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 반도체기업인 동부하이텍은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왔다. 내외 여건이 녹록치 않아 숱한 고비를 넘겨야 했다. 그러기를 28년, 암흑 속을 헤치고 달려오다 올해 처음 빛을 봤다. 비메모리반도체 생산 이후 처음으로 올 1분기 흑자를 기록한 것. 거기에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반도체사업에 대한 남다른 집념이 녹아있다.
 
◆만남…미래 첨단산업에 눈떠

동부하이텍이 창업 이후 첫 영업 흑자를 기록했다. 올 1분기, 매출액 1473억원에 67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척박한 국내 시스템반도체산업 여건에서 만들어낸 성공사례라는 점에서 관심이 쏠렸다. 뚝심을 지키며 사업을 이끌었던 김준기 동부 회장의 집념이 첫 결실을 본 것이어서 의미가 깊다.

김준기 회장은 80년대 초, 미래 첨단산업의 주역이 될 반도체에 주목했다. 1983년 미국 몬산토와 합작사인 코실을 설립해 사업을 시작했다. 국내 최초의 실리콘웨이퍼 생산 전문업체였던 코실은 연구개발 끝에 1992년 고순도다결정실리콘을 저가에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제조공정 기술을 세계에서 두번째로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 기술을 독일의 바커케미칼에 판매함으로써 첨단 핵심기술을 수출하는 국내 첫 사례로 꼽혔다.


김 회장은 여기서 힘을 얻었다. 반도체소재분야에서 축적한 기술력과 경험을 토대로 90년대 중반부터는 사업다각화에 주력했다. 코실을 LG그룹에 매각한 이후엔 ‘반도체 사랑’에 더 깊숙이 빠졌다. 단단한 준비과정을 거친 김 회장은 1997년 동부전자를 설립하고 IBM과의 기술 제휴를 맺어 메모리반도체사업에 뛰어들었다.


◆불운…야심 꺾은 악재들

하지만 김 회장은 ‘메모리반도체 야심’을 꺾어야 했다. 사업 초기 IMF 경제위기의 불운을 만난 것. 예기치 못한 위기에 동부는 이 사업에서 손을 떼야 했다.

이때 눈길을 돌린 분야가 비메모리반도체사업이다. 방향을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사업으로 틀어 첨단산업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새롭게 불태웠다. 일본 도시바와 손잡고 2001년 생산을 시작했다. 시스템반도체에 대한 정부의 정책지원은 전무했던 때였다. 파운드리로의 사업 전환에 대해 동부하이텍 관계자는 “시스템반도체산업의 큰 축인 첨단 팹리스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한국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높였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김 회장은 그러나 다시 불운과 맞닥뜨려야 했다. 2001년 미국 9·11 테러가 발생하며 세계 IT 거품이 빠지고 국내 ‘닷컴 열풍’이 시들해졌다. 반도체 30년 역사상 최대의 불황은 동부를 난항에 빠뜨렸다. 수요가 줄면서 반도체 매출은 바닥을 쳤다.
 
◆위기…수요 급락에 유동성 악화 난항’

안팎에서 위기가 닥쳐왔지만 동부는 ‘반도체 공략’을 늦추지 않았다. 김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 생산능력과 공정기술을 조기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2002년 아남반도체를 인수했고, 2004년 동부전자와 아남반도체를 합병해 동부아남반도체를 출범시켰다. 2005년엔 사명을 동부일렉트로닉스로 바꿨다.

반도체를 살리기 위한 내부 수혈도 단행했다. 우량 계열사인 동부한농을 일렉트로닉스에 2007년 합병시켜 동부하이텍으로 다시 태어났다. 외풍에 내성을 키우며 적자를 줄여갈 즈음 이번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앞을 가로막았다. 사업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자마자 닥친 위기로 동부하이텍은 생존을 위한 초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가야 했다.

동부의 반도체사업은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인수합병을 거치는 동안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2004년 1000억원, 2005년 2130억원, 2006년 19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금융위기로 재무구조가 악화돼 차입금은 2조4000억원에 달했다.  


◆진통…자구책-기술력 확보 동시 추진

김 회장은 재무구조개선 작업을 주도했다. 2009년 채권단과의 동부메탈 지분 매각 협상은 쉽지 않았다. 김 회장은 사재 3500억원을 출연해 동부메탈 주식 50%를 인수해 우려를 씻었다. 동부하이텍도 보유하던 관계사 지분과 부동산 매각 등을 통해 9100억원을 마련함으로써 자구이행 약정을 완료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10년에는 자회사인 동부한농 지분 5000만주(78.32%, 3525억원)를 관계사와 재무적 투자회사에 매각했으며, 동부메탈 지분 300만주(10%)도 981억원에 포스코에 넘겼다. 이로써 차입금은 지난해 7000억원 규모로 줄었다.

김 회장은 이런 와중에 차별화된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동시에 취했다. 아날로그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특화 파운드리분야로 2007년부터 사업방향을 정해 인재 영입에 주력했다. 김 회장의 특명에 따라 미국의 고급 반도체 공정 기술진이 동부하이텍에 속속 합류했다.
 
◆결실…시스템반도체 성장성 과시

진통 속에 추진된 투자의 결실은 작년부터 나타났다. 동부하이텍은 지난해 특화 파운드리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올해엔 비메모리반도체사업 10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국내 업계의 시장 진입이 쉽지 않은 시스템반도체분야에서 흑자를 달성했다는 것은 한국기업의 발전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실적 개선에 힘입어 지난 4월에는 LED업체인 화우테크 지분 인수에 참여하기도 했다. 적자에 허덕이던 기업이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회사로 변모를 일신한 것이다.

동부하이텍은 ▲고전압·저전력 아날로그반도체 ▲산업용 센서 ▲복합신호소자 반도체를 ‘3대 기술분야’로 선정하고 개발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복잡 다양한 기능의 모바일 컴퓨팅 기기들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스마트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다.

동부 관계자는 “이번 턴어라운드를 계기로 메모리 위주의 국내 반도체산업에서 비메모리시장의 성장을 선도하는 대표기업으로 주목을 받게 됐다”고 자평했다.

 
<용어설명>

◆시스템반도체=다양한 기능을 집약한 시스템을 하나의 칩으로 만든 반도체.
◆웨이퍼=반도체의 재료가 되는 얇은 원판.
◆파운드리=다른 업체가 설계한 반도체를 생산, 공급해 주는 사업.
◆팹리스=반도체 제조공정 중 하드웨어 소자의 설계와 판매만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
◆특화 파운드리=일반 디지털반도체를 제외한 아날로그, CMOS 이미지 센서 등 특화 분야의 반도체 위탁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