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사이사이로, 세상의 모든 양식이 구현된 카페들이 늘어선 회랑을 걷는다.
 
삼청동길 초입엔 얼마 전 개소한 근대식 영국의 문짝과 창틀, 타일, 램프와 의자로 내부를 채운 빈티지 카페가 있다. 조금 더 걷다보면 그리스풍 구조에 흰색 회벽을 칠한 파란 창문이 인상적인 카페가 보이고, 아테네 신전의 기둥을 모방한 파사드(façade)로 입구를 장식한 레스토랑과 스위스풍 테라스가 눈에 띄는 카페들도 있다. 이 같은 카페들은 시간을 견뎌온 기물과 패턴들, 즉 과거의 한시대를 풍미했던 양식으로 촘촘히 채워졌지만, 아무튼 여기 삼청동에 들어선 지는 오래지 않은 ‘새 것’이 대부분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동시대 상업적인 성공을 이뤘다고 여겨지는 양식을 그대로 떼어다 이식해 놓은 카페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스타벅스풍’의 표준화된 프랜차이즈 카페들과 일본 긴자거리에서 소비되는 긴자풍의 카페들, 같은 의미에서의 뉴욕 첼시풍의 카페들, 가구 브랜드인 이케아(IKEA)의 가구와 소품들로 채워진 이케아식 카페 따위들. 이 카페들 역시 삼청동에 들어선 지는 오래지 않은 ‘새 것’이 대부분이다.

오늘도 삼청동은 ‘카페’ 공사 중이다. 백반집이나 선술집, 구멍가게, 야채와 반찬가게, 정육점 등 나와 같은 거주민들에게 필요한 가게는 없다. 무엇보다 삼청동을 상징했던 소규모 갤러리들 또한 높은 임대료를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는 카페들에 밀려 쫓겨나거나 자진 이주한지 오래고 지금도 닥치는 대로 헐리는 중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가게들과 소규모 갤러리들을 밀어내고 들어선 양식적인 카페들이 성업 중인가, 꼭 그렇지도 않다. 때문에 기껏 2년에서 3년, 때로는 6개월도 채 안 된 (새)카페들이 흔적도 없이 하룻밤 새 사라지곤 한다. 그러니 삼청동은 늘 ‘공사 중’이다.
삼청동에 늘어선 공간들에서 유독 양식적인 인상이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새 것’이 미처 공간 속에 녹아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식은 과거에도 있어왔고, 현재도 그러하며, 양식은 보편성을 획득한 어떤 특정한 분위기이고, 우리는 그 같은 양식 속에서 일종의 편안함을 느낀다. 가령 백남준의 설치작품 앞에서 마음이 누그러지기는 어렵지 않은가? 문제는 ‘새 것’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제 것이라 할 만한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혹은 미처 내용을 담기도 전에 우리는 실패했다고 믿으며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를, 공간을 ‘철거’한다. 물론 다시 ‘새 것’이 공간을 채울 테지만, 텅 빈 공허다.


내용은 시간과 더불어 형식 속에 자신을 채우고 보태며 형식은 그제야 오롯이 자신의 고유성을 드러낸다. 그 같은 장소는 어떤 특정 양식으로만 규정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는 “장소의 혼과 장소감을 훼손하는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든 빈곤해진다”고 경고한 바 있다. 장소감이란 내부에 있다는 느낌이고 개인의 특정한 경험이 녹아든 공간이다.
 
그런데 이웃이 몇개월마다 바뀌고, 강산이 십년이 아닌 일년마다 바뀌는 경험의 일관성이 시시때때로 훼손되는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우리는 얼마나 느긋하게 견뎌낼 수 있을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지만, 전 국가적으로 장소감이 훼손되는 상황에서 나는, 우리는 얼마나 더 떠돌아야하며 각자는 '빈곤해진 세계'에 대한 책임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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