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인리스 마케팅실 내 스테인리스 열연판매그룹을 총괄하게 된 양 그룹리더는 지난 7일부터 3개팀(열연수출팀, 열연내수팀, 후판판매팀), 19명의 직원들을 통솔하고 있다. 일주일간 근무한 소감은 어떨까.
“쉽지 않네요. (웃음) 그동안 세계적인 기업을 대상으로 한 수출업무만 해왔었는데 이제 그 업무에다 국내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대고객업무까지 수행해야 되니 일이 만만치 않아요.”
작년 말 기준, 포스코 전체 직원은 1만6390명. 이중 여성은 3.5%인 568명이다. 500여명이 넘는 여직원들 중 준임원급에 처음 올랐다는 것도 놀랍지만, 지금까지 포스코 역사상 외부에서 영입한 상무(1명)를 제외하면 내부 승진자로는 양 그룹리더가 여성 중 최고위직에 오른 사례가 됐다. 포스코 사상 첫 여성 관리직 간부인 셈이다.
사진/류승희 기자
중2 때 중국어 입문…대만 경찰대 강단에도
그렇다면 포스코는 그의 어떤 점을 높이 평가해 ‘금녀의 벽’을 넘게 했을까. 포스코측은 이번 인사에 특별한 배경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그가 수행해온 업무를 거슬러보면 대중국 수출업무에 기여한 공로가 크게 인정된 점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2005년 포스코 대표로 ‘무역의 날’ 수출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은 저력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 그는 포스코 내에서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통한다. 포스코에 입사하기 전의 이력도 온통 ‘중국’과 관련된 것들뿐이다.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난 양 리더는 한국인임에도 ‘중국의 미래를 내다보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일반 학교가 아닌 서울 한성화교중고교를 다녔다. 처음 화교학교로 왔을 당시가 중학교 2학년. 6개월 동안 중국어를 입밖에 내지 못한 ‘벙어리’ 신세였지만 매일 2시간만 잠자며 중국어를 마스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다졌다.
“남들보다 등교시간도 1시간 빨랐고 어린 나이에 블랙커피를 마시며 새벽까지 공부를 했던 ‘독종 학생’이었죠. 입학 후 6개월간 중국어 소통조차 힘들었던 저였는데 그렇게 독하게 공부하고 나니 1년 뒤에는 전교(전체 학생수는 480명)에서 1등을 하고 있더라고요.”
시작은 아버지의 권유였지만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도 그는 계속 중국과의 인연을 놓지 않았다. 연세대 중어중문과, 서울대 대학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고 이후 대만으로 진출해 우리나라의 경찰대학에 해당하는 대만 중앙경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했다.
그러다 결혼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 온 그는 서울 선릉역 인근에 사무실을 내고 중국어 번역과 통역을 담당하는 회사를 설립해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3년, 우연히 포스코의 경력직원 모집공고를 보고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을 결심했다. 당시 여자로서 보수적이고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포항제철(현 포스코)에 입사하겠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임은 당연지사.
“주변에서도 다들 말렸죠. 운영하던 통역회사도 수입이 괜찮았는데 굳이 남자들이 많고 보수적인 기업에 들어가서 고생할 이유가 있냐면서요. 하지만 해외지역 전문가를 모집한다는 말에 중국어 하나만 믿고 원서를 냈습니다.”
'여성 1호'는 트레이드 마크…2005년 수출유공 대통령 표창
중국어 외에는 별다른 업무상 스킬이 없었다는 그는 지금도 자신이 합격한 이유를 잘모르겠다고 웃는다. 면접 당시 “당신, 중국어를 그렇게 잘해요?”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중국어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합니다”라고 답변했던 것이 아무래도 오늘의 자신을 만든 배경이 아닐까 짐작한다나.
우여곡절 끝에 1993년 10월 포스코에 입사한 그는 이후 지금까지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 다녔다. STS사업본부 수출팀, 마케팅본부 열연수출팀, 해외투자사업실 중국사업팀, 스테인리스판매실 STS열연수출팀 등으로 보직은 변경됐지만 그 때마다 ‘여성 1호 총괄직’ ‘여성 1호 팀리더’ ‘여성 1호 부장’ 등의 평가가 같이 따랐던 것.
보통 사람이라면 그같은 호칭에 부담도 있었겠지만 양 리더는 지난 18년 동안 ‘포스코의 대표 여성직원’답게 각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로 여성직원들의 귀감을 샀다.
열연수출이 어려웠을 당시 여성 팀장을 맡아 해외 곳곳에 계약성과를 만들어 냈고, 중국 투자사업부 업무를 했을 때에도 수차례 ‘미끄러지던’ 계약을 끝내 성사로 역전시킨 사례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중국 광동성의 한 회사가 일본회사와 계약하기로 구두합의한 것을 4박5일간 끈질기게 담당자를 설득시켜 포스코와 계약하게 한 사례도 대표적이다.
여성으로서 철강관련 업무를 수행하기란 생각처럼 쉽지않다. 더욱이 전공도 철강과 무관한 중국어라면 더 그렇다. 하지만 양 리더는 ‘철강은 요리’라는 지론을 내세우며 한 순간도 즐겁게 일해오지 않은 적이 없다고 자랑한다.
“철강은 재밌어요. 요리하는 느낌이랄까? 철광석에 뭐 넣고 뭐 넣고 이같은 생산공정을 거치면 하나의 철강상품이 만들어지죠. 모든 제조공정도 요리하는 작업으로 생각하면 쉬워요.”
도전을 좋아해서 중국어를 공부했고, 모험을 즐겨 포스코에 입사한 양 리더. 그는 이제 ‘일본’이라는 지역과 '일본어'라는 언어영역에 또 한번의 도전과 모험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더라고요. 일본쪽 수출업무를 하면서 느낀 것인데 일본사람들은 원칙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기도 하고요. 제가 보수적이고 남성적 이미지가 강했던 포스코에 와서 즐겁게 일하는 것처럼, 쉽진 않겠지만 일본시장에 포스코의 제품을 납품하고 싶은 강한 욕망을 느낍니다. 꼭 일본시장을 뚫고 싶어요.”
기회가 되면 임원, 좀 더 목표점을 높이면 해외투자사의 법인장이 되고 싶다는 ‘포스코 여성 1호 전문’ 양호영 그룹리더. 그의 2011년 행보가 향후 또 하나의 ‘여성 1호 닉네임’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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