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가계대출과 부동산금융에 쏠린 자금을 벤처·혁신기업 성장자금으로 돌리는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면서 금융지주와 은행권, 핀테크 플랫폼까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모험자본 공급 체계를 넓히고 있다. 사진은 7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1784에서 진행된 ‘모험자본 투자 플랫폼 출범식’에서 (중앙 맨 좌측부터) 황성엽 금융투자협회장,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박상진 Npay 대표, 송병준 벤처기업협회장 등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사진=뉴스1


금융권에서 모험자본 공급 확대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과 부동산금융에 쏠린 자금을 벤처·혁신기업 성장자금으로 돌리는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면서 금융지주와 은행권, 핀테크 플랫폼까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모험자본 공급 체계를 넓히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네이버페이는 전날(7일) 금융감독원과 모험자본 투자 플랫폼 'Npay 스타트업'을 출범했다. 같은 날 우리금융그룹은 '2026 WFRI 컨퍼런스'를 열고 7조원 규모 생산적 투자 로드맵과 '연속형 모험자본 공급체계'를 제시했다.

모험자본은 성장 가능성이 크지만 실패 위험도 높은 중소·벤처기업, 스타트업, 혁신기업에 공급되는 투자성 자금이다. 담보와 상환능력 중심의 대출과 달리 기술력, 성장성, 시장성을 보고 자금을 넣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생산적 금융이 금융권 자금을 기업 성장과 첨단산업, 벤처 생태계로 유도하는 정책 방향이라는 점에서 모험자본은 핵심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


금융지주, 직접 투자 확대

그동안 모험자본 공급은 벤처캐피탈(VC), 신기술사업금융회사(신기사), 정책금융, 일부 증권사의 개별 투자와 펀드 출자 중심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투자 정보가 흩어져 있었다. 금융사는 투자대상 발굴에, 벤처기업은 기관투자자 접점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최근 금융권의 움직임은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금융지주는 계열사를 활용해 스타트업 발굴부터 후속 투자까지 이어지는 자금 공급 체계를 만들고, 당국은 민간 플랫폼과 손잡고 투자자와 기업을 연결하는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우리금융은 5년간 추진하는 90조원 규모 미래동반성장 프로젝트 가운데 7조원을 생산적 투자에 활용한다. 스타트업 발굴부터 초기 투자, 후속 성장자금 공급, 기업공개(IPO)까지 이어지는 구조다.

KB금융은 올해 20조원 규모 생산적 금융 실행계획을 확정했다. 국민성장펀드 2조원, 그룹 자체 투자 3조원, 기업대출 12조원, 포용금융 3조원 등으로 구성됐다. 연간 2000억원 규모 기업투자 모펀드를 조성하고 5년간 총 1조원을 첨단산업 분야 등에 투자할 계획이다.


하나금융은 올해 생산적 금융 공급 규모를 17조8000억원으로 정하고 국민성장펀드와 그룹 자체 투자에 각각 2조5000억원을 배정했다. 신한금융은 올해 2월 말 기준 생산적 금융에 3조1600억원을 투입했고, 청년·지역·창업 활성화를 위해 1000억원 규모 벤처모펀드 출자를 추진한다.

민관 플랫폼·제도 뒷받침

자금 공급과 함께 투자 인프라 정비도 이뤄지고 있다. 금감원과 네이버페이가 공동 추진한 'Npay 스타트업'은 모험자본 공급 과정에서 투자자와 벤처·혁신기업을 연결하는 민관 협업 인프라다. 투자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투자 절차를 표준화해 자본시장을 통한 생산적 금융 확대를 뒷받침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플랫폼에서는 증권사와 벤처캐피탈, 신기사, 벤처기업이 투자 정보를 확인하고 기업 검색, 인공지능(AI) 요약, 표준화된 펀딩 제안서, 사후관리 기능 등을 활용할 수 있다. 투자자는 기업 탐색 비용을 줄이고 벤처기업은 기관투자자 접점을 넓힐 수 있다.

당국은 제도적으로도 모험자본 공급을 유도하고 있다. 금융위는 발행어음·종합투자계좌(IMA) 조달액 대비 모험자본 공급 의무비율을 2026년 10%에서 2028년 25%까지 단계적으로 높이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부동산 관련 자산 운용한도도 기존 30%에서 2027년 10%로 낮춘다.

정책금융에서는 국민성장펀드가 주요 축이다. 국민성장펀드는 첨단전략산업기금 75조원과 민간·국민·금융권 자금 75조원을 합친 150조원 규모로 조성된다. 첨단산업과 벤처생태계에 장기 자금을 공급하고 민간 금융사의 투자를 끌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다만 모험자본 확대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려면 단순한 공급 규모보다 자금의 질과 지속성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재준 인하대 교수는 자본시장 개혁 공동심포지엄에서 "향후 관건은 얼마의 자금을 조성했느냐만이 아니라 누가 손실을 부담하며 어떤 산업과 기업에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자금을 공급했는가"라고 강조했다. 결국 투자처 발굴과 심사, 사후관리, 회수까지 이어지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