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정말로 최경주 선수는 데이비드 탐스 선수와 경쟁을 한 것일 것? 외견상은 그렇다. 그런데 최경주 선수가 경기를 할 때, 경쟁선수가 방해를 한 것도 없다. 반대의 경우도 없다. 생각해 보면 연장전을 하는 동안 공격과 수비도 없고, 대화도 없다. 두 사람은 그저 자기 자신의 공을 열심히 쳤을 뿐이다. 그런 상황을 우리는 경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경쟁자들을 생각해 보자. 당구장의 경쟁상대는 누구일까? 맞은편 당구장인 줄 안다. 그래서 그 당구장보다 시설도 더 좋은 것을 구비하고, 가격도 내리고, 서비스도 개선했다. 그런데 망했다. 알고 봤더니 손님들은 맞은편 당구장이 아니라, 아래층 PC방으로 옮겨 갔기 때문이란다. 주말 야외 놀이동산의 경쟁상대는? 다른 놀이동산이 아니라, 시내에 있는 복합상영관일수도 있다. 그렇듯 경쟁상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의외의 곳에 따로 존재할 수 도 있다.
그렇다면 골프의 경쟁상대는 누구일까? 외견상으로는 지금 나와 내기를 하고 있는 동반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최경주 선수의 연장전 상대가 데이비드 톰스 선수가 아니라 양용은 선수였다면, 최경주 선수의 17번홀의 경기내용이 달라졌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수한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이 우승의 기회 앞에서 똑같이 떨리지 않았을까? 아일랜드 홀의 압박감도 같았을 것이고, 그날의 신체 컨디션도 같았을 것이다.
골프에서 같이 하는 동반라운드보다 더 중요한 경쟁상대는 셋이다. 첫번째는 자기 자신의 몸이다. 주로 초보시절의 이야기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변덕스러운 자신의 몸. 한없이 나태해지려는 몸과 싸워서 골프스윙의 일관성을 어느 정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필드에 나갈 수 있다.
두번째 경쟁상대는 코스, 또는 그 코스를 설계한 디자이너다. 코스 속에 숨겨진 방어와 유혹의 부분을 잘 찾아내고, 자신의 능력에 맞게 공략의 길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살짝 보여준 그린의 끝자락을 보고, 파5 두번째 클럽으로 3번 우드를 뽑았다면, 어쩌면 디자이너의 유혹에 넘어가 있는지도 모른다.
세번째 경쟁상대는 다시 자기 자신의 마음이다. 한샷이 끝날 때마다 마음속에는 심한 감정의 충격이 밀려온다. 그래서 끝없이 화내고, 흥분하고, 우울해 하고, 불안해 한다면 어느 한순간 한없이 무너지기 마련이다. 몸보다 200배 더 변덕스러운 마음과의 경쟁에서 이겨내야만 무너지지 않는 골프를 할 수 있다. 그렇게 실수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골프가 진정 강한 골프일 수도 있다.
경쟁. 무엇을 하나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경쟁자가 있다. 그곳에 집중하면 절반의 성공을 기대할 수는 있다. 진정한 성공을 위한다면, 눈을 들어오지 않는 진정한 경쟁자를 잘 살피고, 그에 대비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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