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면세점의 해외 명품 브랜드 유치전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명품 입점을 두고 국내 재벌기업들이 법정공방을 벌일 만큼 뜨거운 경쟁이 빚어질 정도다.

이유는 5조원 규모로 국내 명품시장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이비통을 위시한 해외 명품업체들의 국내 성장률은 최근 5년간 매년 30%씩 늘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4대 명품시장으로 부상했다.


국내 소비가 넘쳐나기에 이들 면세점이 명품시장 공략에 사력을 집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일각에선 한국인의 광적인 명품 열풍을 부채질할 정도로 ‘명품 수입’이 과열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대기업이 자체 브랜드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보다 과열양상을 보이는 소비 성향에 기대 외국의 명품 수입에 ‘올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명품 유치전이 과열되면서 불공정 논란도 불거진다. 명품기업들이 불공정 특혜를 받아먹지만 수익은 외국 본사로 고스란히 넘기고 있어 비난여론이 만만찮다.  
 

◆글로벌 승부로 번진 면세점 ‘딸들의 전쟁’
 
국내 면세점 시장은 점유율 55.7%로 절대강자인 롯데면세점을 신라면세점이 바짝 추격하며 양강구도로 변모 중이다. 신라와 롯데의 불꽃 튀는 면세점 라이벌전은 글로벌 승부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나란히 홍콩국제공항 면세점 입찰에 참여할 방침이어서 2년간 벌여온 면세점 경쟁이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그간의 전적은 ‘1승 1패 1무’로 판가름됐다. 갈등의 시발점은 2009년 롯데의 AK면세점 인수였다. 롯데의 통합운영에 대해 인천국제공항 내의 면세점 영업을 막아달라고 신라가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제출해 제동을 걸었다. 동일인 중복 낙찰 및 복수사업권 취득을 허락해선 안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2010년 8월 신라의 가처분신청은 기각됐고, 이로써 롯데는 인천공항에서 주류와 담배를 포함한 전 품목을 유일하게 판매하는 업체로 컸다.


싸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롯데가 반기를 들었다. 인천공항공사를 상대로 지난 1월 호텔신라와 루이비통의 매장 임대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가처분신청을 제기한 것이다. 수의계약에 의한 입찰인데다 공사가 루이비통에 특혜를 부여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이번엔 롯데의 패배였다. 재벌가 딸들의 전쟁으로 불렸던 루이비통 유치전에서 부동의 1위 면세점인 롯데는 법원의 기각 결정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지난 3월에도 두 면세점은 김포공항 사업권을 놓고 승부를 벌였다. 결과는 무승부로 끝났다. 신라가 A사업권(화장품·향수)을, 롯데는 B사업권(주류·담배)을 나눠 가졌다. 정확히는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A사업권의 미세한 우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다가올 홍콩공항 입점 대결은 신라면세점의 연승이냐, 롯데면세점의 설욕이냐에 관심이 모아진다. 세계 5위권인 홍콩공항 면세점은 작년 매출이 5500억원에 달해 외형을 부쩍 키울 수 있는 먹잇감이다. 롯데는 홍콩에 입성하면 현재 6위권인 글로벌 순위가 2018년 3위권까지 오를 것으로 기대한다. 신라 입장에선 첫 해외진출로 롯데를 끌어내릴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된다.  
 

◆대기업 과열 유치전 명품 특혜 ‘얼룩’
 
하지만 재벌가의 ‘명품 혈전’은 숱한 특혜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명품 브랜드를 무리하게 끌어오기 위해 턱없이 낮은 수수료를 제시해 불공정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신라는 지난 9월10일 공항면세점 세계 최초로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을 오픈했다. 하지만 손익계산 속내는 복잡한 듯하다. 루이비통에 파격적인 수수료 혜택을 안긴 것으로 알려져 신라면세점이 샤넬과 구찌의 미움을 산 것. 구찌는 신라면세점의 매장을 철수하고 롯데면세점으로 자리를 옮겼고, 샤넬도 조만간 매장을 비우겠다고 통보한 상태다.

백화점업계에선 ‘명품 예우’가 관행처럼 굳어졌다.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외국 명품업체들은 10% 안팎의 수수료를 내고 있다. 루이비통 9.6%, 프라다 10.9%, 구찌 12.4% 등이다. 이는 30~40%인 국내 업체들과 비교해보면 특혜에 가깝다.

면세점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회 정무위원회 우제창 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내 대형 면세점들이 중소 납품업체에 40~60%의 높은 판매수수료를 부과하면서도 수입 명품 브랜드에는 10~25%의 상대적으로 낮은 요율을 적용하고 있다”면서 공정위의 조사를 촉구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슈퍼 갑’으로 불리는 명품업체들의 판매수수료를 공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정상화는 요원하다. 명품소비가 늘면서 급증한 해외 브랜드 매출에 견줘 수수료를 책정하는 업계의 현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돈벌이에 급급한 외국 명품업체들이 한국의 ‘명품 열풍’ 와중에 단물만 빼먹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업체는 자회사가 한국에서 거둔 순익의 절반을 매년 배당을 통해 본사로 빼가고 있다. 그런데도 국내에 기부하는 금액은 ‘제로’에 가까워 “명품 선호풍조에 외국본사만 대박을 치고 있다”는 비판여론이 번지고 있다.

재벌닷컴이 지난 9월8일 내놓은 외국 상위 명품업체 재무제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전체 매출은 2005년 1조4228억원에서 2010년 3조8727억원으로 2.7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662억원에서 2364억원으로 3.6배 늘었다. 루이비통은 9.7배, 프라다는 719.2배나 순이익이 급증했다. 그러나 명품업체 15곳의 지난 6년간 기부금은 23억7000만원에 불과했다.

이처럼 재벌기업이 푸대접을 받으면서까지 명품 모여오기에 열을 올리는 통에 외국 업체들의 ‘명품 몸값’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서울은 도쿄에 이은 아시아의 명품도시가 됐고, 한국의 명품시장 규모도 45억달러를 넘어섰다. 명품수요 급증에 따라 기업들의 명품 브랜드 모셔오기 비즈니스가 가열되면서 이를 보는 시장 안팎의 시선은 곱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