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부활의 나래를 펴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 실패에 따른 여진은 여전하지만 그룹사옥에 꼬박꼬박 출근하며 현대그룹의 2011년 부활행보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현대상선의 경영권 방어를 통해 현대그룹의 구조를 재건하고 위기에 처한 대북사업을 재개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다. 재무구조 개선약정의 족쇄를 벗어난 만큼 다각도의 투자를 통해 사업다지기에 나서야 할 목표도 생겼다.

◆재무구조 개선약정서 제외…부활 신호탄?
현대건설 인수실패 여파에도 불구하고 최근 현 회장은 갑갑했던 숨을 다시 내쉴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실적 부진과 부채 급증 등의 이유로 재무구조 개선 대상에 포함됐던 현대그룹이 지난 4월 약정 대상에서 제외돼 올 한해 대규모 투자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재무구조개선 약정은 금융권 부채가 많은 대기업 계열사들(주채무계열) 가운데 재무구조가 취약한 곳을 대상으로 하는데, 지난해 현대그룹은 금융권 채무를 상당규모 상환해 이번에 주채무계열에서 빠졌다. 이로 인해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을 필요도 없어지게 된 것. 

사실 지난해 내내 재무구조 개선약정은 현대그룹을 괴롭혔다. 개선 약정을 체결할 경우 부채를 줄여야 하고,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자금 조달에도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감 때문에 현대그룹은 소송까지 전개하면서 약정 체결을 거부했었다.

하지만 이번 재무구조 개선약정 대상 제외로 현 회장은 현대그룹의 공격적 투자를 지휘할 수 있는 호기를 마련했다. 특히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이 당초 예정됐던 선대 확충을 빠른 속도로 전개할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큰 수혜로 떠오른다. 


현대상선은 올해 컨테이너선을 62척에서 69척으로 7척 늘리고 벌크선도 102척에서 123척으로 21척 늘릴 방침이어서 이에 투입될 금액은 작년보다 88% 늘어난 4859억원 가량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경우 매출 7조9438억, 영업이익 6374억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현대상선측은 기대하고 있다. 

◆위기의 대북사업…정면 돌파 묘수는?

재무구조 개선 제외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현 회장을 여전히 고민스럽게 만드는 과제 역시 만만치 않다. 우선 막혀있던 대북사업을 하루빨리 재개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떠안고 있다.
  
지난 4월9일만 해도 북한은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사업 독점권의 효력을 취소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며 현대그룹의 대북사업 재개를 더 암울하게 만들었다.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은 지난 2008년 7월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 이후 사실상 중단됐고,  북한은 천안함 사건 후인 작년 4월말에도 현대아산의 외금강 주요 시설에 대한 동결조치를 집행하는 등 계속된 악재를 양산(?)했다.

이로 인해 현대아산은 금강산 관광사업을 위해 8000억원에 가까운 돈을 쏟아붓고도 현재는 그룹내 적자 기업으로 전락했다. 현대아산에 따르면 금강산 및 개성관광 중단으로 입은 손실은 지난 2년9개월동안 약 4075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재무구조가 악화되면서 현대아산은 강산 사업이 중단된 첫해인 2008년 213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2009년 299억원, 2010년 25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처럼 대북 사업을 총괄하는 현대아산이 기업 회생에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 만큼 현 회장으로선 돌파구 찾기가 시급해졌다. 하지만 현재로선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정부당국과 긴밀히 협의하는 수준의 대책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 현실화는?

현대건설 인수전이 현대차그룹의 승리로 마무리된 상황에서 현대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경영권 방어 역시 현 회장에겐 반드시 고수해야할 미션이다.

지난 4월 현대상선은 현 회장 중심으로 경영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우선주 발행한도를 현행 2000만주에서 8000만주로 늘리는 안건을 상정했지만, 주요 주주인 현대중공업(23.78%), 현대백화점(1.89%) 등 범현대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재계에선 이를 놓고 현대상선 경영권 분쟁이 공식적으로 재점화된 것이라는 시각이 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상선이 우선주 발행한도를 늘리는 데 실패하면서 범현대가가 기존 지분 비율을 유지하게 된 만큼 현대상선 경영권에 위협적 존재로 계속 남아 있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역시 지난 3월 “현대건설이 갖고 있는 현대상선 지분(7.7%)을 매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어 현 회장의 현대그룹으로선 이래저래 현대상선 경영권 유지를 위한 다각도의 방안을 모색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정몽구 회장과의 화해, 물 건너 갔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현대건설 인수전’이 어느정도 매조지됐지만 현 회장과 그의 시숙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간의 화해여부는 여전한 재계 관심사다. 한때 정 회장이 현대차그룹 고위 임원들에게 현대그룹과의 화해를 지시했다는 얘기가 나돌았지만 정작 현대그룹측은 그런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며 일축했다.

지난 3월21일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범현대가(家)가 한날한시에 선영을 참배한 자리에서조차 두 회장간 화해가 기대됐으나 서로 불과 2분 차이로 다녀가면서 화해를 위한 만남 자체가 결렬됐다.  

이보다 앞선 3월14일 현 회장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10주기 추모음악회에서 “아직 정 회장으로부터 화해 제의를 받은 적은 없다”며 "(현대차그룹)의 화해제안이 오면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었다.
 
그런 가운데 그룹간의 법정공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11월 현대그룹이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해 근거없는 의혹을 제기했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 그 내용. 지난 6일 열린 첫 공판에서도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은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하며 법정공방을 계속할 뜻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