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꼬리를 물며 찾아온다고, 이웃나라 일본에 악재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지난 11일 일본 동북부지역을 강타한 진도 9.0의 지진으로 사망 및 실종자가 1만명을 넘어서고 있고, 후쿠시마의 원자력발전소는 폭발 수준이 높아져, 과거 러시아의 체르노빌 사태에 준하지 않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저 상황에 처해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만약 대지진으로 지금 당장 내가 죽는다면 내 사랑하는 가족들은 가슴 속에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갈까? 반대로 내가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된다면 나는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갈까? 과연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실 이러한 질문을 마음 속으로 던지면서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면 자신을 키워주는 할머니와 벤자민의 대화 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도록 되어 있단다. 그 때 그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수 있게 되지.’ 그리고 그 영화의 밑바탕에는 ‘어쨌든 받아들여야 한다’는 명제가 깔려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아등바등 살아간다. 하루하루의 삶에 쫓기다보니 어렸을 때의 꿈은 온데간데 없고, ‘내집 마련’이나 ‘자녀 교육’과 같은 현실적인 목표로 꿈이 축소된다. 그나마도 분수에 맞지 않게 대출 받아서 이자 내느라 가정 경제의 허리가 휘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죽을 날이 다가 왔을 때,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까?

최근 현장에서 재무 상담을 하면서 미국의 저명한 재무상담사인 조지 킨더의 ‘3대 충격적 질문’을 하곤 하는데, 그런 질문을 하다 보면 그 가정이 갖고 있는 진정한 삶의 목표와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의 근간인 ‘가족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첫번째 질문은 ‘필요한 만큼의 돈이 준비돼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다. 사실 사람들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하고자 하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그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금전적인 압박감 때문에, 언젠가부터 아련한 꿈으로만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 질문을 던지면 ‘가족을 도와주고 싶다’는 바램이나 ‘가족과 함께 세계 여행을 가고 싶다’라는 답변이 많이 나온다.


그런 답변이 나왔을 때, ‘그럼 그것을 지금부터 준비하시면 되잖아요?’라고 다시 질문하면, ‘그게 가능할까요?’라는 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현실의 삶에 쫓기다보니 언젠가부터 실현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채 마음 속에 담아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슴 속의 목표를 끄집어 내고, 실행 계획을 세우게 되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반드시 이룰 수 있다.
 
두번째 질문은 ‘살아갈 날이 5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지금의 인생이 어떻게 바뀔까요?’다. 이러한 질문은 가족 구성원들이 진정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 매우 용이하다. 살아갈 날이 5년이라고 가정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에 대해 초연해지며 남은 기간 동안 의미있게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을 자신의 기준이 아닌 남들의 기준에 따라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기 보다는 정말 살아가면서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얘기하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한다. 부모님이나 자식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일부의 자산을 남겨놓고, 남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여행하는데 쓰겠다거나, 심지어 사고로 죽는 것보다 나을 것 같으니 힘이 닿는 한 봉사하고 싶다는 의견도 나온다.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세번째 질문은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이 가장 후회되는가?’다. 꼭 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후회가 되는 것들이나, 어떤 모습이 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후회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삶을 하루 남겨놓은 상황에서 오늘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는 것인데, 의외로 ‘가족에 대한 후회’에 대한 답변이 가장 많이 나온다.
 
가장 가까이에 있고 사랑해서 내가 더 아끼고 보듬어야 하지만, 의외로 가족들에게 무관심한 채 쉽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어떻게 삶의 자세를 바꿔야 할 지, 그리고 내가 정말 되고 싶었던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할 지, 그리고 그런 것을 이뤘다고 가정했을 때, 정말 죽을 때 여한이 없는지 등을 얘기하다보면 진정한 삶의 목표와 자세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다.
 
사실 필자도 이 세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반성을 많이 했던 기억이 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화도 잘 안내고, 대화로 모든 것을 풀어가려 했지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에게는 나만의 기준을 잣대로 쉽게 화를 내고, 통제하려 했던 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차후에 내가 눈을 감을 때 참 후회가 많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다투고, 시기하며, 서로 상처를 주고 살아간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살아간다면 하루하루가 풍성해지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들 모두 ‘살아서는 사리에 맞는 행복을, 죽어서는 다함이 없는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