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미국의 JD 밴스 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이란과 맺은 14개조 MOU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17일(현지 시각) 공개한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MOU) 14개조를 놓고 비판 여론이 거세다. 그동안 이란이 미국에 요구해온 내용은 대부분 반영됐지만, 미국이 이란에 요구하거나 개전 명분으로 삼았던 내용은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최종적인 종전협정은 앞으로 60일간 미국과 이란이 진행할 협상을 거쳐 확정된다. 하지만, 그 근간인 MOU 14개조를 살펴보면 앞으로 국제질서를 흔들고 미국의 이미지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충격적인 '문제 조항'이 적지 않게 보인다. MOU 내용을 뜯어본다.


<제재 해제하면 이란은 경제적 도약의 기회>
우선 이번 MOU에는 이란의 대표적인 요구사항인 제재·석유수출통제·자산동결의 해제와 3000억 달러(약 450조원)의 재건기금 제공, 그리고 핵물질의 이란 내에서의 희석 등이 모두 포함됐다.
이란의 마수드 페제슈키안 대통령이 18일 자국의 무함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이 담긴 MOU 서류를 보여주고 있다.이란 국영방송 화면을 캡처했다. /로이터=뉴스1


만일 최종 종전협정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결의, 또는 미국의 독자적인 조치에 따른 제재와 약 1000억 달러 수준으로 주장되는 동결자산이 풀리고, 석유의 합법적인 전 세계 수출이 가능해지면 이란은 경제적으로 중동 최강국가로 도약할 길이 열릴 수 있다. 중동의 전략 지형도가 대대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이란에는 세계 3위의 석유와 2위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
물론 이란 내부에서도 부패와 무능을 지적받아온 신정체제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권력·이익 공유 시스템, 인재의 외국 유출 등의 제약 요인 때문에 실제로 도약하려면 자기 개혁과 시간이 상당히 필요할 것이다. 다만 권위주의 정권의 통치자금은 충분히 수혈될 것으로 보인다. 또 핵물질의 이란 내 희석 허용은 자칫 이번 전쟁 최대 개전 명분인 이란 핵무기 개발 저지를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

오만의 무산담 반도에서 본 호르무즈 해협과 통항이 막힌 선박들의 모습. 바다 건너가 이란이다. /로이터=뉴스1



<애매한 호르무즈 '항행의 자유', 두고두고 화근이 될 수도>
이번 MOU의 또 다른 문제는 그동안 미국이 남중국해 등에서 강조해온 '항행의 자유'라는 대원칙의 침해 우려다. 이는 국제 해상물류와 해양 안보의 핵심 원칙이다. 특히 전 세계 원유의 약 20%, 한국 수입 원유의 약 7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은 유엔해양법협약에서 명시한 '공해의 자유' 원칙에 따라 모든 국가의 선박과 항공기가 타국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있는 공해다.
그런데 MOU 5조에 따르면 협상이 진행되는 60일 동안만 상업 선박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행료 없이 통과할 수 있다. 8월 19일 이후에 대해선 '이란이 페르시아만 연안국과 협의한다'고만 돼 있다. 만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통행료를 징수한다면 미국도 전 세계 에너지 수입국과 수출국 모두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이 16일 프랑스 애빙아에서 열린 G7(주요7개국) 정상회의에 초청받은 아랍에미리트(UAE)의 대통령이자 아부다비의 에미르(중동군주)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미군 기지가 있는 친미국가 UAE는 미국-이란 전쟁 중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심하게 받았다. /로이터=뉴스1


<중동 친미국가 안전보장 조항 없어…이란 대리세력 위한 조항만>
그 다음으로 이번 전쟁에서 이란의 공격을 받은 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카타르·바레인 등 중동 지역 친미 우방국가에 대한 안전보장 문제가 MOU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대신 1조에 '레바논을 비롯한 모든 전선에서의 즉각적이고 영구적인 교전 종료'를 명시해 이란의 프록시(대리세력)인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챙겼다. 이는 미국이 사실상 이란을 중동의 패권국으로 인정해준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이란은 헤즈볼라는 물론, 예멘의 후티 반군, 가자지구의 하마스, 그리고 지금은 몰락한 시리아의 알아사드 독재정권 등을 군사적·경제적으로 지원하며 '시아 벨트'로 불리는 자체 세력권 유지를 시도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를 이번 전쟁 개전 명분의 하나로 들었다.

지난 1월 이란 북동부 네이새부르에서 벌어진 내규모 반정부 시위의 모습. 사진=퍼블릭 도메인



<개전 명분의 하나인 민주주의·인권 확산 조항 실종>
미국이 또 다른 개전 명분으도 들었던 민주주의·인권 관련 내용이 실종된 것도 국제사회의 공분을 살 수 있다. MOU 제2조는 오히려 그 반대로 '서로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기로 약속한다'고 못 박았다. 이란 정권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이 조항이 들어가면서 지난해 12월부터 개전 직전까지 전국에서 시위를 벌이며 신정체제의 억압과 무능함에 저항했던 수백만 명의 이란인을 권위주의 세력에 고스란히 내준 셈이 됐다. 수천 명의 희생도 물거품이 될 처지다.


<이란 재건기금의 동맹 전가는 불안·불만 자아내고 국제법도 위배>
미국이 이란 재건기금 3000억 달러를 동맹국 민간기업에 전가하겠다는 의도를 밝힌 것은 동맹국의 분노와 불안을 자아내는 것은 물론, 국제법과 법률 원칙에도 위배될 수 있다. 환경법 등에서 주로 인용되는 '오염자 부담의 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원인을 제공한 측이 피해 복구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다는 의미다. 문제 발생으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무고한 대중이 떠맡지 않게 함으로써 공정성을 유지하는 원칙이다. 이는 국제법의 근간인 '국가 책임 원칙'에도 어긋난다. 유엔 산하 국제법위원회(ILC)가 채택한 '국제위법행위에 대한 국가책임에 관한 규정초안'에 명문화된 원칙이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MOU를 중재한 파키스탄의 총리와 육군 참모총장의 사진이 담긴 축하현수막이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걸려있다. /로이터=뉴스1


<동맹 배제 일관한 미국, 국제사회 신뢰 타격>
가장 큰 문제는 이번 MOU가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함께 이란을 공격한 이스라엘을 제외한 어떤 동맹국과도 미리 상의하지 않고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서방 군사동맹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자 한국·일본과 서구 국가를 포함한 동맹국에 군함 파견 등 지원을 압박했다.


미국은 동맹 지원을 거부당하고 전쟁도 잘 풀리지 않자 파키스탄의 중재로 이슬라마바드에서 이란과 협상해 이번 MOU를 맺었다. 이 과정은 나토를 비롯한 동맹국은 물론 심지어 이스라엘까지도 철저히 배제하면서 밀실에서 이뤄졌다. 이는 미국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5년 이란 핵합의인 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체결 당시 독일·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P5+1)까지 함께 공조한 것과 비교된다. JCPOA는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대가로 국제사회가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이다. 트럼프는 오바마 때보다 더 나은 협상을 공언했지만, 최종합의가 어떻게 나올지는 미지수다.

<북한 비핵화와 새로운 국제질서·세력균형·국제관계 헤쳐갈 한국의 전략 필요>
앞으로 60일간의 협상으로 마련될 미국-이란의 최종 종전협정은 국제질서와 세력균형, 국제관계의 원칙 등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국제적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한국은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우리 국익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한·미 간 소통과 정보공유가 필요하다. 국제적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면서, 앞으로 전개될 전후 세계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대응 전략도 짜야 한다.

무엇보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 시도와 미국의 저지에서 비롯한 이번 전쟁과 종전협상은 한반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한이 이번 협상 과정을 보며 벤치마킹할 수 있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이미 핵을 보유하고 '핵무기는 핵심 이익'이라며 비핵화 불가를 외치는 북한과 대화하고 협상하려면 더욱 고도화된 전략과 긴밀한 국제공조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이란 종전 협상의 전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면밀히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