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사의 주인공은 ‘本’자를 돌려쓰는 이른바 ‘구본X’ 3인방. 두 명은 주가조작 혐의로 기소돼 몇 년째 숨을 죽이고 있고, 한 명은 코스닥시장에서 선전하며 가문의 ‘3세 불명예’를 외롭게 씻어내리고 있다.
구본호(36) 씨와 구본현(43) 씨는 한때 코스닥시장에서 ‘신의 손’으로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했다. 손을 대는 주식마다 테마주로 떠올라 대박을 냈다. 재벌가의 일원이라는 후광에 개미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탁론’ 등의 기법으로 동원한 자금으로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구속돼 곤욕을 치렀다.
이와 달리 구본천(47) L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자신이 대주주로 참여한 LB세미콘의 상장으로 185억원 대박을 터뜨리는 등 가문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최근엔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외이사 자격으로 스톡옵션을 행사해 자사주 1200주를 6240만원에 취득,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
◆코스닥 신화의 추악한 이면-구본호
2008년 증권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은 LG그룹의 ‘방계 3세’ 구본호 씨다. LG가의 일원이란 점에서 그의 주가조작 사건은 세간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LG 창업주인 고 구정회 씨의 손자로 아버지는 구정회 씨의 3남인 고 구자헌 씨다. 따라서 구본무 회장과는 6촌사이다.
미국 시민권자인 본호 씨는 상당한 금융지식을 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시장에선 일찌감치 그의 주가조작 의혹에 주목했다. 선친이 설립한 범한판토스 대주주로 올라선 과정부터가 석연찮다는 지적을 받았다. 범한판토스는 100% 자회사인 레드캡투어(옛 범한여행)를 통해 2006년 11월 미디어솔루션을 흡수 합병했다. 본호 씨는 한달 앞서 미디어솔루션 주식 309억원어치를 주당 7000원에 인수해 지분율 21.36%로 범한판토스(32.57%)에 이어 2대주주가 됐다. 합병 이후 미디어솔루션의 주식은 4만원대로 치솟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본호 씨는 범한판토스 보유지분을 어머니 조금숙 씨(53.86%) 다음으로 많은 46.14%까지 확보했다.
본호 씨는 대우그룹 구명로비 의혹으로 구속됐던 조풍언 씨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미디어솔루션 인수합병 과정에서 조씨 돈과 글로리초이스차이나 자금을 자기 것으로 속여 허위공시를 내는 수법으로 주가를 조작해 165억원 상당의 이익을 취한 혐의를 받았다. 최근 2심에서 징역 2년6월 및 벌금 86억원을 선고 받았다.
물류회사인 범한판토스는 LG그룹의 물량에 힘입어 급격히 성장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매출 1조4575억원, 순이익 736억원을 달성했는데, LG전자 등 LG 계열사들의 해외 아웃소싱 물류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어 재벌기업의 친인척 관계사 밀어주기 논란이 일고 있다. 국세청이 지난 4월 범한판토스를 상대로 특별세무조사에 들어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범한판토스의 배당 성향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본호 씨와 어머니 조씨는 지난해 최대주주 현금배당으로 242억5000만원을 챙겼다. 2007년과 2008년엔 배당금이 각각 184억원과 150억원으로 범한판토스의 배당성향이 100.6%(184억원)과 135.1%(150억원)에 달해 오너일가 재산 증식을 위해 고액 현금배당을 남발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채 동원 ‘스탁론’ 조작-구본현
자택을 강제 집행당하게 된 구본현 씨도 LG가의 명예에 흠집을 낸 인물이다. 주가를 조작하고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사법처리가 임박했다. 검찰은 본현 씨를 주가조작으로 100억여원의 차익을 얻고 회사자금 550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할 방침이다.
본현 씨는 LG가 3세로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인 구자극 씨 아들이다. IT 부품업체인 엑사이엔씨 대표를 맡았던 그는 2007년 신소재 개발업체와 합병을 발표하며 추정 매출액을 거짓으로 꾸미고 주가를 조작해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검찰이 파악한 본현 씨의 주가조작엔 사채업자가 동원됐다. 이른바 '스탁론'이란 기법이다. 그가 사채업자에 자금을 넘기면 사채업자는 이를 저축은행에서 맡기고 돈을 빌려 차명계좌로 주가를 조작하는 방식이다. 사채업자는 중간에서 마진을 챙기고 저축은행은 이자비용을 받아내는 안전장치를 갖추고 주식을 주무르다 덜미가 잡혔다.
본현 씨도 국내 코스닥 상당사의 지분을 많이 확보해 6촌동생 구본호 씨와 함께 '미다스의 손'으로 군림했다. 본현 씨는 2007년 PW제네틱스와 웰스브릿지 코스닥기업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2008년엔 메디프론디비티 지분을 인수했다. 당시 이들 종목은 LG가 3세의 후광으로 급등세를 탔다.
본현 씨는 지난해 2월 엑사이엔씨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 1월엔 보유하고 있던 엑사이엔씨 지분 18.25%도 전량 처분했다. 부친인 구자극 엑사이엔씨 회장도 지난 6일 대표이사직을 사임해 정영우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맡아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모범적 창투사 대표-구본천
코스닥시장에서 회자되는 LG가 3세는 또 있다. 동생들이 물을 흐려놓은 자리에 연꽃처럼 오롯이 분투하는 구본천 LB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주인공. 자신이 최대 지분을 보유한 LB세미콘이 연초에 코스닥에 입성했고, 지난 1일엔 다음커뮤니케이션 주식 1200주를 매입해 화제의 중심에 섰다.
본천 씨는 구인회 LG 창업주의 4남인 구자두 씨의 장남이다. 아버지를 이어 LB인베스트먼트 대표를 맡고 있다. 본호 씨와는 사촌, 본현 씨와는 6촌지간이다. 창투사 대표로 왕성한 활동과 성과를 보여 검찰 문턱을 들락거린 본호·본현 씨와 대비된다.
본천 씨는 미국 코넬대 경제학 석·박사를 마치고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매킨지 컨설턴트를 거쳐 LB인베스트먼트(옛 LG벤처투자)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300억원대 적자 상태였던 회사는 2003년 그가 사장에 오른지 1년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2000년 설립 이후 부실했던 LB세미콘도 본천 씨가 최대 지분을 인수한 뒤론 성장을 거듭했다. 지난 1월엔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는 쾌거를 이뤘다. LB세미콘은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는 반도체 범핑 및 패키징 전문업체다. 다이오드, 트랜지스터, 유사반도체소자 등을 제조하고 있다.
주가흐름은 아직 양호하진 못하다. 공모가 4700원보다 낮은 시초가 4650원으로 신고식을 치른 이후 최근 3100원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LB세미콘의 이익률이 업계에서 가장 높고 LG디스플레이 점유율도 75% 이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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