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선수 다 고교 시절부터 뛰어난 기량을 보여 장효조는 대학 2학년 때, 최동원은 1년 뒤 연세대를 입학하자마자 대표 선수로 뽑혔습니다. 그래서 1977년 11월 중미 니카라과에서 열린 슈퍼월드컵대회에 출전했는데 저도 취재기자로 함께 가 내전과 지진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고생을 한 기억이 납니다.
장효조는 국내대회에서 최고의 성적을 보였지만 국제대회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 ‘국내용’이라는 말을 들었고 최동원은 대표팀 중에서 김시진과 더불어 가장 어린 나이였지만 지나치게 담대한 투구를 하다가 큰 것 한방을 허용한다고 해서 자주 출장을 못했습니다.
김응룡 감독이 지휘한 한국대표팀은 초반엔 그다지 성적이 좋지 않아 결선 진출이 어려웠습니다. 최동원은 일본전에서 선발로 등판했다가 2회초 히노에게 솔로홈런 한방을 맞고 1-0으로 졌습니다. 칠 테면 쳐 봐라는 식에 정면 도전 투구를 하다가 맞은 것입니다.
하지만 최동원은 주요 고비였던 콜롬비아전에 출장해 유일한 안타인 솔로홈런을 허용했을 뿐 완벽한 역투를 펼치며 한국의 4-1 승리를 이끌었죠. 장효조는 대타로 나가 쐐기를 박는 솔로홈런을 쳐 대접을 받았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최종전에서도 이겨 한국야구 사상 처음으로 국제대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연세대에서 최동원은 아버지 최윤식씨의 투구폼 지도만 따라 하고 태도가 건방지다는 이유로 선배, 박해종 박철순 등으로부터 기합을 받아 야구부를 탈퇴하겠다고 소동을 벌여 중간에서 이재환 연대 감독과 함께 무마하느라고 애를 먹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둘은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도 출전해 우승하는데 기여했습니다. 대회가 끝난 후 장효조는 프로 연고팀 삼성 라이온즈와 입단 계약을 맺으려다 액수가 너무 차이가 난다며 저를 찾아와 하소연하기도 했죠. 소속팀 실업야구 포항제철로 돌아가겠다고 밝혀 제가 삼성 단장과 만나 절충을 한 끝에 겨우 입단을 시킨 추억도 떠오릅니다.
대표팀에서 뛰느라 프로 입단이 늦었던 두 선수는 일단 프로에 들어가자마자 첫해부터 대단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장효조는 83년 첫해 수위타자(타격왕)에 선정됐습니다. 최동원은 83년에 9승을 올리고 84년엔 장명부(삼미 슈퍼스타즈. 83년 30승)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한 시즌 27승을 올렸습니다. 삼성과 대결한 한국시리즈에서는 역사에 길이 남을 혼자 4승을 거두며 롯데를 우승 시켰습니다. 140여년 역사를 가진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도 랜디 존슨(애리조나. 2001년) 등 7명이 세운 3승이 최고기록입니다.
두 선수는 프로에 입단 후 매년 뛰어난 기록을 남겼고 한편으로는 매년 연봉 재계약을 하면서 구단과 번번이 마찰을 빚었습니다. 장효조에 대해 구단 측은 장효조가 큰 경기에서 약하다며 작은 액수의 인상액을 제시했습니다. 87년에 장효조가 정규 시즌 MVP(최우수선수)에 선정됐을 때 인상액이 불과 500만원 이었습니다.
한편 최동원은 아버지 최윤식씨가 대리인으로 나서 매번 연봉 문제로 다투었죠. 그러다 88년 시즌이 끝날 무렵 최윤식씨는 한국야구에도 선수노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롯데 선수들을 중심으로 친목단체인 선수회를 구성할 움직임을 보이고 최동원이 회장으로 나서서 142명의 선수들이 충남 유성호텔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구단측은 반대에 팀 해체를 불사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선수회는 무산됐습니다. 이 여파로 그 해 11월 최동원과 삼성의 김시진이 맞트레이드되고 한달 후에 김용철과 장효조도 맞트레이드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최윤식씨와 자주 만나 대포잔을 나누었죠. 나중에는 아들 장가를 보내달라며 당시 각계 유명여성을 만나게 해달라고 몇 차례 졸라 사양하느라고 진땀을 뺀 기억이 납니다.
‘안타 제조기’ 장효조는 92년에 은퇴하면서 프로 10년 동안 통산 타율이 3할3푼1리로 누구도 따라오기 어려운 대단한 기록을 남기고 타격왕에 4번 올랐습니다. ‘무쇠팔’ 최동원은 90년에 유니폼을 벗으면서 8년간 통산 104승 74패 28세이브, 평균자책점 2.46을 기록했는데 248경기 출장 중 완투가 80게임이나 되는 놀라운 괴력을 발휘했습니다.
두 사람은 은퇴 후 선수 시절 구단과 마찰, 자존심, 스타 의식 때문에 지도자로 프로팀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가 최동원은 2001년 한화 이글스의 이광환 감독 배려로 코치로 복귀하고 장효조는 2000년에 삼성 스카우트에 이어 코치로 복귀했다가 각각 소속팀에서 2군 감독직을 역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각별했던 두 사람이 지난 9월 7일과 14일에 일주일 간격으로 향년 55세와 53세에 한꺼번에 세상을 떠나 10여년 선배인 저는 한층 더 허탈감이 듭니다. 삼가 두 사람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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