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소리는 고요를 깨며 이어졌지만, 직원들의 시선은 나에게 오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신경줄들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 말이 끝나자 한 간부직원이 말했다. "우리 의견을 묻고 계시지만 이미 결론을 내고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요?"
 
물론, 난 아니라고 답했다. 하지만 동료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그는 내가 파악하지 못한 내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나조차 확신 없이 내린 나의 결론을 동료들을 통해 검증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 나는 하반기 상품기획회의 자리에서 '이로운 브랜드 식품의 기준으로 친환경을 고수할 것인가'를 논제로 던졌다. 이와 함께 '우리 직원, 우리 생산자가 살 수 없는 비싼 제품은 만들고 싶지 않다'고 선언해버렸다. '필요하다면 친환경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속뜻이 들어있었다.
 
애초에 브랜드 상품 논의를 시작했을 땐 '친환경'을 첫 번째 기준으로, '무첨가' 즉 화학첨가물 배제와 'Non-GMO' 즉 유전자변형식품 배제를 그 다음 기준으로 삼았더랬다. 이건 이로운몰에 우선 입점하는 식품의 기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기준으로 자체 상품을 기획했더니 상품 가격이 높아졌다. 무첨가, Non-GMO까지는 괜찮았다. 가격에 영향을 덜 주는 해법을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브랜드 정체성의 핵심, 즉 '친환경'이었다. 친환경 원료 가격은 일반 원료보다 비싸다.
 
게다가 조달도 쉽지 않다. 최근 더 힘들어졌다. 대기업들이 속속 친환경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데다 일부 지역에서 친환경 학교급식이 늘어나면서 수요가 급증한 탓이다.
 
반면 친환경 농축산물의 공급은 단기간에 늘지 않는다. 화학비료에 길든 토질을 바꿔주고, 농장 시설을 다듬어야 한다. 긴 투자를 마친 생산자들이 더 큰 시장과 더 긴 미래를 약속해주는 대형업체와 거래하길 원하는 건 당연하다. 이미 '친환경 원료'는 희소성 강한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논란 끝에 회의는 '건강'과 '정직'이라는 큰 원칙에만 합의한 채 끝났다. 친환경 원료를 지향하되 가격이 서민 구매력을 넘어서는 정도면 국내산 원료를 쓰자는 결론이었다. 대신 원산지 등 원료 정보와 선택 배경을 정직하고 자세하게 밝히기로 했다.
 
결론은 힘겹게 끌어냈지만 여전히 확신은 생기지 않았다. '과연 소비자가 우리의 진정성을 알아봐줄 것인가?' 희망의 작은 씨앗은 우연히 낯모르는 소비자가 쓴 한 수기에서 날아왔다. 윤리적 소비 공모전 블로그(ethiconsumer.org)에 소개된 2009년 수상작이었다.
 
"YWCA의 대학생 회원들은 항상 배가 고플 때마다 이곳에서 허기를 달랜다. 가장 빈곤할 시기인 대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충분히 생각해주면서도, 굶주릴 때마다 생각나는 중독적인 맛을 가진 곳이 흔한가. 거기에다 몸에도 좋으니 금상첨화다.(서정희)"
 
'이곳'이란 청주의 올리(ALL利)다. 올리는 콩비지 패티로 2300원짜리 햄버거를 만든다. 무농약 우리밀과 친환경 지역농산물이 주재료다. 재료 확보가 여의치 않을 땐 국산으로 만들어 판다.


 
친환경 원료만 고집하지 않았는데도 올리버거는 동네에서 '친환경 버거'라고 불린다. 한달에 1만개가 나간다. 가격이 싸니 동네 누구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올리 직원과 가족이 먹을 수 있는 가격대다. 올리는 취약계층을 주로 고용하는 사회적기업이다.
 
맞다! 직원, 생산자도 기업의 환경이다. 국내외의 친환경 소비 운동도 본래 농촌, 지역의 생산자를 살리는 데에서 출발했다. 잘 먹고 잘 살 기회를 직원, 사회와 나누는 것이 우리와 같은 사회적기업엔 첫번째 '친환경'일 것이다.  친환경 포기할 필요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