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업계가 지금의 성장세를 지속하기 위해선 차세대 기술 개발을 비롯한 다양한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사진은 삼성전자 HBM4 제품. /사진=삼성전자


반도체업계가 유례없는 호황을 맞았지만 구조적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선 차세대 기술 개발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경쟁사에 추격을 허용하지 않으려면 기존 핵심 역량인 메모리 기술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AI(인공지능) 반도체 기술 역량 전반을 키워나가야 한다. 매년 천문학적인 투자가 집행돼야 살아 남을 수 있는 반도체업계 특성상 당장의 수익을 나누는데 급급하면 미래가 담보될 수 없다.


초격차 상징으로 불리는 삼성전자도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게임체인저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뒤처지는 듯했으나 지난 2월 세계 최초로 6세대 HBM4 양산 출하에 성공한 뒤 계획대로 증산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준비한 HBM 생산능력은 고객 수요 증가로 모두 완판된 상태이며 2분기 중 핀당 16Gbps 속도와 초당 4.0TB의 대역폭을 지원하는 7세대 HBM(HBM4E) 샘플을 출하할 방침이다.

HBM 시장을 선도하는 SK하이닉스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시장조사업체 트렌스포스 조사 결과 지난해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은 59%였으며 올해도 50%를 유지하며 업계 1위 자리를 공고히 할 것으로 관측된다. 경쟁사보다 비교적 오랜 기간 HBM 성능과 수율 역량을 확보해온 만큼 HBM4·HBM4E 등 차세대 제품 경쟁에서도 앞설 수 있단 평가다.


메모리 초호황이 국내 기업에 국한된 게 아닌 만큼 긴장감을 늦춰선 안 된단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중국 정부와 반도체업계는 자국 메모리 업체를 키우려는 최적의 기회로 보고 있다.

중국 메모리 반도체를 대표하는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TC)는 범용 D램 이외에 HBM 생산능력까지 확충하며 한국 메모리 기업 추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CXMT는 올해 하반기 상하이 공장에 장비 도입을 진행하고, 고대역폭메모리(HBM) 라인도 확장 중이다. 낸드플래시 업체 YMTC는 내년 가동을 목표로 우한에 3공장을 건설 중이고 HBM 생산도 모색하고 있다.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사진=뉴시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초격차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차기 메모리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AI 반도체 생태계 전반과 시너지를 내는 게 핵심이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차별화된 메모리 기술 확보다. 확장성·시스템적 요소 등 기존 메모리 반도체의 한계와 향후 시장 흐름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내재화해야 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차세대 반도체 시장이 늦게 열린다고 해서 포기하게 되면 시장 기회를 잡기 힘들다"며 "과거 삼성전자가 HBM 사업에 관심을 두지 않다가 SK하이닉스에 시장 주도권을 내줬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최대한의 자원을 투입해 연구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 HBM도 시간이 지나면 범용 메모리가 될 수 있다"며 "시장을 선도해 나가기 위해서는 미래형 반도체를 개발하는 게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주목받는 차세대 기술은 PIM(프로세싱인메모리)이다. 메모리 내에서 일부 AI 연산을 실행하게 하는 기술로 기존 HBM 대비 연산 속도는 10배, 전력 효율은 7배가량 개선할 수 있다. 커스텀 HBM에 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특정 고객사의 그래픽처리장치(GPU)·AI칩에 최적화된 HBM인 만큼 공동 설계 과정을 통해 전략적 파트너로 성장할 수 있다.


메모리·로직 반도체·패키징 기술을 아우를 수 있는 시스템 단위의 경쟁력 확보도 필수다. 단순히 메모리를 잘 만드는 것을 넘어 각 기술의 유기적 결합과 효율적인 구현이 반도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AI 반도체 강국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크기 때문에 반도체 밸류체인 전반의 주도권을 쥐는 게 중요하다"며 "고객사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기술 등 관련 역량 확충에 투자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반도체 생태계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풀스택형' 역량 확보도 주요 과제다. 생산·패키징의 허브 역할을 하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이 교수는 "삼성전자의 경우 새로운 고객으로부터 신규 수주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지금의 기회를 잘 살려 TSMC와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며 "쉽지 않겠지만 SK하이닉스도 파운드리 사업을 일부 육성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