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첫선을 보인 전북 고창의 '질마재 따라 100리길'은 고창의 명소를 두루 연결하는 길이다. 그중 제4코스인 '보은길'은 선운산의 아름다운 경관과 선운사 창건설화가 잘 어우러져 있어 눈길을 끈다. 뿐만 아니라 들판과 갯벌의 경치도 모두 이 코스에 담겨 있으니 연둣빛 물든 봄날, 자연을 벗삼아 걷기 좋아하는 이들에겐 안성맞춤의 길이다.

질마재 따라 100리길은 전체 길이가 45.4km에 이른다. 제1코스는 고인돌박물관~고인돌유적지~운곡습지~장살비재(7.9km, 3시간)에 이르는 '고인돌길', 제2코스는 장살비재~병바위~산림경영숲모델~풍천(7.8km, 3시간)에 이르는 '복분자·풍천장어길', 제3코스는 풍천~질마재~풍천(12km, 4시간 순환코스)에 이르는 '질마재길', 제4코스는 풍천~선운사~도솔암~참당암~소금전시관~하전갯벌마을~좌치나루터(17.7km, 6시간)에 이르는 보은길(소금길)이다.

은혜를 갚기 위해 소금을 바치던 그 길
이 중 제4코스인 보은길은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꼽히는 선운산(禪雲山, 336m) 품에 안겨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보은길이란 이름은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가 도적질을 일삼던 고창 해안의 무리에게 소금 제조법을 알려줘 새 삶을 살게 했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다. 당시 개과천선한 도적들은 감사의 뜻으로 매년 선운사에 소금을 갖다 바쳤는데, 보은길은 그때 그들이 이용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코스를 기본으로 했다. 고창군 안내지도에는 선운사 들머리의 삼인교차로 근처의 풍천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교통편이 마땅치 않을 경우 선운사 주차장에서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다.


선운사는 동백으로 잘 알려진 절집이지만, 선운계곡의 연둣빛 신록 또한 이에 뒤지지 않는 매력을 뽐낸다. 천년고찰 선운사에서 선운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산길은 계류 오른쪽으로 이어져 있다. 길은 아주 평평하다. 콧노래 나오는 상쾌한 오솔길을 얼마쯤 걷다보면 도솔암으로 이어진 비포장도로를 만난다. 이 길은 오가는 차량들 탓에 먼지가 풀풀 나는 곳이다. 여기서부터는 반드시 계곡 왼쪽의 오솔길을 선택해서 걸어야 숲의 상쾌함을 계속 즐길 수 있다. 길은 계속 평탄하다. 이렇게 계곡 왼쪽 오솔길을 걷다가 수령 600년의 잘생긴 장사송도 감상하고, 진흥왕이 왕위에서 물러나 왕비와 공주를 데려와서 수도했다는 전설이 전하는 진흥굴도 들어갔다 나오면 어느덧 도솔암에 다다른다.


 
도솔암 마애불(보물 제1200호)은 배꼽 속에 들어있던 신비한 비결이 햇빛을 보는 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는 전설을 들려주는 부처다. 마애불 오른쪽으로 돌아 바위를 끼고 이어진 108계단을 오르면 천마봉 전망 좋은 자리에 아담한 내원궁(內院宮)이 모습을 드러낸다. 내원궁은 미륵불이 도솔천에서 수행과 교화를 펼치며 머무르는 곳이다. 내원궁에서 올려다보는 천마봉, 낙조대 경치가 좋다.
보은길은 선운산 구간에서는 선운사~도솔암~소리재~참당암으로 이어진다. 아쉽게도 용문굴~낙조대~천마봉 구간은 산길이라 보은길에서 제외한 듯하지만, 왕복 40분~1시간 정도만 더 투자하면 선운산 최고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으니 시간 여유가 있다면 다녀오기를 권한다. 천마봉은 전망도 좋고 널찍해 간식 먹기도 그만이다.

천마봉 조망을 즐긴 뒤 다시 용문굴로 내려와 소리재를 넘으면 참당암. 보은길 이정표는 전체적으로 보면 세세한 부분이 조금 미흡한 편이다. 게다가 이곳 선운산 구간에는 보은길 이정표가 거의 눈에 띄지 않으므로 도립공원에서 설치한 산행 이정표로 길을 찾아야만 한다. 특히 주의할 곳은 참당암이다. 여기서 연천마을로 넘어갈 때는 참당암 바로 앞의 왼쪽에 있는 컨테이너를 끼고 언덕으로 오른 뒤 차밭 사잇길을 지나야 한다. 이정표가 없으므로 조심해야 헤매지 않는다.


만약 보은길에서 선운산 구간만 걸을 예정이었다면 참당암에서 선운사로 하산하면 된다. 이렇게 원점 회귀하는 코스는 총 4시간 정도 걸린다. 연천 화산마을을 거쳐 좌치나루터까지 보은길을 완주하려면 2~3시간 정도 더 발품을 팔면 된다.

참당암에서 차밭 사잇길 지나 나지막한 고개를 넘으면 호젓한 연천마을이다. 연천마을은 서너아름되는 느티나무 고목이 눈길을 끌고, 그 아래 화산마을은 아담한 마을숲이 예쁘다. 연천마을부터는 시골길이라 해도 아스팔트 포장이 돼 있어 걷는 데 불편할 수도 있다.

연천 화산마을 지나 22번 국도를 건너면 진채선(陳彩仙, 1847~?) 생가터. 무당의 딸로 태어나 기생이 됐던 진채선은 신재효에게 판소리를 배우면서 음률과 가무에 능한 명창의 반열에 오른 인물. 22살 때 경복궁 낙성연에 불려가서 판소리를 불러 좌중을 사로잡아 명성을 떨치면서 흥선대원군의 애첩으로 총애를 받았다. 대원군이 실각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온 진채선은 병든 신재효를 간호하다 스승이 세상을 뜨자 삼년상을 치른 후 모습을 감췄다고 전한다.

진채선 생가터에서 소금전시관은 지척이다. 이곳부터 길은 산도 들판도 모두 뒤로 하고 해안을 따라 이어진다. 왼쪽의 널따란 갯벌에 눈을 빼앗기며 걷다보면 하전마을. 갯벌 체험으로 잘 알려진 마을이다. 보은길은 하전마을에서 2.4km 더 떨어진 좌치나루터까지 이어진다. 좌치나루터까지의 길은 아주 호젓하다.

하전마을 조개잡기 체험도 연계 가능
고창은 갯벌의 고을이다. 따라서 고창 여행에서 산과 들판을 모두 즐겼어도 갯벌을 빼놓았다면 3박자 중 하나를 빠뜨린 셈이다. 고창의 여러 갯벌마을 중 하전마을은 갯벌체험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잘 갖춰져 있다.

갯벌에서 신는 장화, 조개를 캐는 도구인 갈퀴, 수확물을 담는 바구니 이렇게 세가지는 하전마을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바지락 캐는 요령도 동행한 가이드가 친절하게 일러줘 초보자도 섭섭지 않게 잡을 수 있다. 하전마을 갯벌에서 잡히는 조개는 주로 동죽, 바지락, 모시조개 등이다.

하전마을에 도착했을 때 물때가 맞으면 바로 갯벌 체험이 가능하지만, 물때를 맞추지 못했다면 갯벌 체험을 할 수 없으므로 사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하루에 갯벌 체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보통 3~6시간 정도인데, 5월 둘째 주말인 14일(토)은 오후에 5시간(14:00~19:00), 15일(일)은 4시간(15:00~19:00) 정도다. 따라서 늦어도 오후 5시 전에 도착해야 체험을 할 수 있다. 하전갯벌체험마을(063-564-8831, 019-636-5486) 홈페이지(hajeon.invil.org) 참조. 기본 2시간 성인 1만원, 어린이 6000원. 예약 필수.


여행수첩

●교통 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당진·상주고속도로→서천·공주고속도로→서해안고속도로→고창 나들목→고창읍성<수도권 기준 3시간~3시간 30분 소요>

●숙박 선운사 입구에 동백호텔(063-562-1560), 선운산관광호텔(063-561-3377), 선운산유스호스텔(063-561-3333) 등 숙박시설이 많다. 하전마을에도 갱번이마을(010-9877-8771)이라는 숙소가 있다.

●별미 선운사 주변에는 풍천장어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많다. 그중에서 선운사 입구의 고바우풍천장어(063-562-5878, 심원면 용기리 458-21번지)는 풍천장어대파구이를 잘하는 집이다. 대파는 장어의 비린내를 말끔히 잡아주기 때문에 여성과 아이들도 좋아한다. 고창 토박이인 주인장은 장어 다루는 솜씨도 좋고 친절하다. 선운사 입구의 삼인교차로에서 22번 국도를 따라 영광 방면으로 1km 정도 가면 오른쪽 강변으로 고바우풍천장어집이 보인다. 장어구이 1인분 2만2000원, 직접 담근 복분자술 2홉들이 한병 1만원.

●참조 선운산 도립공원 관리사무소 063-563-3450, 선운사 종무소 063-561-1422, 고창군청 문화관광과 063-560-24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