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내 13개 점포의 임차인인 이들은 건물주가 지난해 12월말 “재건축을 하겠다”며 올 6월30일까지 매장을 비우라고 통보, 수십년간 일해온 일터를 잃게 됐다며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5월25일부터 임대인이 거주하고 있는 노량진 저택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등포역사 앞 삼거리 도로변에 위치한 영중로6상가는 건축된 지 75년된 3층짜리 건물로 총 13개 점포가 입점해 있다. 종업원수는 40여명. 상인들의 말로는 생계가 걸려있는 가족까지 합할 경우 80여명이 이번 건물주의 명도요구로 거리에 나앉게 됐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현행법상 계약기간이 끝난 상인들을 상대로 한 건물주의 명도요청은 불법이 아니다. 영중로6상가만 하더라도 13개 점포 모두 오는 6월30일이 계약만기일이다.
◆ 상인들 “임대료 높이기 위해 재건축”
상인들도 건물주의 합법적인 재산권 행사라는 점에서 이 부분은 크게 문제삼지 않고 있는 상황. 다만 수십년간 일해온 매장을 정리해야한다는 충격, 그리고 권리금으로 지불한 전 재산에 가까운 수억여원의 돈을 하루아침에 날리게 됐다는 점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40년째 영중로6상가에서 일했다는 홍기원(가명·66) 씨는 “70년대 초 이 상가에 들어온 이후 당구장, 호프 체인점, 노래방으로 업종을 변경하면서 40년간 임대료 한번 안밀리고 꼬박꼬박 내며 살았다. 그런데 매달 얼굴보며 월세를 받기도 했던 상가주인이 한마디 언지도 없이 나가라고 하니 앞이 깜깜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지난해 7월 계약해 닭발가게를 운영 중인 이호(가명·40) 씨도 “10년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처음 장사를 이곳에서 시작해 이제 막 단골까지 생기고 있는데 입주 후 6개월 만에 나가라고 하니 황당하다”며 “입주 당시 권리금 5000만원에다 인테리어 비용 5000만원 등 총 1억원이 들어갔는데 그 돈을 이제 하나도 못받게 생겼다”고 허탈해했다.
상인들에 따르면 건물주는 영등포의 내로라하는 재산가로 현재 일본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으며 빈번히 입출국을 하며 노량진, 영등포, 신정동, 지방 등지에서 부동산업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 노량진 저택은 건물주 소유의 개인 주택 외에 종교재단법인, 관리사무소, 부동산임대업 사무실 등을 갖추고 있다.
명도요청 이후 임차인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건물주는 해외로 출국했으며 변호인을 내세워 간헐적으로 상인들의 요구사항을 듣고 있는 정도라는 게 상인들의 전언.
상인연합체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총괄하는 문혁 위원장은 “임차인들이 지급한 권리금의 합계가 20여억원에 이르는 데도 수천억원의 자산가인 건물주는 단순히 재산증식 수단으로 상가를 재건축하려 한다”며 “현 임차인들에게 재입주의 기회나 명도에 따른 보상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 변호사를 통해 100만~150만원 정도의 이사비용만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건물주 측 “해외 출장 중, 답변할 내용 없다”
상인들은 무엇보다 건물주의 일방적인 명도요청이 단순히 임대료 수입을 높이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다는 점을 문제삼는다.
당초 건물주는 지난해 말(12월30일)과 올 봄(3월14일), 두차례에 걸쳐 명도요청과 관련한 내용증명을 상인들에 보냈는데 처음 내용증명상에서는 “서울시에서 재건축을 추진해서 강제수용당한 입장이다”는 재건축 명분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상인들이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요구하자 “다른 건물에 비해 임대료가 너무 적게 나온다”며 그제서야 재건축 의도를 솔직히 털어놨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물주가 대표로 있는 부동산임대업 사무소 관계자는 이와 관련, “현재 (건물주는) 해외에 출장 가 계신다. (건물주의)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어떤 말도 해줄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취재당일인 6월1일 저녁, 건물주 대리인인 변호사와 상인들간 협상이 한차례 열렸으나 건물주는 “재건축 이후 상인들의 재입주 요구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잠실 롯데월드쇼핑몰 축소판?
이번 영중로6상가 상인들의 시위는 올초 잠실 롯데쇼핑몰 상인들이 롯데그룹의 일방적 계약해지에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며 집단 시위에 나선 것과 묘하게 닮았다. 롯데쇼핑몰은 잠실역 롯데백화점과 롯데월드 사이에 위치해 240여개의 점포(지하 1층, 지상 2층)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1월 이 쇼핑몰 상인 200여명은 롯데그룹 측으로부터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당했다며 명도소송에 반발해 ‘임차상인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며 단체행동에 나선 바 있다.
당시 상인들은 “IMF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만 해도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상권이 회복되니 영업을 계속해달라고 하더니, 이제 상권이 활성화되니까 갑자기 임대차계약을 해지하고 나가라는 것은 상도의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현재 롯데월드쇼핑몰 시위건은 지상 2개층 점포를 대상으로 한 사측과 상인들의 대립은 ‘소송 중 조정’으로 해결됐지만 지하 1층은 여전히 갈등구도가 유지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해체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지난해 8월 중소상인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올 3월과 4월 국회 본회의에 법안이 상정됐으나 통과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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