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 출신 두 CEO의 최근 행보에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쌍수 전 LG전자 부회장과 김중겸 전 현대건설 사장. 입사 이후 30여년을 한 곳에서 줄곳 근무한 정통 ‘LG맨’과 ‘현대맨’이다. 국내 대표적 기업에서 CEO까지 훌륭히 수행해 ‘샐러리맨 신화’를 이룬 입지전적 인물들이다.

이들 민간기업 출신 두 CEO가 바통을 주고받게 됐다. 한국전력공사 전·후임 사장 자리를 두고서다. 김쌍수 전 한전 사장은 지난 8월29일 이임식에서 눈물을 훔쳤고, 그 자리를 이어받을 김중겸 전 현대건설 사장은 숨죽이며 임명장을 기다리고 있다.


한명은 한전에서 ‘고난의 3년’을 보냈고, 다른 한명은 ‘남겨진 과제’를 떠안은 셈이다. 두 김 사장에게 공기업 한전의 의미는 무엇일까.
 
◆Out 김쌍수…‘혁신 전도사’의 암울한 고별사, 의미는?
 
김쌍수(66) 한전 사장이, 떠나는 날 결국 눈물을 보였다. 이임식에서 그가 읽어 내려간 고별사는 암울한 한전의 현실을 반영하는 듯했다. 민간기업 CEO 출신으로 ‘혁신 전도사’로서 한전에 입성해 기대를 모았던 3년 전엔 상상도 못했을 모습이다.


이임사에서 밝힌 대로 그는 ‘글로벌 톱5’ 비전 달성을 위한 꿈과 열정을 남겨둔 채 한전을 떠났다. 후임 사장이 선임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관행을 깨고 퇴임한 그의 뒷모습에는 그간 겪었던 ‘CEO의 고뇌’가 비쳤다. 대규모 비리사건이 터지고 소액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한 최근의 상황은 그의 ‘용퇴 심경’을 더욱 복받치게 했을 법하다.
김 전 사장은 한전 최초의 민간기업 CEO 출신 사장이다. 1969년 LG전자에 입사해 대표이사까지 역임한 샐러리맨 성공신화의 표상이었다. 오랜 세월 ‘공장밥’을 먹으면서 생산성을 끌어올리는데 주력했다. LG에서 김쌍수는 혁신의 아이디어로 한계를 돌파한 경영자로 통한다.

정치색이 강했던 한전의 수장 자리에 그가 임명되자 공기업 혁신의 새바람이 한전에서 불어올 것이라는 기대치가 높았다. 정부가 그를 공기업의 구원투수로 부른 것도 같은 이유였다. 혁신 경영자답게 김 전 사장은 한전의 변화를 꾀했다. TDR(Tear-Down & Redesign)이라는 새로운 경영혁신 기법을 한전에 주문했고, 3년간 4조5000억원의 원가를 절감하는 성과를 냈다. UAE(아랍에미리트연합) 원전 수출까지 지휘하면서 정부의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3년 연속 1위를 차지하는데 기여했다.


재임기간 자신이 좋아하는 골프도 금지할 정도로 임직원들에게 청탁 배제를 강조했다. ‘깨진 유리창이 없도록 하자’고 마지막까지 당부한 것도 부끄러운 공기업 부정부패를 일소해야 한다는 소신의 연장이다.

하지만 김 전 사장은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정부의 통제 아래 움직이는 한전은 혁신을 끌어안지 못했다. 내부 반발도 적지 않았다. 직원평가제와 조직개편 방침에 직원들이 반기를 들었고, 발전자회사들의 재통합도 정부의 전력산업 구조개변 방안 때문에 무산돼 김 전 사장의 혁진동력을 반감시켰다. 지난해 말에는 여러 악재에 사퇴설이 나돌자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엄단하겠다’는 공문을 한전 경영진이 사내에 보낸 사실이 알려져 김 전 사장의 입지는 더욱 위축됐다. 지난 8월엔 한전 직원들이 공사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하도급업체로부터 수억원을 받은 사실이 무더기로 적발되기도 했다.

김 전 사장의 혁신 드라이브는 전기요금 현실화 문제에서 결국 그 깃발을 내렸다. 경영 합리화와 수익성 개선을 위해 한전으로선 반드시 필요한 조치지만 정부와의 갈등으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김 전 사장은 퇴인 직전 “이대로 가면 한전은 영원히 적자를 면치 못한다”며 작정하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한전도 상장된 회사인 만큼 공기업이라고 해서 적자를 내도 괜찮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혁신 CEO’ 김쌍수의 경고였다.
 
◆In 김중겸…최악 위기에 몸푸는 구원투수, 뜰까?
 
한전은 지금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원가 이하로 전기를 공급하는 구조가 가장 큰 문제다. 지난 8월 전기요금을 4.9% 인상했지만 원가보상률은 90.3%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한전은 올 상반기 1조636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예상되는 순손실만 2조원이 넘는다. 정부는 물가인상 심리를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로 추가인상에 소극적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4년 연속 적자를 면치 못할 처지다. 올해 부채비율이 150%까지 차게 되면 한전의 신용등급도 하락할 수 있다.

전기를 팔면 팔수록 적자가 누적되는 요금구조는 이미 소액주주들의 소송을 불러왔다. 14명의 주주들이 2조800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자 김 전 사장은 “패소하면 (내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할 수밖에 없다”고 반기를 들기까지 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식물 사장’ 한전 경영자의 한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또 한명의 ‘민간 출신 구원투수’가 한전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다. 1976년부터 현대건설에 근무하며 대표이사까지 오른 ‘적통 현대맨’ 김중겸(61) 전 현대건설 사장이 그 주인공. 최근 한전 사장에 내정돼 오는 16일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선출될 예정이다.
실패한 민간 CEO가 떠난 자리, 제대로 소임을 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김 내정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부가 의사결정권을 제대로 부여하지 않으면 김쌍수 전 사장처럼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민간의 탁월한 혁신 마인드가 정부 방침에 막힌다면 실행을 해보지도 못하고 기가 꺾일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김 내정자는 하마평 시점부터 잡음이 적지 않았다. 정부는 한때 한전 후임사장에 김 전 사장을 낙점하고도 장고를 했다. 김 내정자는 지난 7월 한전사장 공모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한전의 UAE 원전수출에 현대건설 사장으로서 주간사로 참여한 인연도 있다. 하지만 8월24일 예정됐던 임시주총이 무기한 연기돼, 김 전 사장의 공기업 입성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돌았다. 

김 전 사장은 대표적인 TK(대구·경북)인사로 분류된다.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고려대와 현대건설 출신이란 점 역시 ‘보은 인사’ ‘낙하산 인사’ 논란을 재연할 소지를 안고 있다. 현대건설을 업계 1위로 굳히는데 힘쓴 공도 있지만 호화 집무실, 비용 과다지출 등의 잡음이 있었던 점도 검증과정에서 문제로 지적됐다는 후문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최적의 한전 후임사장으로 최근 낙점된 만큼 김 전 사장은 다가오는 주총에서 무난히 선임될 것으로 보인다. 적자의 늪과 공기업 구태를 일신하는데 민간출신 신임사장과 정부의 ‘혁신 조율’이 새롭게 이뤄질지 기대감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