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홍차는 정신을 고양시키는 동양의 ‘다도’나 ‘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항암’이니 ‘중금속 제거’니 하는 건강과도 거의 관련이 없는, 기껏 취하지 않는다는 장점을 지닌 ‘낮술’과 흡사한 것이다. 쓰고 달착지근한 한잔의 소주를 마시면 사지는 풀리다 못해 흐느적거리고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는 둥 덜 불행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듯이, 근대 영국 노동자들이 마셨던 쓰고 달달한 홍차는 즉각적으로 설탕과 카페인을 몸에 주입시켜 덜 불행한 기분으로 일터로 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게다가 싸구려 저질 홍차라도 홍차는 홍차요, 싸구려 저질 커피믹스라도 커피는 커피인지라, 차 한잔 마신다는 건, 맹물을 마시는 것보단 어쩐지 ‘취향’처럼 여겨진다. 가령 조지오웰이 영국의 노동자들, 특히 광부와 실업자들의 현실을 고발한 르포르타주인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지적하듯, 영국의 노동자들에겐 설령 그것이 영양엔 별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싸구려 흰빵에 설탕을 친 홍차를 마시는 것이 그보단 비싸고 몸에도 좋은 누런 통밀빵에 찬물을 마시는 것보다는 근사했을 테다. 마치 할인카드로 지불한 스타벅스 커피 한잔으로 속을 달래는 신세면서도 아무튼 스타벅스 커피이기에 눈물이 날만큼 우울하진 않다.
한편 노동에 “시달리고 따분하고 비참한 신세가 되면 몸에 좋은 음식은 심심해서 먹기가 싫다.” 그렇기에 신선한 오렌지 주스와 통밀빵보다는 핫도그나 감자튀김이나 뜨거운 한잔의 싸구려 저질 홍차가 먹는 ‘재미’가 있다. 이사와 같은 중노동 후에 자장면을 먹고 커피믹스로 입가심을 해본 사람이라면 먹는 ‘재미’로서의 음식이 얼마나 화끈하고 신나는지 단박에 공감할 테다. 다시 조지오웰의 말마따나 홍차가 영국인들에게 아편과 같은 역할을 했다면, 커피믹스야말로 한국인들에겐 아편과 같은 것이다. 때문에 몸에 결코 좋지 않다는 걸 모르진 않지만 궁여지책 마시고 나서야 소화가 되고 일이 되는 것이다.
근대 영국 노동자들의 음료인 싸구려 저질 홍차와 현대 한국 노동자들의 음료인 싸구려 저질 커피믹스. 한편에선 홍차를 근대 영국 귀족들이 마셨을 법한 방식으로 마시고 마찬가지로 다른 한편에선 드립커피니 코피 루왁(Kopi luwak)이니 호들갑을 떨지만, 홍차든 커피든 두 음료를 가장 사랑하고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은 완벽히 세팅된 티 테이블에서가 아니고 고급 커피집이 아닌 노동의 현장, 거리에서다.
유기농 & 공정무역 티 브랜드
(주)사루비아다방(www.salviatearo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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