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에 2번이나 해고당했다”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재계 36위, 24개 계열사를 거느린 영풍그룹이 ‘생산직 직원 0명에 도전한다’는 오명을 받고 있다. 영풍그룹 계열사로 반도체 후가공 업체인 시그네틱스의 마지막 생산직 정규직원이 지난해 7월14일부로 정리해고되자 노조원들 사이에서 붙여진 평가다.


영풍그룹은 IT업종에서 총 5개의 계열사(시그네틱스, 영풍전자, 코리아써키트, 인터플렉스, 테라닉스)를 거느리고 있으며 이들 기업을 통해서만 매년 1조2000억원의 매출과 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고 있다. 5개 계열사의 직원 수만 대략 6000~1만명.

그런데 영풍그룹이 계열사의 생산직 정규직원들을 10여년에 걸쳐 사내 하청업체의 직원으로 전직을 요구하거나 정리해고 시켜 ‘정규직 제로’를 꾀하고 있다며 계열사 노조원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사진=류승희 기자
◆ "임금 반납하며 회사 살렸는데…"


특히 현재 유일하게 영풍그룹과 정리해고에 맞서 법적공방을 벌이고 있는 시그네틱스 노조원들의 경우 영풍측이 지난 2001년 서울 염창동 공장을 폐쇄하면서 생산직 직원들을 안산과 파주 공장으로 옮기려 했고 이 과정에서 130여명의 노동자들을 부당해고한 점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윤민례 금속노조 시그네틱스 분회장(민주노총 소속)은 “90년대 후반 회사가 부도위기에 처했을 때 생산직 직원들은 임금과 상여금을 반납하며 3년 동안이나 회사를 살리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면서 “그런데 2000년 영풍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정규직 직원을 하청업체 직원으로 돌려 ‘비정규직화’ 했다”고 강조했다.

계열사 노조원들에 따르면 현재 5개의 영풍그룹 IT계열사는 모두 생산직 정규직원이 전무한 상황이다. 지난해 7월14일 마지막 남은 시그네틱스 정규직 32명 전원이 정리해고 됐고, 코리아써키트(인쇄회로기판 생산), 영풍전자(연성회로기판 생산)는 이미 오래전에 정규직을 사내 하청업체의 직원으로 돌려세웠다.
 
또 테라닉스(인쇄회로기판 생산)에 있던 50여명의 정직원들 마저도 하청업체로의 전직이 추진된 것으로 파악된다. 인터플렉스(연성인쇄회로기판 생산) 역시 품질관리나 검사 일부의 관리직원만 정직원일 뿐 순수 생산업무는 정규직원이 담당하지 않고 있다는 게 노조측 주장이다. 


영풍그룹의 IT계열사 현황
노조 관계자는 “동종 기업의 경우 전체 사내하도급 비율(비정규직)이 50% 정도지만 유독 영풍그룹만 100%에 육박하고 있다”면서 “이는 고용 의무와 관련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비정상적인 고용구조를 통해 비정규직을 양상하는 대표적 기업이 된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사측은 ‘생산직 제로’라는 오명에 대해 "하청업체의 직원으로 전직했어도 기존에 시그네틱스에서 받던 급여와 동일한 수준의 임금 및 복지를 유지해주고 있다"며 "노조원들의 실질적인 불이익은 없다"고 못박았다.    
 
◆10년에 2번의 해고…사측 "적자해소 위해 불가피"

영풍 측의 ‘비정규직화’ 추진과정에서 한번 해고된 노동자가 복직된 지 4년 만에 또 다시 해고된 일도 시그네틱스 사태를 둘러싼 논란이다.   

2001년 염창동 공장이 파주와 안산의 2곳으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하청업체로의 전직에 불응하며 사측에 반발해온 시그네틱스 일부 노조원들은 당시의 정리해고에 대해 대법원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2007년 업무현장에 복귀했다. 하지만 2010년 12월 회사는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안산 공장을 다른 업체에 영업양도하면서 회사를 퇴직하고 그 업체로 전직할 것을 요구했다. 일부 노동자들은 전직에 응했지만 그에 불응한 32명의 직원들은 결국 지난해 7월 또 한번의 해고를 통보받아야 했다. 

이에 대해서도 시그네틱스 측은 파주와 안산 공장의 사업 분리 후 안산 공장에서의 적자규모가 커 부득이한 정리해고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회사 관계자는 “파주공장은 흑자가 났지만 안산공장에서는 계속된 적자를 해소해야 했다. 때문에 구조조정을 통해 흑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청업체로의 전직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파주공장 직원에 비해 안산공장 직원들은 임금수준이 30% 정도나 더 높았다. 단체협상을 통해 급여 조건을 조정하면서라도 구조조정을 피하려 했으나 노조원들이 이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7월 ‘마지막’ 시그네틱스 생산직 정규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정리해고와 관련해서도 노조와 사측의 입장은 여전히 팽팽하다. 


사진=류승희 기자
노조는 사측이 밝힌 ‘경영상에 의한 정리해고’가 경영상의 어려움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사측의 해고 통보 시기만 해도 시그네틱스가 2010년 11월 코스닥 상장으로 600억원 이상의 시세차익과 수백억원의 투자자를 모집했고 2010년 영업이익이 196억원, 2011년 반기영업이익도 149억원을 넘어서며 창사 이래 최대의 흑자를 기록 중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전혀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노조는 2011년 4월에는 파주공장에 1000평 규모의 생산시설을 증축했고 파주공장은 직원 800여명이 3교대로 근무하며 24시간 작업할 정도로 생산력이 극대화돼 신규채용 마저 진행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정리해고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회사 측은 “파주 공장에 정규직을 데려가려면 (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자의) 혼재근무가 돼 법률적 문제가 있다”며 “파주공장의 하청업체 사장들과 협의해봤는데 업무 영역이 다르고 직원들의 임금수준도 차이가 나 파주 공장으로의 전직에 부정적인 의견이 대부분이었다”고 해명했다.

두 번의 해고에 울부짖는 노조원들, 그리고 충분한 보상처리를 거부한 것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측의 입장. 영풍그룹의 '생산직 정규직원 0' 논란이 쉽게 꺼지지는 않을 것 같다.