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국내 프로야구가 사상 처음으로 관중 600만 시대를 열었다. 상·하위권 할 것 없이 치열한 순위싸움이 막판까지 전개되면서 133경기가 마감된 것에 팬들의 아쉬움은 크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정한 승부다. 삼성, 롯데, SK, 기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4강팀들의 최종 우승을 향한 본격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야구 4강의 대결이 흥미로운 것처럼 올 한해 유독 야구장을 찾은 구단주들이 많았던 점에 착안, ‘재벌들의 번외 4강 대결’을 따져봤다. 
 

지난 9월27일 LG와의 경기후 선수단을 격려하는 이재용 사장.
 
◆삼성-이재용, 우승축하 전화는 기본 최신 갤탭 선물까지
정규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삼성라이온즈를 올 한해 뒤에서 가장 열심히 응원가를 불러준 삼성가 인물은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다.

지난해 12월 부사장직에서 COO(최고운영책임자) 사장으로 승진한 이후 올해가 삼성전자의 실질 사령탑으로 보낸 첫 해인 만큼 그는 시즌 내내 선수단을 격려하고 수시로 야구장을 방문해 응원하는 등 ‘서포터’로서 본색을 어김없이 드러냈다. 


지난 9월27일 삼성이 두산과의 경기에서 승리해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한 순간에도 그는 류중일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재미있는 야구를 해줘서 고맙다. 한국시리즈에서도 재미있는 야구를 해 달라"고 축하했다.  

앞서 7월29일에도 두 자녀와 함께 LG와의 경기가 열린 잠실야구장을 찾아 경기종료 후 덕아웃으로 내려와 선수단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격려했다. 선수단 전원에게 갤럭시탭의 최신모델 50대를 선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실 삼성 야구단은 지난해 말 커다란 인사태풍이 휘몰아치면서 두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선동열 감독이 전격 퇴진하는 등 올 한해 분위기가 다소 무거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프랜차이즈 스타인 류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고, 선수단을 직·간접적으로 격려했던 이가 바로 이 사장이다.   
 


◆롯데-신동인 ‘현장방문’, 신동빈 ‘한일 프로야구 가교’
포스트시즌 진출 4강 중 올해 가장 이변을 일으킨 팀은 롯데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하위권과 중위권에 머물던 롯데는 시즌 막판 특유의 공격야구를 펼치며 사상 첫 ‘정규시즌 2위’의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화려한 성적에 비해 롯데그룹 오너가의 야구단 ‘서포팅’은 크게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비단 올해만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 롯데그룹의 문화가 적지않게 작용한 탓이다.  


그럼에도 롯데는 한국의 롯데자이언츠와 일본의 지바롯데를 동시에 운영하고 두 구단의 구단주를 신격호 총괄회장이 맡고 있을 만큼 야구단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현재 한국롯데는 신 총괄회장의 5촌 조카인 신동인 구단주대행이, 지바롯데의 구단주대행은 신동빈 회장이 일임하고 있다.

신동인 구단주대행은 다른 기업오너들처럼 자주 현장을 찾지 못했지만 올 초만 해도 롯데의 전지훈련이 열린 일본 가고시마 스프링캠프를 찾아 선수단의 유망주들을 일일이 격려했다. 

신동빈 회장은 한·일 프로야구의 교류에 앞장서는 케이스다. 일본 지바롯데마린스에 홈런 타자 이승엽을 영입하도록 지시해 2005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어낸 성과를 거둔 게 대표적이다. 이승엽에 이어 지난해에는 한화이글스의 4번타자 김태균도 영입했다.  

앞서 신 회장은 롯데의 오랜 숙원이었던 ‘가을야구’를 수년 만에 현실로 만들어준 메이저리그 출신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영입을 주도하기도 했다.   
 

지난 2009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2차전 SK와이번스-두산베어스 경기에서 팬들과 함께 경기를 관전하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 
 
◆SK-최태원, VIP 아닌 일반 응원석서 “와이번스!”

최근 몇 년간 한국프로야구를 점령했던 SK가 올해도 가을잔치에 입성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SK가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기업 중 가장 늦은 2000년에 프로야구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야구단에 대한 애정은 결코 다른 재벌 총수들에 뒤지지 않는다.
그는 2000년 SK와이번스를 창단한 후 야구장을 찾지 않다가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처음 야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두산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 2차전을 연달아 져 사기가 꺾인 3차전 경기에서 최 회장은 VIP석이 아닌 SK 응원석에서 직집 응원을 진두지휘하며 선수단의 사기를 끌어올려 눈길을 끌었다.

최 회장의 열렬한 응원 덕인지 SK와이번스는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07년에 이어 2008년, 그리고 2010년까지 우승을 내달려 ‘SK 전성시대’를 열었다. 특히 2007년 우승이후에는 SK와이번스 선수들과 인천시 중구 일대에서 연탄배달 봉사 활동을 펼쳐 주목받기도 했다.

최 회장의 야구사랑은 SK텔레콤, SK네트웍스 등 모든 계열사에 직장인 야구팀이 탄생해 매년 ‘SK그룹 리그’가 벌어지고 있는 것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기아-정의선, 야구장 건립에 300억 ‘쾌척’

지난해 우승팀 기아타이거즈의 든든한 후원자는 뭐니뭐니해도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다. 한국시리즈에서 10차례나 우승하며 최고의 야구명문 구단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기아의 홈구장이 시설 노후화로 선수와 팬들의 불편이 심해지자 그는 지난해 우승 직후, 야구장 건립에 300억원을 지원하도록 했다. 광주광역시가 2014년 완공을 목표로 건축하는 새 야구장에 내년부터 매년 100억원, 총 300억원을 투자키로 한 것이다.

이는 구단이 직접 경기장 신축비용을 대는 경우가 국내 프로스포츠계에서는 기아가 처음으로, 정 부회장은 야구장 외에 별도 연습구장이 없었던 기아타이거즈를 위해 150억원을 투자해 전용연습구장을 신축하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 부회장의 야구단 지원이 경이로운 것은 지난해 10월24일 기아타이거즈 우승기념 자리에서 선수들에게 새 야구장 건립 지원을 시사했을 당시가, 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전 등으로 사정이 여의치 않았을 때였다는 점이다. 더욱이 야구단 말고도 프로축구단인 전북현대모터스에도 하프돔 연습구장을 건립하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재벌총수들, 야구사랑 왜?

굳이 포스트 시즌 4강에 진출한 팀만이 아닌, 야구단을 운영하는 대부분의 재벌가 총수들과 그 자제들은 야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9번째 구단인 NC다이노스를 창단한 김택진 NC소프트 대표도 “야구단 창단이 꿈이었다”며 직접 프로야구 시장에 뛰어들었을 정도다. 그렇다면 재벌총수들에 야구는 왜 인기가 있을까.

프로야구계와 재계에 따르면 재벌총수와 자녀들의 상당수가 프로야구가 성행한 미국과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한 것이 크게 작용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만 해도 일본 와세다대 유학 시절 프로야구를 보며 객지에서의 외로움을 달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면서 “다른 재벌가 총수나 자녀들 역시 객지에 있으면서  야구는 큰 위안거리이자 그 나라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추억거리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재벌 총수들이 야구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로, 상대팀을 분석하고 작전을 펼치며 선수와 팀의 실적이 데이터로 남는게 야구라는 점에서 CEO의 특성과 잘 맞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는 “상황에 따른 다양한 작전이 나오고 이를 분석해 가며 관람이 가능한 야구라는 스포츠의 특성이 CEO들과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