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변심'했다. 국내증시의 수급을 쥐고 있는 외국인이 연일 매도하면서 지난 17일 장중 코스피지수는 1960선마저 내줬다. 불과 2개월 전만 해도 지난해 '코스피 2000 돌파'의 주역이었던 외국인이 올해도 변함없이 매수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였다. 지금이라도 주식 투자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하는 걸까.
 
◇외국인 올 들어 3조6000억 매도…'韓 증시 엑소더스?'
 
외국인이 본격적으로 '팔자'에 돌입한 건 지난달 14일부터다. 이때부터 2월17일까지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3조6212억원을 순매도했다. 2월 들어서만 2조5666억원어치 주식을 팔았다. 월간 기준으로 외국인이 매도 우위로 돌아선 건 지난해 8월(-5587억원) 이후 6개월 만이다.
 
외국인의 매도의 가장 큰 이유는 신흥시장에서 높아지고 있는 인플레이션 압력이다. 인플레 상승에 따른 긴축 우려감이 확산되면서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 비중을 조절하고 있다는 것.
 
춘절 이후 중국이 기습적으로 금리를 인상하자 지난 9일 코스피가 20포인트 넘게 빠졌던 것도 중국 금리인상 자체보다 아시아 신흥국가들이 금리인상 기조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 탓이었다. 실제 지난해 12월 중국이 금리를 올린 이후 대만, 한국, 인도 등이 잇따라 금리를 인상했다.
 
반면 선진국시장은 물가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금리정책 역시 여전히 완화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정책 리스크가 낮다. 이에 따라 이제껏 과도하게 늘어난 신흥시장에 대한 비중을 선진시장으로 옮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증시를 둘러싼 제반 여건이 악화되면서 외국인은 일단 많이 오른 종목을 위주로 차익실현에 나서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현대중공업과 기아차, 현대모비스, 삼성전자 등이 대표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국계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올 초 코스피가 2130선 근방까지 오르면서 고점에 대한 부담감이 높아졌다"며 "인플레가 걱정스러웠던 만큼 신흥증시 가운데 주가 상승폭이 큰 종목을 중심으로 일단 팔고 보자는 심리가 강하다"고 말했다.
 
김정훈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지난 1월부터 외국인 매도세가 부각되기 시작한 건 단기 투자 경향이 강한 유럽 자금"이라며 "지난해 하반기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 이후 차익실현 수준으로 보면 된다"고 분석했다.
 
◇언제까지 팔까
 
시장의 관심은 과연 외국인들이 언제쯤 '팔자'를 멈추고 '사자'로 돌아서느냐다. 유감스럽게도 외국인이 마음을 바꾸지 않고는 코스피가 위쪽으로 방향을 틀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선진국 대비 신흥시장이 추세적인 강세를 보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신흥시장의 상대강도가 5% 이상 둔화된 경우를 살펴본 결과, 외국인의 총 매도 가능 금액은 6조원으로 추산됐다. 또 코스피는 1700선 후반대까지 밀렸다가 6월 말에서 7월 초 2100선에 회복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런 추측대로라면 당분간 외국인의 매도 기조는 이어지게 된다. 김 팀장은 그러나 "이전과 달리 현재 신흥시장 약세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시장은 여전히 상승세이고 신흥시장 상대 강도가 둔화된 이후에도 코스피가 3개월간 오름세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이보다 낙폭은 적고 회복은 빠르고 강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앞으로 추가 조정 여부와 낙폭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유입된 미국계 자금에 달려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태동 토러스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지난해 9~10월 한국주식을 본격적으로 매입한 유럽계 자금은 대부분 이익 실현 후 빠져나갔다"며 "지금부터 중요한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 10조원 넘게 순매수한 미국계 자금에서도 변화가 발생하는지 여부"라고 진단했다.
 
오 팀장은 '유동성 잔치'가 끝났다는 신호로 ▲테일러준칙 균형금리(적정 인플레이션율과 잠재 국내총생산(GDP) 아래서의 균형금리 수준) 급등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 4% 돌파 ▲미국 상업은행의 대출자산 증가 전환 ▲신흥국의 선진국 대비 상대 주가수익배율(PER) 1배 이상, 상대 주가순이익(EPS) 하락 지속 등 4가지를 꼽았다.
 
그는 "테일러준칙 금리는 2차 양적완화가 논의되던 수준으로 통화 확장 정책이 지속될 필요가 있고 미국 국채 금리는 아직 4%를 밑돌아 주식 매력을 약화시키는 정도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또 "미국 상업은행 대출이 증가하기 시작하면 통화 유통속도가 빨라져 인플레 우려가 커지겠지만 대출자산은 아직 증가하지 않고 있다"며 "신흥국의 선진국 대비 상대 PER은 0.95배에서 0.88배로 하락해 신흥국의 상대적인 밸류에이션 부담이 많이 해소됐다"고 덧붙였다.
 
결국 신흥증시도 선진국의 경기 회복이라는 호재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여건을 다시  갖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신흥국 펀더멘털에 대한 의심을 높였던 곡물가격도 안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 팀장은 "지난해 11월 골드만삭스 곡물가지수가 신고가를 경신한 이후 신흥증시가 선진증시보다 부진했다"며 "곡물가가 진정되고 있어 한국을 포함한 신흥시장이 글로벌 유동성 파티에서 쫓겨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0선 아래에선 인플레 수혜 종목을 사라
 
결론적으로 올 한해 한국증시에 대한 외국인의 초심(初心)은 여전하다. 잠시 애정을 거뒀던 외국인이 다시 마음을 바꿔 한국 주식을 사들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에 비해선 매수 강도가 약화될 순 있지만 '사자' 우위인 건 분명하다는 것.
 
김 팀장은 "2월 외국인의 공격적인 순매도에도 불구하고 올해 외국인은 국내증시에서 5조원가량을 매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최근 조정은 '매수' 기회라는 조언이다. 오 팀장은 "코스피 2000선 아래에선 주식 비중을 확대하라"고 권고했다.
 
김 팀장도 "1940선에서 지지를 받겠지만 1900선 부근까지 조정 가능성을 열어두라"면서도 "현재 조정을 2분기 이후 강세장을 준비하기 위한 매수 기회로 삼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인플레를 방어할 수 있는 업종에 관심 두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3월까지도 IT와 금융업종이 시장을 이길 것"이라며 "지난해 주가가 많이 올랐고 주당순이익(EPS) 추정치가 계속 우상향하는 종목의 수익률은 예상 외로 저조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