닉스의 HBM4 반도체 웨이퍼를 선물로 받고 있다. / 사진=뉴스1


셋째, 석·박사급 R&D 인력을 육성할 공공 인프라 확충도 과제로 꼽힌다.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있는 나노종합기술원은 2004년 KAIST(한국과학기술원) 부설 연구기관으로 설립돼 산·학·연 연구자에게 나노·반도체 시제품 제작과 실증 등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8·12인치 반도체 테스트베드와 380여 대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는데, 서울·경기 등 수도권에도 공공 실증기관을 추가 설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조선업도 7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8척 건조 사업과 원자력추진잠수함(핵잠수함) 등 수년치 수요가 몰리는 만큼 공공 인프라 확충을 통한 단계적 인재 육성 필요성이 제기된다. 육·해·공군과 대학이 공공 인프라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인재를 키워야 방산 분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넷째, 반도체·조선·방산 분야의 수출 시장 다변화를 위한 정부의 지원도 요구된다. 현재 방산 수출 지원은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한국무역보험공사, 방위사업청 등에서 각각 이뤄진다. 이를 단일 창구로 통합해 범부처 종합 수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반도체·조선 분야의 경우도 각각 반도체특별법과 추후 제정될 핵추진잠수함특별법에 범부처 컨트롤타워 설립을 명시하고 이를 신속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초호황기 초과이익 배분을 둘러싼 노사 갈등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인 조정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가 경제에 치명적일 수 있는 파업에 대해선 최악의 경우 긴급조정권 발동도 검토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삼성전자가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파급력을 고려하면 긴급조정권 발동도 충분히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다만 정부 개입 이전에 노사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긴급조정권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76조에 근거한 제도로, 고용노동부 장관이 중앙노동위원장 의견을 듣고 발동할 수 있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쟁의행위는 즉시 중지되며 30일간 재개할 수 없다.

그동안 긴급조정권이 발동된 것은 총 4차례다. 2005년 12월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과 2005년 7월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파업, 1993년 현대자동차 파업, 1969년 대한조선공사 파업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