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10주기를 맞아 설립을 공표한 아산나눔재단은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의 주도로 그가 현금 300억원, 주식 1700억원 어치를 포함해 총 2000억원을, 현대중공업 계열이 2380억원을 출연했다.
여기에 KCC가 150억원, 현대해상화재보험 100억원, 현대백화점 50억원, 현대산업개발 50억원, 현대종합금속 30억원 등 380억원이 추가 출연됐다. 창업자 가족 중에서는 정상영 KCC 명예회장,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정몽석 현대종합금속 회장, 정몽진 KCC 회장, 정몽익 KCC 사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등이 총 240억원을 내놨다.
재벌가 오너 형제들이 십시일반으로 5000억원 규모의 복지재단을 만들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반재벌 정서가 만연한 상황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 재계의 시선을 이 재단에 쏠리게 하고 있다.
아산나눔재단을 둘러싼 재계의 세 가지 시선을 살펴본다.
◆시선 하나-정몽구 현정은 왜 빠졌나?
11개 범 현대 계열사들과 9명의 총수 일가가 참여한 아산나눔재단에 유독 장자인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과 적통을 자임하고 있는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이 빠진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정진홍 재단 설립 준비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은 16일 기자회견 당시 “현대그룹은 처음에 (설립을) 논의하는 자리에 있었지만 참여할 형편이 못된 것 같다. 또 현대·기아차그룹은 그동안 해오던 것(해비치 사회공헌문화재단 등)이 있고 해서 그쪽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었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이미 2007년 11월에 정몽구 회장이 1500억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 해비치 사회공헌문화재단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별도의 사회복지재단 출연에 대한 필요성을 못느꼈다는 게 현대차그룹 측의 입장.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당분간은 해비치 재단을 내실있게 운영하는데만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차그룹보다 현대그룹이 누락된 것에 대한 시장의 반향은 더 심각하다. 특히 현대그룹을 둘러싸고 아산나눔재단 설립 사실을 사전에 알았으면서도 현대그룹이 일부러 참여하지 않았다는 인상이 풍기고 있어 ‘후폭풍’이 상당하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정은 회장이나 현대그룹에 재단측의 설립 참여와 관련한 어떠한 제의나 요청을 받지 않았다“면서 ”재단 설립을 논의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도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일각에서는 현대그룹이 재단 설립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놓고 현대중공업과 현대그룹의 원만치 않은 관계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난 3월 현대상선이 주주총회에서 경영권과 관련 있는 우선주 발행한도를 2000만주에서 8000만주로 확대하는 정관변경을 시도했지만 현대중공업 등의 반대로 무산된 일이나, 현대그룹이 최근 초대형 컨테이너선 5척을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하면서 현대중공업에 불편한 심기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 이번 재단설립에도 어느 정도 연관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시선 둘-‘통큰’ 재단…노블레스 오블리주?
정몽구 회장과 현정은 회장이 불참해 ‘반쪽짜리’ 재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나 아산나눔재단은 오너들이 자발적으로 설립에 나섰고, 기업 출연금이 아닌 사주들의 개인재산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국내 최대의 불교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은 16일 “이제 기업의 사회공헌과 사회적 기여는 당연한 의무”라며 “열심히 일하고 땀 흘려 사회에 공헌해 창출된 이익을 함께 나누는 것은 우리 사회를 더욱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아산나눔재단을 환영하는 논평을 냈다.
현대 창업자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그의 후손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재벌의 사회공헌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얘기도 아산재단을 둘러싼 호평이다.
아산나눔재단은 규모 면에서 지난 2007년 8000억원을 들여 설립한 이건희장학재단(現 삼성꿈재단장학재단)에 육박하는 출연금을 확보했다. 향후 재원을 꾸준히 확대해 나간다는 게 재단측의 계획.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범 현대가의 자발적인 사회복지재단 출연이 다른 재벌 기업들의 사회공헌 참여를 늘리는 데 최소한의 동기부여는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시선 셋-정몽준의 대권행보?
정몽준 의원이 아산나눔재단 설립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그의 대권행보를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시각도 재단설립을 둘러싼 이슈 중 하나다.
범 현대가가 참여했다고 해도 아산나눔재단은 정몽준 의원과 현대중공업의 출연금만 총 4380억원으로 전체의 87.6%에 육박한다. 정 의원은 재단설립 이후에도 다음달인 9월 6일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갖기로 하는 등 최근 대권을 겨냥한 다방면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 의원의 한 측근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 의원이 대권 도전을 공식화할 경우 여론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인 자신의 자산 사용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이번 출연도 그러한 고민의 일단을 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현재 아산나눔재단 측도 “재단 운영에 정 의원은 관여하지 않을 방침”이라며 “어떤 목적이나 의도가 없다”고 일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현대가에서 이슈의 중심에 선 정몽구 회장과 현정은 회장이 참여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몽준 의원의 존재감이 두드러진 만큼 이번 재단설립으로 정 의원이 대권주자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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