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의 '밀당'(밀고 당기기)을 끝내고 SK텔레콤이 하이닉스를 품에 안았다. 지난 14일 SK텔레콤 하성민 사장은 하이닉스반도체 채권단 및 하이닉스 반도체와 지분인수계약을 체결했다.

하이닉스를 새식구로 받아들이기 위해 지불한 가격은 3조4266억원. 적지 않은 비용을 치를 정도로 SK텔레콤이 하이닉스에 거는 기대와 애정은 각별하다. 인수를 주도하고 있는 SK텔레콤뿐 아니라 SK그룹 차원에서도 이번 인수는 중요하다. 하이닉스 인수를 통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오랜 꿈이었던 해외진출과 제조업 분야의 성공을 한번에 거머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진출 번번이 고배…하이닉스 있다면 달라질까?

"하이닉스와 함께 글로벌 성공 스토리를 써갈 것이다."
SK텔레콤의 하이닉스 인수 발표 후 최 회장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SK그룹은 이번 기회에 내수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을까. 에너지(SK에너지)와 통신(SK텔레콤) 등 내수산업으로 안전하게 배를 불려 왔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SK그룹으로서는 하이닉스를 통해 단박에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게 됐다.
 
SK그룹 내부에서는 미국, 유럽, 중국 등 전 세계 15개 나라에 해외 네트워크를 보유한 하이닉스가 SK텔레콤뿐 아니라 그룹 계열사들의 해외진출에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그동안 최 회장은 SK텔레콤을 통해 여러 차례 해외진출을 시도해왔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신 바 있다.

1999년 몽골진출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공략에 나선 SK텔레콤은 2000년 베트남 이동통신 사업 S-Foen에 진출했지만, 2010년 1월 베트남 사업 철수를 선언해야 했다.
 
2005년에는 미국 인터넷서비스공급사 어쓰링크와 '힐리오'라는 합작사를 설립, 현지 이동통신재판매(MVNO)사업에 나섰지만 2008년 버진 모바일에 팔리며 씁쓸한 뒷맛을 보고 말았다. 할리우드 스타까지 대동하며 대대적인 마케팅에 나섰지만 목표로 한 가입자 300만명에 턱없이 부족한 18만명만 유치하는 데 그쳤다.
 
2007년에는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차이나유니콤 2대주주로 경영참여를 노리는 등 적극적인 투자 행보를 보였지만, 이 역시 2009년 지분을 차이나유니콤에 전량 매각하며 해외진출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해외진출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SK텔레콤으로서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2위인 하이닉스의 기술력과 해외 마케팅 능력이 탐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최근 플랫폼 사업 강화를 위해 SK플래닛을 분사한 상황이어서 하이닉스의 역할이 더욱 긴요해졌다.
 
폐쇄적인 통신 사업에서 벗어나 개방형 플랫폼사업으로 글로벌 진출 도약을 선언한 SK플래닛 입장에서는 이미 해외 마케팅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하이닉스라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ICT기업 도약…제조업 도전 이번에는?

"통신사업과 연계성이 높은 비메모리사업을 강화해 시너지를 높이겠다."

하성민 SK텔레콤 사장은 하이닉스 인수의 비전을 이렇게 소개했다. 반도체사업의 강자를 품에 안음으로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아우르는 ICT(정보통신기술)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얘기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독보적 1위. 그럼에도 SK텔레콤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는 우려는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이미 국내 통신업계는 가입자가 5000만명을 넘어서 포화상태에 이른지 오래. 매출 역시 7년째 12조원 안팎으로 횡보하는 중이다. 특히 최근에는 통신비 기본요금 인하정책과 맞물려 7500억원가량의 매출 감소가 불가피해지는 등 정부규제도 강해지는 추세다.

사업다각화를 통한 '신성장 동력 찾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라는 얘기다. SK텔레콤은 플랫폼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SK플래닛과 반도체사업분야의 하이닉스를 '양 날개'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SK플래닛이 구축하고자 하는 IT생태계에 하이닉스 반도체가 접목되면 모바일 분야에서 상당한 파워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 교육, 엔터테인먼트 등 SK플래닛이 개발한 다양한 모바일 서비스에 맞춰 하이닉스가 특화된 칩을 생산함으로써 유형의 서비스로 만들어낸다면, 구글이나 애플 등에 맞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이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이닉스의 새 주인이 된 SK텔레콤이 정작 제조업 분야 경험이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SK그룹은 지금껏 여러 차례 휴대폰 단말기 등 제조업 분야에 도전했지만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SK그룹은 지난 2005년 '스카이' 휴대폰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SK텔레텍을 팬택에 매각한 후 4년만인 2009년 SK텔레시스를 통해 휴대폰 제조사업에 뛰어들었다. 최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W, 아우라 등 피처폰(일반폰)과 리액션, 윈 등 스마트폰을 각각 2종씩 선보인 SK텔레시스는 비, 최시원 등 톱스타를 모델로 기용하며 대대적인 마케팅 전략을 폈지만 결과는 씁쓸했다. 지난해 휴대폰 사업 적자폭만 2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은 결국 지난 9월 휴대폰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한 탓인지 SK텔레콤 역시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신중한 경영전략을 펴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SK텔레콤이 원하는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메모리사업 분야의 비중이 높은 하이닉스의 사업구조를 전환하는 것이 급선무다.

현재 하이닉스의 전체 매출 가운데 비메모리 비중은 3% 수준이다. 같은 반도체라고 하더라도 메모리와 비메모리 분야의 관련 인프라가 전혀 다른데다, 비메모리분야의 기술 장벽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작업이다.
 
향후 몇 년간 지속적으로 비용과 인재 투자가 불가피하다. 내년만 하더라도 하이닉스에 필요한 투자금액이 최소 4조원이라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SK텔레콤 측은 하이닉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할 경우 추가 M&A도 고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