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해마다 이즈음이면 첫사랑처럼 떠오르는 강이 있다. 섬진강. 남도의 젖줄 섬진강이 겨울 동안에 야위었던 몸을 풀기 시작하면 봄의 여신은 화사한 미소를 띠며 이 강물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 그러면 강 언덕의 매화며 산수유꽃, 한송이 두송이 꽃망울을 터뜨리다가, 문득 여신의 숨결이 귓불에 느껴지는가 싶으면 언덕은 어느새 온갖 봄꽃으로 뒤덮인다.
 
섬진강은 봄을 부르는 강이다. 이 땅의 봄은 섬진강에서부터 온다. 이른 봄날 매화, 산수유가 피어나면 이 땅의 사람들은 누구라도 섬진강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이 무렵 봄꽃축제도 열린다. 아쉽게도 올해엔 지난해 전국을 강타한 구제역 때문에 대부분의 축제들이 취소됐다. 그렇지만 남도로 가는 발길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강 언덕엔 바야흐로 매화, 산수유가 활짝 피어났는데.

순천-완주고속도로 개통으로 접근 쉬워져

예전엔 섬진강으로 가려면 도로 선택이 조금 까다로웠다. 특히 수도권에선 88올림픽고속도로를 이용하든, 호남고속도로를 타든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었고, 동선 잡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난달 개통된 순천-완주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섬진강과 지리산에 기댄 구례로 바로 들어설 수 있게 됐다. 이렇게 하면 1시간 정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예로부터 구례를 '세가지가 크고, 세가지가 아름다운 고장'이라고 했다. 지리산, 섬진강, 그리고 들판이 전자요, 아름다운 풍광, 너르고 기름진 땅에서 거두는 풍요로움, 그리고 거기서 자란 사람들이 지닌 순박하고 인정미 넘치는 마음씨가 후자다. 무엇보다도 구례는 봄볕이 아름다운 고을이다. 만약 봄을 단색으로 표현하는 게 허락된다면 구례사람들은 열이면 열 모두 샛노란 색으로 봄을 그릴 것이다. 샛노란 꽃구름 타고 찾아오는 산골의 봄. 그건 바로 산수유꽃 때문이다.

봄이 오면 지리산 기슭엔 산수유꽃이 여기저기서 피어나는데, 특히 산수유나무가 많은 만복대(1433m) 남서쪽의 구례 산동골은 조물주가 노란 물감을 풀어서 그려낸 듯한 수채화가 된다. 그리하여 이른 봄날, 산수유꽃에 뒤덮여 샛노랗게 번지는 아련한 빛에 이끌려 마을길을 거닐다보면 누구라도 자신이 여신의 품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꽃이 피어서
 산에 갔지요
 구름 밖에
 길은 삼 십리
 그리워서
 눈 감으면
 산수유꽃 섧게 피는 꽃길 칠 십리
 -곽재구 시인의 '산수유꽃 필 무렵'

시인은 산수유꽃이 피는 게 왜 서러웠을까. 어쩌면 시인은 산수유꽃 그늘에서 거닐다 이 지리산 골짜기에서 벌어졌던 동족상잔의 비극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지리산 기슭에서 이 시를 읊조리며 '산수유꽃 섧게 피는 꽃길 칠십리'를 거닐다 보면 봄을 맞은 본능적인 기쁨과 아픈 역사에서 오는 슬픔이란 두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산수유꽃 감상의 정점은 산동골 가장 상류의 상위마을이다. 산수유꽃은 3월 중순에 피기 시작해 3월 말이면 만개한다. 매년 이 일대에서 펼쳐졌던 산수유축제는 올해엔 3월 넷째 주말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지난해 발생한 구제역 때문에 취소됐다. 그래도 산수유꽃을 보러 찾아오는 상춘객들을 위해 여러 편의시설을 갖췄고, 각종 농특산물 장터도 열 예정이다.



산수유꽃을 감상한 다음 구례 읍내 남쪽의 섬진강변에 솟은 오산(531m)을 찾아가보자. 구례 읍내에서 861번 지방도를 타고 문척 방면으로 가다가 문척교를 건너 우회전해 3km 가면 왼쪽으로 사성암까지 오르는 콘크리트 찻길이 있다.

오산은 그다지 높지는 않아도 조망이 아주 빼어난 산이다. 곡성을 지나온 섬진강이 오산 아랫도리를 크게 S자로 휘돌아 흐르고, 구례 들판 너머로 펼쳐진 지리산 풍광이 일품이다. 오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자리한 사성암(四聖庵)은 연기조사가 544년 화엄사를 창건하고, 그 이듬해 건립한 암자. 이후 원효 의상 도선 진각 네명의 고승이 수도한 암자라 하여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사성암을 다녀온 뒤엔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흘러가면 된다. 강 양쪽으로 강변도로가 잘 나 있다. 강 북동쪽의 19번 국도든 남서쪽의 861번 지방도든 어느 길을 따라도 좋지만, 19번 국도변엔 운조루, 석주관성, 화개장터, 고소성, 최참판댁 등 유서 깊고 사연 많은 볼거리들이 흩어져 있다. 이렇게 강줄기를 따라가다 하동 읍내에서 섬진교를 건너면 광양 매화마을의 청매실농원이 반긴다.


매화 꽃구름 싣고 흘러가는 섬진강

청매실농원은 우리나라 최대의 매화 군락지다. 1930년에 심은 70여년생 수백그루를 포함한 10만여그루의 매화나무가 장관을 이룬다. 매화가 만개했을 때 멀리서 보면 강 언덕이 온통 흰눈으로 뒤덮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섬진강의 매화는 보통 2월 중순 무렵 첫 꽃망울을 터뜨린다. 아직 겨울의 한기가 남아있을 때 한두송이 꽃을 피워 올리는 매화. 그래서 옛 선비들은 '일생 추위 속에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의 절개를 본받으려 했다.

청매실농원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풍경은 꽃과 산과 강이 한데 어우러져 멋들어진 풍경화가 된다. 매실 식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2000여개의 항아리도 맑은 강물과 어울려 고향의 봄을 노래한다. 매화 사이로 산책로가 잘 가꿔져 있어 느릿느릿 걸으면 봄의 즐거움을 한껏 만끽할 수 있다.

이곳 청매실농원의 매화가 모두 꽃망울을 터뜨리는 건 3월 중순쯤이다. 올해엔 지난 겨울의 한파와 꽃샘추위 때문에 매화의 개화가 늦어져 셋째 주말인 19일쯤 만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매년 매화가 만개하는 매년 3월 중순 무렵이면 매화마을 일원에선 매화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구제역 여파로 취소됐다. 그러나 행사만 취소됐을 뿐 매화마을 방문과 산책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광양매화문화축제 홈페이지(www.maehwa.org)나 청매실농원 홈페이지(www.maesil.co.kr 061-772-4066) 참조.

 
여행수첩

●교통 경부고속도로→논산·천안고속도로→익산분기점→익산·포항고속도로→전주 분기점→순천·완주고속도로→구례화엄사 나들목→산수유마을 <수도권 기준 3시간~3시간 30분 소요>

●숙박 구례 산수유마을 입구에 지리산온천랜드(061-783-2900), 지리산프라자호텔(061-782-2171), 송원콘도미니엄(061-780-8000), 노고단관광온천장(061-783-0161)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화엄사 입구에 리틀프린스펜션(061-783-4700), 산사랑펜션(061-783-6090), 한화리조트(061-782-2171), 지리산 스위스 관광호텔(061-783-0700) 등의 숙박시설이 많다.

●별미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사는 재첩은 국물맛이 매우 담백하면서도 시원해 속풀이용으로 아주 그만이다. 섬진강변엔 재첩국을 차리는 식당이 많다. 하동 읍내의 동흥재첩국(055-883-8333), 부흥재첩식당(055-884-3903) 등이 유명하다. 재첩국 1인분 7000원, 재첩회(2~3인분) 2만원.

●참조 구례군청 061-782-2014, 하동군청 055-880-2114, 광양시청 061-797-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