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은행들이 각종 소문으로 쌀쌀한 가을을 맞고 있다. 한국지점을 철수하거나, 오래된 사명을 바꾸는 등 굵직한 사안들이어서 이목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
 
최근 외국계은행에서 가장 시끄러운 곳은 SC제일은행이다. SC제일은행 노동조합은 지난 6월27일부터 8월29일까지 은행권 초유의 장기 파업을 벌이며 노사간 갈등이 극으로 치달았다. 잠잠해진 듯한 분위기는 최근 사명 변경 문제로 인해 또 다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또 전 세계 HSBC의 구조조정과  맞물려 한국HSBC이 한국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특히 취약한 소매금융에 대해 정리가 진행될 것으로 보여 뒤숭숭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 SC제일은행, ‘제일’ 빼나?

제일은행이 SC제일은행으로 사명이 바뀐 것은 영국계 글로벌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SC)가 인수한 2005년부터다. SC는 당시 수억원에 달하는 돈을 들여 브랜드 만들기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제일은행의 '제일'을 살리고 스탠다드차타드의 'SC'가 붙은 지금의 'SC제일은행'으로 행명이 바뀌었다.
 
그러나 최근 은행 내부에서는 행명을 다시 바꾸는 것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분위기다. '제일'을 뺀 '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 가겠다는 움직임이 속속 포착되고 있는 것이다.  
 
SC제일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들은 모두 '제일'이 없는 SC저축은행, SC펀드서비스, SC캐피탈, SC증권이다. 이들은 은행이 아닌 SC지주가 인수에 나선 계열사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계 70여개국에 진출한 SC그룹은 한국에서만 예외적으로 현지 브랜드인 '제일'을 병기하고 있다.

SC지주 관계자는 "현재의 사명에서 '제일'을 빼는 것을 검토하는 있는 것은 맞다"고 시인했다. 이 관계자는 "제일이 가진 가치와 역사성을 충분히 살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SC를 앞세워 글로벌은행으로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SC는 지난해 말 분당 정자동지점 등 새로 문을 여는 지점에 '제일'을 뺀 채 SCB로 간판을 달아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김재율 SC제일은행 노조위원장은 "'제일'을 뺀다는 것은 은행의 역사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SC제일은행 고객들은 모두 제일은행 기반이지 SC기반이 아니다. 일방적인 사명 변경은 고객의 반발도 불러 올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제일을 빼는 문제에 대해서는 내부적인 토론과 직원에 대한 설문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라며 "올해까지는 사명 변화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기로 리차드 힐 행장과 약속한 바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SC제일은행 관계자는 "사명에 대해서 노조와 리차드 힐 행장의 약속은 들은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SC제일은행 측은 은행 안팎의 여건상 '제일'을 빼는 것에 민감한 눈치다. '제일'의 가치를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제일은행은 SC가 인수한 이래 9년 연속 성장해 왔다. 국제적 성장성에서도 안정성을 입증하고 있다"며 "SCB의 국제적이 명성을 국내에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빠르면 10월 중으로 행명 변경이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향후 또 한번의 충돌이 예상된다.
 



◇ HSBC, 한국 철수?
 

SC제일은행이 사명을 바꾸는 조치라면 HSBC는 아예 한국시장에서 철수하겠다는 얘기가 나돈다. 이는 '세계 속의 지역은행'을 표방했던 HSBC가 슬로건을 달리하며 전 세계 영업망 축소에 나선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금융권에서는 기업금융과 투자은행(IB) 부문만 남기고 소매금융사업을 따로 떼어 매각한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들리고 있다. HSBC의 소매지점은 서울 남대문의 본점을 비롯해 부산, 대구, 인천 등 총 11개에 불과하다. 소매지점의 영향력이 미미한 셈이다.


이미 러시아HSBC는 지난 4월25일 자국 국영은행 및 외국은행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소매금융사업을 철수할 것을 밝힌 바 있다. 또 지난 8월에는 미국 내 195지점을 10억달러(약 1조54억원)에 매각할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동안 스튜어트 걸리버 HSBC 최고경영자는 수익성 없는 글로벌사업을 중단할 뜻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최근에는 향후 2∼3년간 25억달러(약 2조636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걸리버는 중국 등 아시아지역에 대한 투자는 계속할 방침으로 알려졌지만 여기에 한국이 포함될지는 미지수다.

회사 측은 이러한 추측에 대해 "근거 없는 루머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내부 직원들은 조금씩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회사 측에서 수익성이 없는 부서를 남겨둘 리가 없지 않겠느냐"며 "현 시장 상황에서 소매금융 부문을 매입할 대상이 없는 만큼 정리하는 수순으로 갈 것 같다. 좋은 명예퇴직 조건이나 나왔으면 좋겠다"며 사실상 구조조정을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2년 전에도 HSBC는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한 바 있다. 이때는 전체의 20%(약 200여명)에 달하는 직원이 희망퇴직했다. HSBC관계자는 "전사적인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은행 측에서 명예퇴직 시 유리한 패키지를 제공했기 때문에 호응이 높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HSBC는 불발되긴 했지만 2007년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하는 등 한국시장에 의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HSBC가 철수되는 것이 외환은행 인수 불발 등 한국 내 사업을 확대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도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