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名人). 그들에겐 분명히 무엇인가 특별한 게 있다. 실력 뿐 아니라 살아온 삶과 평소 가치관에서도 남 다른 게 있다. 그리고 명인으로 불리기까지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묵묵히 다른 사람보다 몇 배의 노력도 했을 것이다.

국악 또는 가야금을 언급하면 떠올릴 수 있는 명인으로 황병기(75)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이 있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직 국악과 가야금 연주에만 몰두했던 그에게는 어떤 특별한 삶과 가치관이 있었을까'란 궁금증에 서울 아현동에 있는 황 감독의 집을 찾았다.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한 황 감독이 국악과 가야금, 그리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일상생활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 둘 소개했다.
 

-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는데 국악을 하게 된 사연은


▶전공과 하는 일은 전혀 무관하다. 중학교 3학년 때 가야금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항상 가야금을 연주해왔다. 좋아하고 중요한 일을 할 때에는 아무런 목적 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잘 키우려는 것도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연애를 할 때도 단지 사랑해서 하는 것이지 어떤 목적을 갖고 연애를 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야금을 연주한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목적 없이 해왔다. 살아가면서 목적 없이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 대학 강단에 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내가 대학을 다닐 때 갔을 때 사회적으로 국악이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가야금을 연주해서 먹고 산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국악과가 있는 대학이 단 한 곳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던 1959년 서울대학교에 국악과가 처음 생겼고, 졸업 후 음대 강사로 강의를 시작했다.


서울대 음대에서 강사로 4년간 강의했고 1974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생겼다. 그리고 이대에서 초빙을 받아 강단에 다시 서게 됐다. 그때부터 나는 일생동안 가야금만 하리라 생각했고 프로 의식도 갖게 된 것이다. 그동안 해왔던 여러 가지 일들을 모두 정리해고 음악만 하기 시작했다. 꼭 내가 잘해서라기보다 사회가 나를 이끌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 당시에는 왜 그렇게 국악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것인가

▶일제 강점기 때 국악을 탄압했는데 해방이 된 후에도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서양음악만 최고로 여기는 사회가 된 것이다. 소위 가방끈이 긴 사람일수록 국악을 싫어했다. 반대로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들은 국악을 좋아했라. 학교에서도 항상 서양음악만 강조했었고, 음악 뿐 아니라 모든 분야가 서양을 좇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국적으로 대학에 국악과가 생겼다.

- 국악에 관심이 적은 시대였는데 첫 음반이 나올 수 있었던 계기는
 
▶1962년부터 작곡을 시작했고, 1965년에는 미국에서 초청을 받아 연주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해에 미국에서 첫 음반도 나온 것이다. 연주와 음반에 대해 극찬하는 분들이 많았고, 사회도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꼈다. 국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 그동안 작곡한 곡 중 특별히 아끼는 작품이 있다면

▶그동안 작품집이 5개 나왔는데 활동한 시간에 비하면 많이 나온 것은 아니다. 나는 다작을 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 대신 실패한 적도 없는 것 같다. <침향무>란 앨범이 있는데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베스트셀러다. 이 앨범에 특별히 애착이 간다.

-  솔직히 가야금은 여성스런 악기처럼 느껴진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보다 선배 연주자들도 거의 남자였다. 사회가 변하면서 남자가 하던 일을 여자들도 하게 된 것이다. 평소 남자들의 영역이 생각했던 역도도 지금은 여자들이 더 잘하지 않나. 다만 판소리는 100% 남자들이 하는 음악이다. 남자 목소리에 맞는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명창들 중 90%는 여자들일 것이다. 요즘 국악을 좋아하는 인구가 많이 늘어서 반갑다. 젊은이들도 많이 좋아한다. 그렇지만 아쉬운 점은 전통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진 않다는 사실이다. 요새는 보통 휴전(fusion) 국악을 많이 하고 좋아한다.

- 가야금의 종류가 상당히 다양해진 것 같다

▶그렇다. 25줄 가야금도 있을 정도다. 가야금이 변형됐다 할 수도 있고 진화됐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국악도 휴전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서양식으로 연주하려면 가야금 줄이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전통적인 것을 좋아한다. 프랑스 음식을 먹을 때도 프랑스 전통음식을 먹으려 한다. 음악도 휴전음악보다 전통음악을 좋아한다. 휴전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각자의 가치와 취향의 차이일 뿐이다.

- 첼로 연주자 장한나 씨와 각별히 친분이 있던데 

▶내가 국악연주자와 친분이 있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니 주목을 못 받는 것이고, 반대로 국악과 거리가 먼 장한나 씨와 친하다고 하니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또 나이 차도 손녀 벌이니 둘의 친분을 더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도 이메일로 자주 대화하고 장한나 씨가 한국에 들어오면 꼭 만나곤 한다. 장한나 씨와 협연을 할 수 있는 적당한 기회도 찾고 있다. 장한나 씨를 상당히 아끼는 데 행여나 그의 음악 생활에 내가 해를 줄까봐 항상 조심스럽다.

- 요즘 국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쉬운 점은 없는가

▶젊은 연주자들이 테크닉은 좋다. 하지만 음악의 오묘한 맛은 떨어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남을 평가하는 것은 항상 조심스럽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젊은이들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과 달리 상대방이 나보다 더 나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 얼마 전 감독님에 대한 책 <황병기>가 새로 나왔는데

▶책을 쓴 박선욱 작가가 평소 나의 팬인데,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해서 허락해줬다. 평소 서로 얘기도 많이 하는 사이인데 박 작가는 나에 대해 정말 잘 아는 사람이다. 이번에 발간된 책 외에 나에 대한 책이 두 권 더 있는 것으로 아는데 유아용 책도 있고 만화로 된 것도 있다. 그리고 이번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다. 재미있게 쓴 것 같아 만족스럽다.

- 최근 특별한 무대를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10월 6~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파트오브네이처' 연주에서는 콘트라베이스, 첼로, 국악기가 협연을 했는데 국악에 부족한 저음을 서양악기가 채워주는 의미 있는 연주였다.  특히 재독 작곡가 정일련이 '자연속의 인간'을 주제로 정통 국악에 현대적인 감각을 입혀 새로운 음악형식을 시도했다.
 
- 음악 외에 즐겨 하는 일이 있다면

▶보통 남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일은 잘 하지 않는다. 재미있으면 나는 재미가 없더라. 노래방 가는 것도 질색이다. 음악을 들을 때는 몰두해서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집 근처에 좋은 산책로가 있어서 산책을 즐겨 한다. 1974년 지금 집에 이사 와서 쭉 살고 있는데, 전망도 좋지만 주변이 조용하기 때문에 이 집을 고른 것이다. 밤이 되면 마치 절 같다.

- 평생 예술가로 살았는데 돈이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상당히 단순한 사람이다. 국립극장에서 급여를 받기도 하고, 연주료, 특강료, 음반 인세 등 수입이 다양하다. 5월에 종합소득세를 내야 하는데 신경쓰는 게 복잡해서 전임 세무사에게 정확히 계산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돈을 불릴 생각도 한 번 하지 않았다. 부동산을 사고팔았던 적도 없다. 지금 집에 이사 온 후 계속 이곳에서 살았을 뿐이다. 젊어서나 지금이나 소위 돈을 굴릴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먹고 살 정도는 충분히 번다. 지금 75세인데 젊어서나 지금이나 수익이 늘 비슷한 것 같다.

- 건강은 어떤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젊을 때에 비해 힘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1965년 20대 시절에 미국에서 낸 음반에 담긴 연주 소리가 가장 힘차다. 확실히 나이를 먹으면서 연주의 테크닉은 떨어지는 것 같지만 반대로 이해력은 깊어진 것 같다.

- 가야금 연주자, 국악 작곡가 중 어떻게 불리길 바라나

▶사실 생각해본 적 없는데 그냥 가야금 연주자 겸 작곡가로 불리고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느냐는 의미 없는 것 같고 상대방이 생각한대로 부르면 되는 것이. 개인적으로 둘 중 특별히 애정이 가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시 하는 일이 작곡이다. 작곡을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연주를 하니까 그만큼 많은 공헌을 하는 셈이다.
 

[프로필]
1936년 서울 출생/경기고등학교/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단국대학교 음악 명예박사/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