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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가 2200원에 풀렸다. 할부도 필요 없다. 물론 진짜 그랜저는 아니다. 현대자동차가 GS25와 손잡고 선보인 아이스크림 '현차는 빵빵' 이야기다. 카스텔라 사이에 크림치즈 아이스크림을 넣은 샌드 아이스크림인데 포장을 뜯으면 현대차 승용·SUV 라인업 20종을 담은 띠부씰(스티커)이 들어 있다. 아이오닉 시리즈부터 그랜저, 아반떼, 캐스퍼까지 현대차 대표 차종이 총출동했다.
발단은 농담이었다. 2022년 만우절, 현대차는 공식 SNS에 '현차'와 경적 소리 '빵빵'을 엮은 가상의 베이커리 콘텐츠를 올렸다. 하루 웃고 지나갈 이벤트였지만 소비자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진짜를 만들어 달라"는 고객들의 요청이 이어졌고 현대차는 4년 만에 이를 현실화했다.
전통적인 자동차 광고가 잘 통하지 않는 세대에게 TV 대신 편의점 냉동고로 찾아간 발상은 영리하다. 포켓몬빵이 증명했듯 수집은 재구매를 부르고 소비자는 스티커를 하나 더 얻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현대차 라인업을 익히게 된다.
이 '현대차 도감'을 보고 있자니 문득 묘한 생각이 든다. 띠부씰 속에서는 캐스퍼도, 아반떼도, 그랜저도 모두 같은 22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면 손에 넣을 수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현재 최대 28개월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 최상위 트림인 EV 라운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22개월 이상 대기해야 한다. "군대 간 아들보다 늦게 나온다"는 말도 있다. 생산을 맡은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물량 상당수를 유럽 수출에 배정한 영향이다. 유럽에서 '인스터'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이 차는 지난해 A세그먼트 전기차 시장 2위에 오를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소비자가 기다리는 동안 해외 판매는 계속 늘고 있다.
아반떼 역시 예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 출시된 아반떼 시작 가격은 2034만원이지만 주력 트림인 '모던'은 2355만원부터다. 옵션과 취득세, 보험료까지 더하면 사회초년생이 체감하는 첫 차 가격은 2500만원을 훌쩍 넘긴다. 최근 공개된 8세대 신형 아반떼는 배기량 확대와 플레오스 탑재 등을 반영해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의 논리도 이해는 된다. 자동차는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대형 디스플레이,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강화된 안전사양이 기본이 됐고,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도 크게 올랐다. 상품성을 높인 만큼 가격이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도 최근 부산모빌리티쇼에서 아반떼 가격 관련 질문에 "엔트리 모델에도 최신 기술과 상품성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은 회사가 처음 현대차를 선택하는 고객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엔트리 시장 소비자가 가장 먼저 체감하는 것은 잔존가치보다 가격, 서비스보다 공급이다.
현대차가 엔트리 모델의 상품성을 높이며 가격을 끌어올리는 사이 중국 업체들은 가격 장벽을 낮추며 젊은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싼 차'를 팔던 중국 업체가 합리적인 가격의 전기차를 앞세워 첫 차 시장을 노리는 시대가 됐다.
BYD는 올해 국내에 소형 전기 해치백 '돌핀'을 출시했다. 기본 트림 가격은 2450만원이다. 전기차 보조금을 받으면 실제 구매 가격은 2000만원 초반대로 떨어진다. 캐스퍼 일렉트릭을 2년 가까이 기다릴지, 지금 계약해 곧바로 탈 수 있는 전기차를 선택할지는 소비자의 몫이다.
자동차 산업에서 첫 구매 경험은 차 한 대를 파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첫 차는 다음 차와 그다음 차의 브랜드를 결정하는 출발점이다. 현대차 역시 엑셀과 베르나, 클릭, 아반떼를 통해 지금의 고객층을 만들었다.
문제는 냉동고 밖이다. 오늘 아반떼 띠부씰을 모으는 스무 살이 정작 첫 차를 사려는 순간 다른 브랜드 전시장을 찾게 된다면 현대차는 미래 고객을 편의점에서는 만났지만 시장에서는 놓친 셈이다. 2200원짜리 그랜저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첫 차 고객을 끝까지 현대차에 남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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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빈 기자
안녕하세요, 최유빈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