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거웠던 ‘점심 대란’… “사장은 시위 중, 가게는 종업원이”
우려했던 점심 대란은 없었다. 몇몇 문을 잠근 가게들이 보이긴 했으나 대부분은 문을 열고 손님을 맞았다. ‘먹고 사는 일’ 로 시위에 나선 음식점 사장들이었지만, 매일매일이 빠듯한 상황에 하루치의 ‘업’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한 셈이다.
잠실 근처에서 이날 영업 중인 한 식당의 점원은 “사장님은 시위에 참여한다고 가고, 오늘은 사모님이랑 종업원들이 남아 운영 중이다”며 “문을 열었다고 해서 시위의 취지에 동감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고 아쉬워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김치찌개 식당에서 일하는 한 점원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의 한 달 평균 매출은 약 8500만원 정도. 카드사마다 수수료가 다르긴 하지만 평균 2.6%로 계산하면 이 중 220만원 정도가 매월 카드 수수료로 빠져나간다. 그는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투자비용만 해도 빠듯한데, 카드 수수료가 버거운 것만은 사실이다”며 “수수료 비용만 줄일 수 있어도 종업원 1,2명은 더 고용할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행사를 주최했던 음식점중앙회(이하 중앙회) 관계자는 “간부들은 거의 대부분 휴업을 하고 집회에 참여했지만, 회원들은 생업과 결부된 것이어서 자율에 맡겼다”며 “휴업 참여율이 높았다면 시너지가 더 컸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에는 충분했다”고 밝혔다.
◆뜨거웠던 잠실벌… “음식업이 봉이냐!”
그러나 싱겁게 결론이 나버린 점심 대란과 달리, 이날 음식점 사장들이 모여든 잠실벌은 뜨거웠다. ‘범 외식인 결의대회’ 행사 시작 시간인 오전 11시 전부터 광주, 부산, 경기 등 각 지역별로 모여든 차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중앙회 측에 따르면 이날 동원된 버스만 해도 1700여대 정도. 전국 각지에서 42만 외식업 종사자 중 총 8만여 명이 넘는 음식점 사장들이 모여들었으며, 그 중 서울지역에서만 6만 명 정도가 동원된 것으로 파악됐다.
“음식업이 봉이냐! 영세상인 다 죽는다!”
“국민경제 역군 악법으로 망한다!”
피켓을 흔드는 음식점 사장들의 얼굴엔 절박함이 가득했다. 중앙회 측 각 지회별로 대표자가 나와 국내 외식업의 열악한 상황과 개선안 요구를 터뜨릴 때마다, 종합운동장을 가득 채운 상인들은 우레 같은 함성과 박수를 보탰다.
목동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이라고 밝힌 한 사장은 “우리 같은 소상공인들의 상황을 정부도 누구도 돌보지 않는다. 다 죽어가고 있는데 영세상인에게 대기업보다 수수료를 더 받는 건 말이 안된다”고 강조했다. 카드사에서 1.8%까지 낮추겠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외식업계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주유소나 대형 마트와 같은 1.5% 수준까지 인하를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또 다른 상인은 “카드수수료는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지만, 당장 가게를 운영할 자본금도 턱없이 부족하다. 돌려 받기 전에 당장 가게 운영이 가능하게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장사를 위해 소주 한 병을 사더라도 부가세가 다 포함된다. 의제매입세액공제(음식업자가 구입하는 농산물 구입가액 중 일정 비율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돌려주는 것) 등 전체적으로 세금 관련 문제까지 개선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앙회 측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일반음식점 신규점포 휴·폐업 업소는 평균 5.5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붙은 정치 공세… “카드 수수료 1.5% 약속”
손학규 민주당 대표(왼쪽),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범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를 찾아 악수하고 있다.
“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지난해부터 제기했는데 야당이 반대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야당이 반대하지 않는다면 올해 법 개정을 추진하겠습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우리 홍 대표님이 참 좋은데, 가끔 거짓말을 해요. 수수료를 더 내면 부자가 더 내야지. 대기업과 똑같이 자영업자들 수수료 1.5% 대로 낮추겠습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
뜨거웠던 상인들의 외침보다 더욱 뜨거웠던 것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치 공세’ 였다. 양당 대표를 비롯해 유례없이 많은 국회의원들이 출동해, 영세 상인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기 싸움을 벌였다.
행사의 대표적인 현안 문제였던 ‘카드 수수료율’을 시작으로 간이과세자 기준액(세금 계산서 발행과 장부기장 의무 면제 기준)을 4800만원에서 1억원 이상으로 바꾸는 등 선심성 공약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상인들은 이들의 약속이 지켜지길 바라는 듯 있는 힘을 다해 양당 대표의 이름을 환호했다. 의기 양양한 당 대표들은 더 없는 환대 속에 행사장을 떠났다.
◆열기 계속 갈까… “국회의원 약속, 끝난 게 아니다”
“국회의원 두 명이 약속했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우리가 뭉쳐서 해결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감시하고 지켜줘야 합니다.”
양당 대표가 떠난 후 주최 측에서는 연이어 호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지만, 상인들의 반응은 한풀 꺾여 있었다. “약속 했잖아. 해준다는 데 왜 자꾸 같은 말만 반복하는 거야?” 상인들 무리 속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일부 터져 나오기도 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솥단지 퍼포먼스’ 였다. 정치인들이 떠난 후 어수선해진 행사장 분위기는 거대한 가마솥이 등장하자 다시 달아올랐다. 음식점 사장들은 대형 신용카드 모형을 잘랐고, 대형 자루에서는 신용카드들이 쏟아져나왔다. 이날 행사는 이들 카드를 태우는 화형식으로 마무리했다.
중앙회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이번 집회를 성공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정치권의 약속으로 기대감이 높아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 전했다. 중앙회 측은 음식점 운영 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법제화가 전제돼야 된다는 점을 고려, 이를 위해 정치권과 협상을 계속 전개해 나가는 데 중점을 둘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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