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로 재테크를!’
 
경마장에 가서 베팅하라는 뜻이 아니다. 경마공원 경주에 출전하는 말의 주인, 즉 마주(馬主) 얘기다. 최근 재테크 수단으로 말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마주에 대한 관심이 높다.

우리나라에선 생소한 개념일 수도 있지만 마주에 대한 선진국의 평가나 위상은 자못 대단하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수상은 “영국의 수상보다는 더비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하는 경주마의 마주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유럽에서의 마주에 대한 영광과 위엄은 상상 이상이다. 
 

 
◆대상경주 등 수억대 상금 80% 마주 몫
경마는 중세 귀족들 소유 말들의 달리기 시합에서 비롯됐다. 이 때문에 현대에 이르러서도 마주는 주로 사회 지도층이나 저명인사들로 구성된다. 마주가 되면 단순히 경주마를 소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류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사교의 기회를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종교적 이유로 베팅이 불가능한 중동지역의 왕실에서 앞 다퉈 유럽 및 북미의 값비싼 경주마를 사들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말을 소유함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경주상금의 획득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경주의 수준과 격에 따라 걸려 있는 상금이 제각각이지만 우리나라 경마경기 중 가장 상금이 많은 대통령배(GI) 대상경주에서 우승할 경우 소위 ‘대박’을 거둘 수 있다. 한번의 경주 에 3억7800만원이 우승마의 주인과 관계자들에게 돌아간다. 관계자들에게 돌아가는 비중은 보통 20% 남짓으로, 나머지 80% 가량이 마주의 순수상금으로 볼 수 있겠다.

주식투자와 마찬가지로 경주마 구입비용 대비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부상 때문에 더 이상 경주마로 사용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한 각종 공제제도도 있어 주식투자보다 안전한 투자방법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주식의 경우처럼 어떤 말(종목)을 사서 어떻게 훈련시키고 경주에 내보내는(운용하는) 지는 마주(투자자)의 능력에 달렸다. 투자자가 돈을 펀드매니저나 특정상품에 맡기는 것처럼, 마주도 말을 직접 훈련시키지 않고 전문 조교사와 계약을 맺어 말의 사양관리 등을 일임한다.

◆지도층 ‘노를리스 오블리제’ 사회공헌 전개
 
재테크 수단 외에 마주가 사회 지도층으로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또 다른 이유다. 과천, 부산, 제주 등 전국의 각 경마공원 마주협회에서는 청소년 장학사업, 기부활동 등 활발한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마주들 역시 경주마를 통한 상금획득이라는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국민과 함께 하는 마주의 위상 확보를 위해 노력 중이다.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 등 유명인이 마주로 활동하는 사례가 많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감독 ‘알렉스 퍼거슨’ 감독, 뉴욕 양키즈의 구단주였던 ‘조지 스타인브레너’, 할리우드의 유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미국 미디어계의 큰손 ‘테트 터너’ 등이 그 대표적이다.

과거 국내에선 마주 시스템이 없었다. 경마 시행체인 마사회에서 경주마를 일괄 소유했으나 1993년 선진국처럼 개인마주제도를 도입했다. 마주 선발과 운영에 다소 폐쇄적인 모습이 있었으나 최근엔 마주의 자격 요건을 완화하고 조합마주나 공동마주, 법인마주 등으로 문호를 개방해 선진국 형으로 진화했다.

작년부터는 지방자치단체의 마주 참여가 활발해졌다. 현재 과천시, 포항시, 상주시, 장수군, 함안군이 마주로 활동하고 있다. 지자체 참여가 많아진다면 프로스포츠의 지역 연고제처럼 자신의 고향 자치단체가 소유한 경주마를 응원하는 재미도 만만찮을 것이다. 
 
 
■경주마 ‘스타탄생’ 주역들
조교사-관리사-기수 궁합 맞춰 우승 사냥

 
모래먼지 날리며 결승점을 향해 질주하는 경주마. 관중의 환호와 함성을 받으며 박진감 넘치는 승부를 벌이는 스타 경주마가 탄생하기까지는 적잖은 이들의 땀이 합쳐져야 한다. 말을 사서 훈련을 시키고 경주에 내보내는 과정이 유기적으로 짜여있어야 훌륭한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


전체 과정을 총괄하는 이는 조교사다. 마필의 전반적인 훈련과 경주진행을 하는 자리여서 야구의 ‘감독’에 비유된다. 조교사는 마주와 계약을 맺고 파필을 어떻게 훈련시킬지, 어떤 기수를 태울 것인지 등을 총체적으로 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경주가 편성되면 소속 마필의 컨디션 조절과 훈련 스케줄을 짜 우수한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조율한다. 상대마의 전력을 파악해 경주전략도 수립해야 한다.

자신이 맡은 마방의 마필들과 소속기수들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강도가 세지만, 소속조 마필들의 우승이나 선전 여부에 따라 고소득을 올리는 조교사들이 많다.

조교사는 경마 진행의 총감독인 만큼 까다로운 자격조건을 요구받는다. 조교사가 되려면 마필관리사로 2년 동안 근무해야 하며, 승인시험을 거쳐야 한다. 합격 후에도 3개월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그 2년 후에 조교보 선발시험에 합격해야 비로소 조교사의 길을 갈 수 있다.

조교사의 지시에 따라 마필을 교육·관리하며 경주마의 사양관리를 보조하는 일은 마필관리사가 담당한다. 이들의 하루일과는 매일 새벽 5시30분 마방을 정리하고 마필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정리가 끝나면 말을 데리고 나와 워밍업 운동을 시키고 1회 15~20분씩 저녁까지 조교훈련을 반복한다. 조교사와 마필관리사는 말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는 이색 직업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엔 100여명의 조교사가 활동하고 있다.

‘경마의 꽃’은 기수다. 아무리 훌륭한 말이라도 기수와 호흡을 맞추지 못하면 우승마의 영광을 누리기 어렵다. 2006년 영화 <각설탕> 등으로 화제를 낳으면서 국내에서도 젊은층의 기수 지망생이 증가하는 추세다.

기수가 되려면 한국마사회(KRA) 경마교육원 기수후보생 교육과정을 졸업한 후 기수면허를 따면 된다. 교육과정은 무료다. 기수는 말과 혼연일체가 돼서 경주로에서 승부를 겨루고 그 결과에 따라 상금을 받는 프로다. 상금과는 별도로 생활안정을 위해 별도의 월정액과 출전수당도 받는다.

현역기수는 서울 68명, 부산 25명, 제주 27명 등 120명이 활동하고 있다. 여성기수도 5명이 활약 중이다. 이 가운데 박태종 문세영 기수 등은 여느 프로선수 못잖은 수억원대 고액연봉을 받으며 ‘경마 스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경마공원엔 이밖에도 말 전문 수의사, 사육사, 조련사 등이 근무한다. 제주도와 내륙 곳곳에는 180여개의 말 목장이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